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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

흐르는 강물처럼..

여행가/허기성 2006. 4. 17. 23:37
흐르는 강물처럼...




1. 자연같은 자연스러움

 

인간은 자연을 통해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또한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우리 인류사보다 앞서 생성되었던 자연은, 과거에도 그랬었듯이 오늘날도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며 그들만의 "자연스러움" 즉, "자연의 妙"(Nature's engineering)를 간직하며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이들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지켜봐 주질 못하고 이내 그들을 짓밟고 정복하더니 이제는 자연과의 동반자 관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세상 자연의 모든 만물을 가리켜 성 프란체스꼬는(St. Francisco) 나의 한 "형제·자매"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며 나아가 이들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오랫동안의 그의 신학적 경험과 성찰, 그리고 절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발견·이야기되어진 것이지만, 자연을 나와 무관한 존재로 보지 않고 나와 같은 한 피조물로써  살아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말을 자연신비주의사상가의 고백 쯤으로 속단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게 한없이 관대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자연은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틈을조금씩 열어주고 있다. 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자연을 통하여 의도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자연과 항상 함께 하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느껴보자, 바로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려 한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자연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우리가 함께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묘미와 그 이상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여유와 틈을 생각게 하는 배경과 소재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제작·감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숨가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이나마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풍요로운 생활인지를 일깨워 주는 영화가 아닌 듯 싶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주인공에 대한 어떤 개인적 비평조차 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함께 격렬한 몸 동작이 펼쳐지며, 인물을 너무 가까이 클로즈 업 시켜 영화 속 배경에는 관객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현금의 영화들과는 달리, 흐르는 강물처럼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또한 스토리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를 잠시 생각할 수 있는 틈과 여유를 제시하여 준다. 더구나 헐리우드를 비롯한 서구영화들이 지향하는 호화스런 주연배우들의 모습에 중점을 두어 그 인물을 부각시키는 것과는 달리, 넓게 펼쳐진 자연 속에서 한없이 작게만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 한 폭의 동양화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백의 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 주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더욱 평안하게 만들어 주며 화면 속으로 우리들을 초대 한다.  

 

3. 인간 삶의 진미眞味

 

인간은 본래가 악한 존재(선악설)이지만 은총을 통해 신의 리듬을 익힘으로써 힘과 미를 회복한다고 믿는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멕클레인 Maclean씨, 이 영화의 화자인 노먼[Based upon the story by Norman], 그리고 동생 폴Paul, 세 명의 부자들이 그들의 일생을 거쳐 제물 낚시Fly Fishing를 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삶의 리듬과 멋을 표현한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자연을 통한 인간 삶의 진미眞味를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인 것 같다.

20세기 초 미국의 몬타나주의 미줄라에 있는 프론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이들의 집 주위로 흐르는 강에는 유달리 송어가 많아 어려서부터 이들은 낚시를 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아버지는 낚싯줄을 던지기는 것은 예술이라는 장로교식 낚시법을 아들들에게 선보이면서 두 아들들의 삶에 동기를 부여해 주게 된다. 아버지는 사악한 인간이 은총을 통해 선하게 되어 지는데, 이러한 은총은 예술을 통하여 얻어지고, 그리고 예술은 쉽게 얻어지지 않음을 아들들에게 강조하며 제물낚시를 하나의 예술로서 받아들여 그의 두 아들이 낚시를 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진미를 느껴 배우고 터득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부자가 즐기는 낚시는 단순한 송어를 잡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은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적합한 내적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물 낚시는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일련의 인생경로의 이정표이자, 자신의 내적 성숙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4. 새로운 시작과 배려

 

어린시절 강가에 아버지와 함께 제물낚시를 하러 나갈 때면 두 아들은아버지의 능숙한 낚시 솜씨에 감탄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 잡은 송어를 비교하며 자신들이 잡은 것보다 훨씬 큰 송어를 이들에게 보여주며 뒤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던 노먼과 폴, 그러나 아버지는 각각 이들이 잡은 고기를 보며, "둘 다 놀랍구나" 하며 아들들에게 가능성을 주며 이들을 배려해 준다. 머지 않아 둘째 폴은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능숙하게 제물 낚시를 하게 되면서, 폴은 인생의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맞게 된다. 어찌보면 어린시절 친구들은 모두 겁을 내며 주저하던 물살이 거센 폭포위 급류 타기를 성공한 폴은 이미 오래전서부터 자신만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때부터 폴은 그의 친구들과는 다른 삶 속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상상의 나래를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또다른 시작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음이 자명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남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부여해 주는 여유와 배려를 잃지 않음을 엿볼 수가 있다. 어른이 되어 형과 낚시를 함께 간 폴은, 능숙하게 독창적인 리듬(그림자 던지기 : Shadow Casting)을 타며 제물낚시를 즐기는 자신과는 달리, 의기소침하여 무디게 낚싯줄을 던지는 형을 보며 그를 다그치며 놀려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용히 다른 장소에 가 줌으로 형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방법으로 낚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러자 형은 이내 낚시를 멋지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 노먼, 폴, 이 세사람 모두는 제물낚시의 참묘미와 더불어 낚시가 이들에게는 하나의 예술로써 승화된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그의 입을 통해 직접 이 두 아들 노먼과 폴에게 그의 가르침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으나, 아들에게 가능성을 주고 인내를 가지고 차츰 진보해 나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고, 노먼과 폴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만의 독특성을 개발해 내고 그들의 독창적 자태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강요, 직접적인 설명, 다그침은 전혀 없었다. 그냥 서로를 바라만 봐줄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가운데 새로움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 나갈 수 있었으며, 이들은 그 가운데서 인생의 참 의미와 자신들의 내적 성숙을 하나하나 도모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5.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노먼이 노년이 되어서도 제물 낚시를 잊지 못하고 계속하여 즐기는 것은, 그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낚시를 통해 삶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는 내적 발전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듯 싶다. 강물은 계속하여 흐르고, 자연은 계속하여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자연이 우리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배려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 가운데 우리들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맞는 자연스러운 독창적인 소리의 발견일 것이다. 흐르는 강물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의 진미를 느껴 노년이 되어서도 제물낚시를 즐기는 노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