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경제] 그들은 왜 재개발을 반대했을까?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사업. 15개 구역 중 5개 구역이 사업이 취소되거나 취소될 예정입니다. 주민들이 오히려 재개발을 반대합니다. 주민동의 70%를 넘기면 되는데, 반대 주민이 자꾸 늘어납니다. 경남 창원시는 25개 재개발지역 중 10곳 이상이 무산위기입니다. 추진하면 어찌 됐건 집값은 올라갈 텐데 왜 반대할까? 황금알을 낳는다는데.
서울시가 뉴타운을 발표할 때마다 해당 지역의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개벽 천지가 되고, 투기가 난무했습니다. “혹시 뭐 들은 거 없어요?” 질문을 자주 들었습니다. 시청 앞에는 툭하면 뉴타운에 지정에서 탈락한 지역 주민들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모 신문사는 엠바고를 깨고 00뉴타운 지정소식을 전했다가, 기자실 출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뉴타운을 이제는 주민들이 반대합니다. 왜 이런 뉴타운을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재개발 방식은 참 화끈합니다.
모두 허물고 멋진 초고층의 아파트를 짓습니다. 주변 도심 인프라까지 화끈하게 정비됩니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무너져가는 노후주택은 멋진 래미안이나 자이 아파트로 변신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1) 일단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서울의 경우 가구당 감정평가액이 2~3억 원이라고 가정해도, 분양가가 5~6억 원을 훌쩍 넘어갑니다. 근본적으로 노후주택(산동네) 주민들이 이 추가부담금을 감당하기 힘든 구조입니다(사실 정확하게 얼마나 추가부담금이 나오는지도 사업시행인가 나고 관리처분 인가가 난 뒤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2) 이러다 보니 정작 고생 끝에 입주할 때는 원주민들이 다 떠난 뒵니다. 세탁소 김 사장도, 옆집 이 씨 할머니도 모두 떠납니다. 원주민 재정착률이 많아야 한 30%... 예전에 난곡이나 길음뉴타운처럼 가난한 동네는 원주민 정착률이 불과 8~9%입니다. 100가구 중 92가구가 떠나는 뉴타운. 말 그대로 뉴타운입니다. 새 사람이 들어오고, 헌 사람은 떠나야 합니다.
서울시 조사를 보면 보통 재개발 사업을 하면, 입주 뒤 주민들의 평균소득이 평균 3배 이상 높아집니다. 그러니 애초에 세탁소 김 사장은 버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우리 재개발사업은 원주민을 쫓아내는 이상한 재개발이 됐습니다.
물론 1~2억 시세였던 노후주택이 재개발이 확정되면 가격이 오릅니다. 팔고 떠나면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개발이익이 일부 원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원주민 이 씨 할머니 생각은 다릅니다. 지금 이 노후주택도 방 2개 월세를 내주고 70만 원(30만 원+40만 원)의 수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25평을 받으면 ① 이런 월수입은 사라지고 대신 ② 매월 백만 원이 넘는 대출 원리금과 ③ 매월 20만 원이 넘는 아파트 관리비까지 내야 합니다. ‘헌 집 대신 받은 새집의 기회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그러니 도장을 찍지 않는 겁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구역이 늘어납니다. 재개발은 기본적으로 추가분의 일반아파트 분양을 통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낮추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일반분양이 쉽지 않은 지역이 많습니다. 사업성이 좋은 재개발 구역은 이미 대부분 마무리됐습니다.
남은 상당수의 구역이 사업성이 떨어집니다(용적률 등의 다른 문제도 많습니다). 돈이 안 되는 재개발 사업은 시공사조차 구하기 어렵습니다. 집은 노후되는데,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서울은 물론 인천과 수원 등 수도권에만 이런 재개발 추진구역이 수백 곳이 넘습니다.
[김기자의 똑똑한 경제] □ 방송일시 : 2017년 01월 12일(목요일)
이 기사는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음성서비스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선진국에는 이런 재개발이 없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만큼 건축기술이 뛰어난 유럽 등 선진국들은 왜 노후주택을 허물고 새 빌딩을 올리는 재개발을 잘 하지 않을까?(프랑스나 독일에는 디벨로퍼 회장님들이 없나?) 그들은 왜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된 주택을 굳이 고치고 또 고치며 살까? 그렇다면 우리의 재개발의 방식이 맞는지, 혹시 다른 대안은 없는지 생각해 볼 시간입니다.
사실은 다른 방식의 재개발을 시도하는 동네가 많습니다. 무너지는 노후주택을 지켜볼 수만 없으니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기 집은 자기가 고치는 겁니다. 대신 정부나 자치단체는 지원을 합니다. 1) 지역이 지정되면 2) 주민들이 앞장서 조합이나 모임을 만들고 3) 자치단체는 구체적인 지원 방법을 주민들과 논의합니다.
먼저 구청이 도로를 정비하고 주변 하천 등의 오염원을 제거합니다. 골목길을 펴주고, 특히 주차장을 만들어줍니다(여기까지만 해줘도 마을이 좀 번듯해집니다). 등산로를 정비하고 CCTV를 곳곳에 설치합니다. 그리고 집수리를 위한 각종 제도적 지원을 병행합니다. 서울시 은평구 산새마을이 대표적입니다. 쓰러져가는 900가구를 위해 서울시는 먼저 도로와 골목길을 정비해줬습니다. 주민들은 도축장과 쓰레기장이었던 공터를 1,600㎡의 텃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이 집수리를 도와주는 ‘노후주택 집수리 지원센터’도 문을 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집은 주민들이 스스로 고칩니다. 주민둥지라는 주민공동 시설도 만들었습니다. 1층 북카페, 공동육아방, 2층 청소년을 위한 독서실이 들어섰습니다. 지금 수원 화성일대 원도심 개발도 이렇게 합니다. 주민들에게 먼저 사업계획서를 받습니다. 주민들이 주인이 돼서 고칩니다. 정부나 자치단체는 지원을 합니다.
비단 주택뿐 아니라 노후 공장이나 상업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허물고 빌딩을 짓는 재개발이 꼭 정답일까? 서울 성수동의 문화적 변화가 그 사례입니다. 만약 이대 앞처럼 허물고 고층 대형 상가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대는 재개발로 상가공급이 넘치면서 오히려 상권이 시들고 있습니다. 그게 꼭 정답이 아니었던 거죠. 정부도 도시재생지원법을 개정하면서, 꼭 주택개선이 아니라 사회ㆍ경제ㆍ문화 등 종합적 기능 개선으로 개념을 바꿨습니다.
인류는 수 천 년 동안 우리가 사는 오래된 헌 집을 고쳐왔습니다. 물론 뉴타운이라는 획기적 재개발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방법으로는 안 되는 마을이 늘어납니다. 마냥 되지도 않는 재개발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각 마을에 맞는 재개발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도심재생사업은 이제 그 시험대에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네들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원장기자 (ki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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