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노.후.대.책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원수 같던 남편이 그립네요

여행가/허기성 2015. 11. 5. 13:05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원수 같던 남편이 그립네요

배우자와 사별 이후 홀로 맞는 노년을 누군가는 이렇게 비유하더군요. 내려야 할 역을 놓치고, 어딘지도 모르는 다음 역까지 무작정 가고 있는 기차의 승객이 된 기분이라고요. 함께 떠나온 벗은 이미 내렸는데, 나는 다음 역까지 갔다가 되짚어 돌아와야 하는…. 그 어정쩡한 시간 동안, 누군가는 새로운 벗을 만나고, 여정을 바꾸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은 당혹감 속에 허둥대며 그 시간을 놓쳐버리지요.

여유롭게 창밖을 보다가,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는 오늘의 손님. 이미 오래전에 혼자 내려버린 야속한 벗을 향한 그녀의 혼잣말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홍 여사 드림

별별다방을 꼭 챙겨보는 독자입니다. 지난주에 실린 사연도 저는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황혼의 벗이 되어 다정히 지내시던 두 분이 현실적인 이유로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 하는 사연이었지요. 저 역시 오래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몸으로 늙어가는 처지이다 보니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듯합니다.

제 남편은 오십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아직 오십도 못 되었었고, 아이들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지요. 생각하면 참 아까운 나이 아닌가요? 탈 없이 자란 아이들 바라보며, 생활의 여유도 누리며, 다시 한번 부부의 정을 나눌 수도 있는 나이였을 텐데요.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렇게 금실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위해 주며 정 좋게 산 것은 십년 남짓, 그 뒤로는 나쁜 기억이 더 많습니다. 물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겠지만, 저는 남편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삼십대 중반부터 권태기가 온 것인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밖으로만 돌더니, 결국엔 외도까지 저지르더군요.

 

가정으로 돌아온 뒤에도 영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제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손을 댔지요. 사업이 잘될 때는 코빼기도 보기 어렵더니, 어느 날 빈털터리로 들어앉더군요. 그 뒤로는 술을 많이 먹었고, 벌이가 없이 씀씀이는 크니 주위에 빚을 지기 시작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이미 수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가족의 생계를 제가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바람난 남편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작게 시작한 것인데, 제법 장사가 잘되어서 바쁘게 돌아갈 때였습니다.

 

남편은 거리낌 없이 저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하더군요. 소소한 빚은 할 수 없이 갚아줬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니 제 마음도 차츰 냉정해지더군요.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랴 싶었습니다. 잘나갈 때는 밖으로 돌며 자기 볼일만 보던 사람이, 무슨 낯으로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호령인가 싶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집에 들어가 남편과 얼굴 부딪히기 싫어, 가게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던 일요.

그러던 중에 남편이 세상을 뜬 것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심장마비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이미 간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식구들한테 아직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친정부모님도 아직 생존해계신데, 남편을 먼저 보내고 저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충격이었지요. 이제 남편이 영 못 돌아올 길을 갔다는 걸 생각하면, 인생이 불쌍하고 서글픈 마음에 눈물은 맺히더군요. 하지만 그 눈물도 결국 내 설움에서 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과부 팔자인 나 자신이 더 처량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도 쉬었습니다. 벌 받을 소리이지만, 남편 한 사람으로 인해 생겨났던 모든 불화와 고통도 다 떠나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 후로 이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두 딸은 시집을 가서 부모가 되었지요. 그리고 저는 십 년 이상 혼자서 꼿꼿이 살아오고 있습니다. 남들은 외롭다 서글프다 하는데, 저는 그런 것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을 할 땐 재미나게 일했고, 그 뒤로는 열심히 즐겼습니다. 친구도 만나고, 이것저것 배우려도 다니고요. 이런 저를 보고 친구들은 모범적인 독거노인이라고 하네요. 딸들도 고맙다고 하고요. 황혼의 만남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했습니다. 평생 남자와의 인연에 얽혀 마음고생을 한 것도 부족해서 이 나이에 무엇하러요?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모양입니다. 지난주 사연을 읽으며, 저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연 속의 두 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그분들이 아름답게 맺어지길 빌게 되더군요. 그만큼 혼자서 살아가는 일에 제가 지치고 약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십년 전, 딸들을 떠나보낼 때만 해도 제가 아직 오십대였습니다. 난생처음 혼자가 되어보니, 자유를 얻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 노인의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모든 일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남편이 그립네요. 안 좋은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한데, 그게 지금 봐서는 대수롭잖게 느껴집니다. 지금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지난 일은 굳이 따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싱크대 문을 벌컥 열다가, 오래된 경첩이 망가져 문짝이 덜렁 떨어져버리더군요. 깜짝 놀라서 문을 꽉 붙들며, 저도 모르게, ○○ 아빠! 하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놓고 얼마나 기분이 이상하던지요. 남편을 '○○ 아빠'라고 살갑게 부른 건 수십 년도 더 된 일인데, 그 말이 어떻게 저한테서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치매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온 건지….

나이가 드니, 저에게도 외로움이 저절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외로워서 새 인연을 찾는 성격은 또 못 됩니다. 저세상 간 남편만 점점 더 생각나고, 남편한테 하는 혼잣말만 느네요. 저는 쪼글쪼글 주름진 할마씨인데, 눈에 선한 남편은 아직도 오십대 청년입니다. 마누라에게도 병을 숨기고 외롭게 저세상 가게 한 게 너무 미안한데, 그 마음을 전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