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훈/ 늙고 힘빠진 일본···곧 닥칠 우리의 미래
지방 뿐 아니라 수도권도 셔터내린 폐점 가게 즐비
· ‘미증유’의 내수 축소…아베노믹스도 역부족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60여㎞ 떨어진 이바라키현 쓰치우라(土浦)시.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이곳은 20여년전만 해도 도쿄 샐러리맨들의 원정 유흥가로 활황을 누렸다. 고아미야(小網屋), 니시토모(西友), 마루이(丸井) 등 대형백화점이 즐비했던 상업도시였지만 오랜 불황에 인구까지 줄면서 지금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샷타도오리(シャッタ-通り·폐점해 셔터내린 가게들이 많은 거리)’가 됐다. 쓰치우라역 맞은 편 중심가에 입주해 있던 대형 할인점은 매출감소를 견디지 못해 철수했고, 건물이 한동안 비어있다 지난해 9월 시청 청사가 옮겨왔다. 관청이 들어서면 상권이 살아나리라 기대했지만 상인들은 “별 도움이 안됐다”고 한다.
■수도권 곳곳이 ‘고스트타운(유령마을)’
지난달 4일 찾은 쓰치우라 시내 중심가에는 폐업해 셔터를 내린 점포들이 즐비했다. 역에서 도보로 3분 남짓 거리에 있는 대형 쇼핑상가 ‘몰 505’은 말 그대로 ‘샷타도오리’였다. 낮시간대인데도 1층에 서점과 커피숍 두어곳만 문을 열었을 뿐 거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예전에 네일살롱, 카페 등임을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눈에 띨 뿐이다. 철제 우편함은 문짝들이 떨어져 나간 채 너덜 거렸다. 역 부근에서 14년째 한국식당 ‘민속촌’을 운영하는 오우라 도모미(大浦智美·53)는 “몇년째 오는 단골들을 제외하곤 새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한해 한해가 다를 정도로 매상이 줄어든다”고 했다. 역과 닿는 간선도로변이어서 목이 좋은데도 다른 식당은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쓰치우라시가 쇠퇴한 것은 인근 쓰쿠바(つくば)시의 영향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학원도시인 쓰쿠바대를 이바라키현의 거점도시로 육성하면서 사람과 돈이 몰려간 것이다. 인구의 절대수가 줄어드는데다 그나마 인근도시가 인구를 앗아간 결과다. 쓰치우라의 인구는 2000년(14만4000명)에 정점을 찍고 조금씩 줄어 지난해 14만1000명이 됐다. 오우라는 “대낮 시내에도 인적이 드물어 고스트타운(유령마을)이란 말도 나온다”고 했다.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의 가와고에(川越)시 ‘그린파크’ 아파트 단지. 1980년대초 1450가구 규모 베드타운으로 조성된 이곳은 입주민 고령화로 단지에 붙어있던 초등학교가 설립 22년만에 폐교했다. 지난달 2일 찾아간 가와고에후루야미나미 초등학교 자리는 ‘시교육센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서 30년째 살아온 효모토 가요(兵本佳代·73)는 “학교가 있을 땐 벚꽃이 활짝 핀 교정에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일본 수도권에 속하는 이바라기현 쓰치우라의 시내 중심가에는 장사가 안돼 셔터를 내린 가게들이 즐비하다.
도쿄 도심까지 1시간 통근거리인데다 땅값이 비교적 싸 80년대에는 도쿄에서도 많은 이들이 내집 마련을 위해 입주했다. 하지만 90년대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90년대 중반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면서 도쿄 집값이 내려가자 젊은 세대들이 하나둘씩 단지를 떠났다. 현재 단지의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주 비율은 30%, 빈집도 10%에 달한다. 입주 초기 1500만엔 하던 24평 크기 아파트(방 3개)가 지금은 3분의 1이하인 400~500만엔(4400~5500만원)에 거래된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인들이 불편한 저층아파트의 꼭대기층(5층)은 얼마전 24평 매물이 단돈 54만엔(600만원)에 거래됐을 정도로 폭락했다. 고령화된 주민들이 외출을 줄이면서 단지내 상가도 평일에도 문을 닫은 곳들이 눈에 띠었다.
■아베노믹스로도 못막는 ‘수요감소 불치병’
일본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199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데 이어 200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로 돌아서며 ‘미증유’의 내수축소를 겪고 있다. 휘발유·책 등 소비재들은 1996년을 고비로 감소세로 전환했다. 1996년 9억1531만권이던 서적판매 부수는 2014년 6만4461만권으로 29.6%나 줄었다. 1994년 6만421곳이던 주유소는 2014년 3만3510곳으로 45%나 급감했다. 소비의 대표지표인 소매판매액도 1996년을 고비로 감소로 돌아섰다. 소비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전역 7만7000곳에 달하는 사찰의 30~40%가량이 2040년이면 주지가 사라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승려인 우카이 히데노리는 문예춘추 기고에서 “후쿠시마현 일대에는 승려 1명이 14개 사찰의 주지를 겸할 정도”라며 “사찰관리가 제대로 안돼 불상도난이 수시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일본 총무대신과 이와테현 지사를 지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는 2014년 <지방소멸>에서 2040년까지 전체 기초단체의 49.8%인 896개 시·구·정·촌(市區町村)이 소멸위기를 맞을 것으로 분석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아베노믹스’ 효과로 소비감소는 일시 진정세를 보이다 최근 흐름이 다시 꺾이기 시작했다.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12월 전년대비 1.1% 감소했고 전달대비로도 0.3%가 줄었다. 인구감소가 지속하는 한 아베노믹스로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일깨우는 지표들이다. 일본 경제는 인구감소에 따른 수요부족이라는‘불치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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