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76)씨는 얼마 전 지하철에서 다소 언짢은 일을 겪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옆에 앉아 있던 한 무리의 청년들이 내리면서 “아, ‘틀딱’ 냄새 나”란 말을 남기고 갔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틀딱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본 뒤 김씨는 그날 하루를 완전히 망쳤다고 털어놨다.
#2.이모(73)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명절이 불편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지난 추석에도 모처럼 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이씨의 집에 모였으나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시간을 보냈다. 이씨는 “뭐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나랑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아서 말을 건네기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경로(敬老)라는 말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 빈자리에 조롱과 멸시, 혐오 표현들이 스며들었다. 경로를 비꼬아 만든 혐로(嫌老)라는 단어가 버젓이 통용될 정도다. 2일 제22회 노인의 날을 맞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경로 행사를 열었지만 노인들의 주름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노인 4명 중 1명이 “죽고 싶다”는 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2017년 노인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는 인권위가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의 청장년층(18∼64세) 500명과 노인층(65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노인 인권 전반에 관한 인권위 차원의 종합보고서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응답자의 26.0%가 65세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사망률(10만명 당 자살자 수)은 58.6명으로 전체 자살사망률 26.5명의 두 배가 넘었다. 자살사망률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특징을 보이는데, 80세 이상은 83.7명이었다.이 같은 상황의 주된 원인으로 노인들의 불안한 경제 사정이 꼽힌다. 보고서에서는 노인층의 절반 가까운 48.8%가 ‘여생을 빈곤에 시달릴 것’이라고 비관했다. ‘노후 재정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노인도 35.5%나 됐다. 경제 사정이 나쁜 노인일수록 학대나 방임,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세대 간 단절도 심각… 혐로 표현 범람
노인들을 비관에 빠뜨리는 데에는 세대 간 단절도 한 몫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층의 51.5%, 청장년층의 87.6%가 각각 서로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 봤다. 비율 차가 30%포인트를 넘길 정도로 양 세대의 시각차가 컸다. 특히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청장년층 비율이 80.4%나 됐다.
최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각종 혐로 표현들이 범람하는 것도 이런 세대 간 단절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혐로 표현으로 ‘노인충’(노인과 벌레 충(蟲)자를 합한 말),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라는 뜻), ‘연금충’(기초노령연금 등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과 벌레를 합한 말) 등이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세대 갈등은 역사를 통틀어 봐도 언제나 있던 일”이라면서도 “최근의 혐로(嫌老) 표현들은 가뜩이나 서구화·개인화된 사회에서 의견 표출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어려움을 기성 세대에게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토로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청장년층과 노년층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아예 모르는 사이보다는 부모 자식 관계나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부터 소통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전날 “우리 사회의 낮은 출산율과 세대 간 소통 문제 등이 맞물려 노인 세대가 미래에 부담이 될 것이란 사회적 인식과 함께 노인혐오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며 “노인이 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만큼 모든 노인이 존엄한 노후를 보장받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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