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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의 역설

여행가/허기성 2008. 6. 18. 06:49
지난 11일 발표한 '지방 미분양 대책'에는 정부가 고심한 흔적이 담겨 있다. 그동안 주택건설업계는 미분양 문제가 외환위기 수준을 초과한 미분양 주택 호수 통계가 시사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미분양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있는 업계 요구를 수용하는 데 부담을 느껴왔다. 결국 정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수요 진작을 위한 금융 세제 대책을 강구하면서도 업계의 자구노력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분양가 10% 인하를 조건으로 전국 비투기지역 소재 주택에 대한 대출 담보인정비율을 60%에서 70%로 상향 조정하고 업체의 자율 결의 등을 통한 분양가의 실질적 인하를 주문했다. 나머지 대책 중 취득세 등록세 1% 감면은 당초 모든 주택에 대해 시행하기로 했다가 지방재정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된 사안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1가구 2주택 보유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일시적 1가구 2주택 보유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완화하고, 매입 임대주택의 의무 임대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많은 선진국의 양도소득세는 주택 보유 수와 무관하게 같은 세율로 부과되며 우리나라처럼 1가구 2주택 이상에 대해 중과세하지 않는 반면 집을 몇 채 보유하고 있든지 실제 거주한 집 한 채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된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투기행위로 봐야 할지 아니면 민간 임대주택 공급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집 한 채씩만 보유한다면 민간 임대주택 공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거주하지 않는 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에 대해 정상적인 과세를 하는 대신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특별한 규제를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가구 2주택에 대한 중과세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사람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주거 목적 외의 주택을 매각하도록 하면 가격이 떨어져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살 수 있게 된다는 논리에서다.

이는 인구와 주택 수가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옳다. 그러나 주택은 수명이 다하면 다시 지어야 하고, 집을 다시 지으려면 새로운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신규 주택 공급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가 부족하면 주택공급이 줄고, 임대료와 매매가격은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1가구 다주택 보유에 관한 우리나라 세제에서 하나 흥미로운 내용은 5채 이상을 일정기간 이상 임대하고 임대사업자로 신고하면 양도소득세 중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세제하에서는 1가구 2~5주택 보유자는 투기꾼이고 5채 이상 세를 놓으면 임대사업자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구입하도록 하고 1가구 2주택 보유에 대해 중과세 적용을 배제하면 미분양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정서에 위배되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최근 외국환 거래 규정을 개정하여 투자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한도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이미 한도 제한 없이 허용되어 왔던 실거주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을 포함한 해외 부동산 투자가 완전 자유화되었다.

종전에는 투자목적으로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때 송금액이 300만달러를 넘으면 한국은행의 신고수리를 받아야 했지만 6월 2일부터는 금액에 관계 없이 외국환은행에 신고수리만으로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번 규제 완화 이유를 '국민이 외환거래에서 느끼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 밖에서는 실거주는 물론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제한 없이 살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나라 안에서는 지방 미분양 주택에까지도 1가구 2주택 보유에 대해 중과세하는 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