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도시 빈민들, 더 끔찍한 가난에 갇히다
몽펠리에에서 자동차로 45분쯤 떨어진 곳에 강주라는 도시가 있다. 에로 강 지류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구 4천 명의 시골 도시다. 몽펠리에 북쪽에 위치한 ‘꿈을 실현해낸 이 도시’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유로메드신과 아그로폴리스 기술단지 사이로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몽펠리에가 끝난다. 이때부터 포도밭과 랑그도크의 구릉지대를 지나는 직선도로가 펼쳐진다. 이윽고 세벤 초입에 이르면 직선도로는 구불구불한 시골길로 변한다. 강주는 일자리와 편의시설을 갖춘 몽펠리에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의외로 꾸준히 이주민이 늘고 있다. 1992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이들의 수는 어림잡아 1천 명에 달한다.
빚더미 해결 못해 시골행 선택
몽펠리에 시 외곽에 살다가 조기 퇴직한 베르나르와 크리스틴 부부(1)는 2008년 강주를 찾았다. 남자는 도시청소 용역회사 ‘니콜랭’에서 일했고, 여자는 지역 중학교에서 미화원으로 일했다. 퇴직 시기가 되자 이 부부의 소득은 급격히 줄었다. 이들은 퇴직 전에 받은 신용대출을 상환해야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빚더미에 앉아 늘어나는 가계지출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지방세 인상이 쐐기를 박았다. 이들은 결국 몽펠리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은 모두 우연에 의해 일이 진행됐다. 우연히 시골에 저렴한 집 한 채를 구했다. 지방세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고, 몽펠리에에서 5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고 부부는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우연이란 필연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그저 이들이 필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부부나 혹은 이들과 비슷한 인생 역정의 예를 살펴보면, 농촌 인구가 20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도시민 이주 현상은 기존에 도시 외곽에만 제한돼 있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이름 모를 시골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시골 도시의 4분의 3에서 인구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농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해석한다. 마침내 수십 년 소외의 역사에서 벗어나 ‘농민의 몰락’과 ‘향토의 종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2) 하지만 사회·지리학적 차원에서 동태 분석을 해보면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동안 귀촌은 중산층이나 상위층, 혹은 가족과 시골에 단독주택을 마련해 좀더 안락한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젊은 회사 중역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민층도 도시를 떠나 귀촌한다. 이에 따라 농촌의 사회학적 양상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농촌 인구의 60%는 일용직 노동자나 임금노동자가 차지한다.(3)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던 산업혁명 시기에는 소농민이나 장인이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요즘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특히 가장 빈곤한 가정(4))가 부동산 가격 인상을 견디다 못해 도시 밖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도시화의 부산물로 치부한 1970년대 도시 정책으로 인해, 이런 변화의 본질은 뒤로 묻혀버렸다. 그러나 오늘날 94개 도 중 90개 도에서 도시보다 시골의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농촌 세계의 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시골 빈곤 문제의 중심에는 신흥 빈곤층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느는 인구, ‘농촌의 부활’?
“이곳은 콜로라도의 축소판이다. 저 아래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정말이지 지상낙원이나 다름없다. 여름이면 저마다 이곳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고 실비가 설명했다. 그녀는 10년 전 직장을 잃고 파리를 떠나 처음 강주에 왔다. 다른 단기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여름휴가철 강주의 매력에 빠졌다.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에로강변에서는 기분 좋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시청 광장도 끝내준다. 광장에 즐비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오늘날 도시는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운 전원의 삶을 예찬하며 도시민을 유혹한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더라도 집세가 저렴하기 때문에, 전원생활은 전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퇴직 시기가 되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혹은 직장에서 쫓겨난 다음 강주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튼다.
1970년대에 이르러, 환경이 새로운 정치 화두로 떠오르고 일부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천편일률적인 도시생활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전원의 삶이 지닌 긍정적 가치를 새로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도시의 삶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와 만나 전원의 삶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에 편입된다. 하지만 이런 ‘문화접변’(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해 새로운 문화 형식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역자) 현상은 부동산 개발업자나 심지어 ‘향토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지역의원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지역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5) 지역의 상업적 이용 현상(특히 지중해 연안 지역의 마케팅)이나 대도시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등장한 농촌 문화 붐(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친환경 제품 시장)이 신흥 빈곤층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이 환상을 통해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사회·지리학적 유배 현상을 승화시켰다.
빈곤, 도시보다 시골이 심각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금세 저마다 불행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고 실비는 말한다. 가을이 되면 세벤 지역 특유의 소나기와 폭우가 마시프 상트랄(프랑스 중남부 산지-역자)의 산줄기를 거세게 두드린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온대기후에 속해 있지만, 세벤은 의외로 겨울이 길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매년 9월이면 복지 상담자가 줄을 잇는다. 이들은 여름의 강주만 보고 1년 내내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캠핑촌으로 이주했다가, 가을의 악천후나 매서운 겨울에 실망한다”고 말했다.
강주에 차갑고 짙은 안개가 끼는 계절이 찾아오면 아파트로 이사온 새 입주민은 다시 한번 당황한다. 프랑스의 다른 농촌 지역처럼 강주의 집들은 모두 1949년 이전에 지어졌다. 구멍 뚫린 지붕, 방음이 되지 않는 창문, 옛날에 설치된 구식 전기 설비 등 집들이 대체로 노후하다. 세벤의 낡은 아파트는 열악하다.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있지만 집이 거의 폐가 수준”이라는 게 실비의 설명이다. 겨울이면 벽이나 높은 천장에서 스며나오는 습기 때문에 집이 거의 냉동고나 다름없다. 도무지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등유 탱크가 비거나, 전기세를 낼 형편이 안 되면 석유난로를 중심으로 생활 동선이 재편된다.
새 입주민들은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츰 소득이 주는 것을 경험한다.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 월급을 대신하게 되고, 실업수당도 차츰 줄어든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월 460유로의 ‘능동적 연대소득’(6)(RSA·실업수당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하는 실업자에게 그 차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역자)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헤어나기 힘든 늪이다. 저렴한 집세에 끌려 이주했다가는 일자리가 많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재취업이 어려워진다. 도시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에 의해 경제활동이 다각화·집중화되고 있지만, 농촌의 일자리는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을뿐더러, 다양성도 떨어지고 희귀하기까지 하다.
그림 같은 풍광, 여름에만 좋았다
안느는 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둔 뒤, 딸을 데리고 몽펠리에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비싼 집세 때문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처음에는 몽펠리에에서 15km, 그 다음은 20km…, 그러다 강주를 발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일단 일자리가 널려 있는 큰 지방도시에서 멀어지자 실업과 잡업,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일자리도 없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그녀가 털어놓았다. 안느는 현재 한 공립 초등학교에 시간제 비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월급 810유로에 빚까지 진 그녀는 툭하면 빈민무료식당(Resto du Coeur)이나 푸드뱅크(식품을 기탁받아 이를 소외 계층에 지원하는 식품 지원 복지 서비스-역자)를 전전하기 일쑤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큰 도시 근처로 이사해 다시 일자리를 얻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폐가 다름없는 주택, 말라버린 돈줄
강주에서는 경제활동인구의 15%가 실업자이고(강주가 속한 에로도가 13.7%, 프랑스 전체는 10%),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시간제로 일한다.(7) 처음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합성섬유가 등장하더니 그다음에는 아시아 국가의 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예전에 황금기를 구가하던 지역 섬유산업은 퇴락의 길을 걸었다. 한창 때 강주의 방적회사들은 세벤 지방의 양잠장에서 나오는 명주실로 전세계로 수출될 고급 스타킹을 생산했다. 하지만 요즘 이곳 일자리의 80%는 섬유산업이 아닌, 여름철 관광 숙박산업이다.
점점 대도시를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반대로 일자리는 주요 도시에 집중되고 있다. 사람과 일자리의 분포 지역이 서로 다르다 보니, 매일 거주지에서 직장까지 원거리로 출퇴근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농촌 지역은 빈곤의 무게를 더욱 가중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30km나 떨어진 곳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오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기름값을 추가로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차는 낡아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대중교통 시설이 열악한 이 지역 주민에게 도의회 버스는 자가용을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시간은 금이요, 최대한 활동 거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최대 미덕이라는 기치 아래, 지배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공간을 구조화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은 사회·지리적 차원에서 항상 임금노동자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구축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성을 요구하는 것은 빈곤과 소외를 더욱 부추기는 촉진제와 같다.(8) 지리학자 장피에르 오르페이유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이동성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빈부 격차를 판가름하는 요소다. 나아가 빈과 부의 대물림까지 결정한다.”(9)
일자리는 대도시에만 몰려 있는 법
계급 추락의 마지막 단계는 귀촌이다. 사실 농촌으로 이주하면 적은 돈으로도 더 잘 살아야 맞다. 하지만 새로운 생활공간에서 비롯되는 자원을 이용해, 생계(어떤 이들은 ‘항전’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전략을 찾아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을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이 한 푼도 없는 이들에게 농촌은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사회적 자본, 즉 경제력과 권력이 세대 간에 대물림되는 것을 의미-역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기적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만성 실업자가 되어 ‘능동적 연대소득’으로 연명하며 빈곤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 지역 사회복지 담당자 알랭 샤펠은 “빈곤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력을 더욱 보강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주에 배속된 복지사는 모두 3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1명이면 족했다. 자크 리고 강주시장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강주의 푸드뱅크가 지원하는 사람이 족히 300명이나 된다. 하지만 빈곤층이 늘면서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점점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당국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리고 시장은 “5년 전, 빈곤 가정에 세를 줄 요량으로 낡은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자가 대거 등장했다”고 말한다. 대도시 빈민가에서처럼 이곳에도 세입자를 등쳐먹는 악덕 임대인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낡은 주택을 전혀 손보지 않은 채 저렴한 주택 수요에만 의지해, 형언할 수 없이 열악한 집을 빌려주고 세를 받아먹는다. 저렴한 집세는 이곳으로 극빈층을 유혹하고 집중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차츰 빈민시장이 형성됐다.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집을 임대하며 돈을 버는 투자자가 다가 아니었다. 항상 최적의 입지 지역을 찾아다니는 하드디스카운트 스토어도 짭짤한 사업거리를 찾아나섰다. 할인전문점 ‘리들’은 낡은 옛 협동 양조장(Cave Cooperative·와인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회사 및 조합-역자) 건물에 새 매장을 오픈했다. 다른 두 슈퍼마켓 할인점 ‘알디’와 ‘리더 프라이스’도 현재 점포 부지를 물색 중이다.
시골로 확대되는 구호단체 활동
빈곤층이 한곳에 집중되는 현상은 이곳에 많은 구호단체가 몰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1만 명이 사는 작은 시골 도시에 푸드뱅크에서 ‘대중구호’, ‘가톨릭 구호’, ‘구세군’, ‘마음의 식당’(빈민 무료 식당-역자)까지 극빈층을 도우러 오는 단체가 줄을 잇는다. ‘대중구호’ 지역 담당자 나탈리 톨렐은 연간 350명, 겨울철에는 550명 이상을 상대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임금자, 퇴직자, 노숙자, 가족이 해체된 젊은이 등 대상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도시를 떠났지만, 농촌에서 도로 가난과 재회한 이들이다. 도시 탈출 현상이 심화되자 ‘대중구호’는 주변의 작은 시골 도시까지 구호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여러 작은 시골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지만, 베다리외시에도 새로 지역 사무소를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도시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흔히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시골에서의 삶이 일종의 사회적 목회(Social Ministry·교회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목회 활동-역자)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농촌 지역은 사회적 차원에서 불균형한 양상을 보인다. 일단 도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중산층이나 상위층이 주를 이루는 몇몇 도시는 비싼 토지를 무기로 내세우며 서민층이 자기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고 있다.(10)
각각의 작은 시골 도시 차원에서도 똑같은 사회계급 분리 논리가 작용한다. 강주에서도 도시의 전형인 공간 분리, 즉 폐쇄형 주택 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돈 가진 자에게 자기들끼리의 안전한 삶을 제안한다.
이로 인해 이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구별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농촌 이주민은 여전히 도시와 시골은 엄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단지 그 차이가 역전됐을 뿐이다. 이제 이들에게 잃어버린 낙원은 전원생활의 진정성이 아닌 도시의 불빛이다. 가령 이들은 “도시생활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는데, 모두가 알고 지내며 자유롭게 담소를 즐기곤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제 도시는 정겨운 마을이 되고, 반대로 시골 마을은 ‘게토’로 그려진다. ‘게토’는 시골 마을 사회복지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이들은 예전에 일하던 도시 외곽 빈민가와 지금 일하고 있는 시골 마을이 별반 차이 없다고 여긴다.
도시는 그들의 귀환을 거부한다
귀촌한 도시민 중엔 도시의 상업화된 오락 공간과 인위적으로 연출된 활기의 공간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겐 대형 할인점 ‘오샹’이 있었다. 몽펠리에에서의 생활은 아주 좋았다”고 말한다. 앙티곤 지구와 대형 상업센터 ‘폴리곤’, 그리고 복합센터·프랜차이즈 레스토랑·대형할인점 등이 즐비한 오디세움 신흥지구까지 연극무대 연출에 가까운 도시 개발이 비정상적인 환상을 낳았다.
몽펠리에는 다른 도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에서 몽펠리에만큼 시 단위로 대대적인 개발 정책이 진행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직 시장이자 현재 몽펠리에 도시공동체 회장으로 있는 조르주 프레시는 도시 유토피아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고대 격언을 포스트모던적으로 짜깁기한 말로 ‘지중해 거점 도시’라는 신화를 현실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랑그도크 지역의 이 도시는 시장 자유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신자유주의적 시행정의 모태가 되었다.(11) 몽펠리에의 실험적인 정책은 이후 다른 지역 의원들에게도 전범이 되었다. 이제 의원의 가치는 얼마만큼 시의 상업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첨단기술 기업을 유치하느냐에 결정된다.
에로 지역으로 이주하는 인구는 매달 1천 명에 달한다. 가히 기록적인 이주율이다. 빈곤층은 도시 중산층을 위해 대형 세탁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몽펠리에에서 내몰려 먼 시골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현대판 아테네’와 다름없는 몽펠리에에서는 소수의 자유 시민에게만 사회적 장소를 소유하고 누릴 권리가 주어진다. 도시는 최초의 단계이자, 유형을 예비하는 이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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