노후,전원생활 농지에 포위된 땅에 집 짓지 말라
귀농이나 귀촌을 준비 중인 이들은 대개 전원생활을 통해 여유와 안식, 힐링 등 전원의 가치와 투자가치를 함께 얻길 원한다. 인생 2막 노후생활이다 보니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시골 이주 이후 맞닥뜨리게 될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3년 전 매입한 강원도 산골 땅에 최근 집을 지어 입주한 김모 씨(56) 부부도 그랬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급매물을 잡은 덕에 땅값은 그 사이 배가량 올랐고, 갓 지은 전원주택과 청정 환경 또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김 씨 부부의 달콤한 전원생활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근심으로 변했다. 김 씨는 “막상 깊은 숲 속에 집을 짓고 살아보니 2km가 넘는 좁은 진입로는 오가기에 너무 불편했고 지하수도 충분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산과 나무에 가려진 집은 일조량이 크게 부족해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걱정스럽다”고 한숨지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의 한 전원단지를 선택한 박모 씨(60)는 새로 이사 온 이웃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층집이 들어서는 바람에 그의 거실과 안방은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게다가 이웃집은 툭하면 시끌벅적한 파티를 벌여 그에게 호젓한 전원생활이란 마치 남의 얘기처럼 들린다.
수년간 저렴한 땅을 찾아다닌 끝에 충북 시골에 둥지를 튼 이모 씨(56)는 이웃집 개가 자신의 애완견을 물어 죽인 사건 이후로 이웃집과는 견원지간이 되었다. 전남으로 귀농한 최모 씨(55)는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이웃집의 개와 닭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불편하고 힘든 전원생활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귀농·귀촌의 준비과정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원생활의 불편한 진실들은 이처럼 농촌 입주 이후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귀농·귀촌이란 결국 전원에서 사는 것인데, 준비과정에서 투자가치 등을 우선하고 이 ‘생활’이란 측면을 소홀히 한 결과다. 살면서 깨닫게 되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필자는 귀농·귀촌 강의 때마다 “농지에 포위된 땅은 가급적 사지 말라”고 강조한다. 도시인들은 장래 전원생활을 위해 대개 논밭, 과수원 등 농지를 사서 그 일부를 전용해 집을 짓는다. 또 필지 규모가 큰 농지는 일부를 분할해 매입하게 된다. 이때 사방팔방 농지에 둘러싸인 땅은 피하는 게 좋다.
도시인들이 농지에 포위된 땅을 별 생각 없이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봄에는 녹색 작물들이 쑥쑥 자라며 생명 에너지를 내뿜는다. 여름이면 줄기와 잎은 더욱 푸르러지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풍요로움을 한껏 선사한다. 이런 농촌의 겉모습을 그대로 그 땅의 입지적 장점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농지에 포위된 땅에 집을 짓고 들어가 사는 순간부터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농촌은 2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는 두엄 냄새가 진동한다. 이후 작물 파종 및 재배의 전 과정에서 각종 농약과 비료가 대거 살포된다. 늦가을까지 트랙터, 경운기 등 각종 농기계의 소음도 호젓한 전원생활을 훼방한다. 전원의 축복을 만끽해야 할 봄∼가을에 자칫 창문을 닫아걸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농촌에서 농사야말로 지극히 일상적인 생산 활동이다. 하지만 농지에 포위된 전원생활은 자칫 ‘악몽’이 될 수도 있다. 힐링이 되는 전원생활을 원한다면 집이 들어설 터의 후면과 측면 등 2개 면 정도는 숲과 개울 등에 접해 농사로부터 분리된 곳이 좋다.
이렇듯 도시인이 꿈꾸는 전원생활과 실제 생활은 크게 다르다. 실제 전원생활을 해보면 예상치 못한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2010년 이후 제2차 귀농·귀촌 열풍이 불면서 많은 이가 전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를 돕기 위해 다양한 귀농·귀촌 교육과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개는 억대 농부, 6차 산업 창업, 전원 재테크 등 성공 방법론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인생 2막의 새로운 선택인 귀농·귀촌은 시골에 발 딛고 사는 ‘생활’이다. 따라서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무엇보다 행복한 전원생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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