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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잠실의 80년대?

여행가/허기성 2006. 5. 2. 21:41

1981년 삼성동 과 잠실모습.... 지금은?

 




   한편, 주거공간의 확대재생산을 목적으로 한 택지공급정책(宅地供給政策)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강남 신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던 1970년대 초반에는 산업화에 따른 계급구성의 변화로 주택수요구조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1966∼1970년 사이에 서울의 인구증가를 직업별로 보면, 사무직 종사자가 94.3% 증가했으며 전문직은 84.9%, 관리직은 56.7%, 그리고 판매 · 서비스직은 79.1%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서울에 화이트칼라층으로 대표되는 관리 · 사무직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1970년대 이전의 빈민이나 난민구호를 목적으로 한 것과는 달리 자가주택수요(自家住宅需要)의 핵심층으로서 중간계급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지 개발의 압력이 가중되었다. 그런데 서울 시내의 정상택지는 이미 대부분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택지공급정책은 강남의 미개발지역 택지조성과 도심주변의 무허가 정착지의 재개발이라는 두 갈래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註23]
강남 신시가지 개발은 이와 같이 주거공간의 시외곽(市外廓)으로의 확대재생산을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나타난 재정위기와 사업비의 부족은 강남지역의 투기 과열을 조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지역이 중산층의 집단 주거지역으로 형성되면서 서울의 주거지 공간구조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註24]
현재의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이 도시지역으로 개발된 것은 1966년 도시기본계획 당시 이 지역을 부도심으로 계획하였던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지역의 개발을 촉진한 근본적인 계기는 1966년 1월에 착공되어 1969년 2월에 준공된 제3한강교(현재의 한남대교)의 건설과 1968년 2월에 착공되어 1970년 7월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이었다. [註25] 이 때 서울시는 도로주변 용지를 구획정리하고 저가로 매수하면서, 공용사업으로 체비지(替費地)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1968년 2월 1일에 실시 · 인가된 영동 제1지구 510만평의 구획정리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후 서울시는 1970년 6월 16일 한수이남계획(漢水以南計劃)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강남 신시가지개발을 시작하였다. 이 계획은 영동 제2지구 365만평과 잠실지구 176만평에 새로운 계획도시의 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영동지구가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로 선정된 것은 인구분산을 위한 주거지역의 조성과 아울러 도시구획도로인 고속도로 용지의 확보 내지 주변지역의 개발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토지구획정리사업은 결과적으로 체비지 매각수익의 증대를 위한 지가상승으로 부동산 투기붐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가의 상승은 개발지구의 주변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시 전역에 걸쳐 영향을 미침으로써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개발로 인해 상승한 지대를 대토지소유자가 전유하게 됨으로써 개발수익의 불균등한 분배를 낳았다.
한편 영동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면서 주택이 건립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나 실제적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택의 건설이나 강남으로의 주거이동이 극히 부진하였다. [註26] 따라서 1972년 12월 30일 법률 제2436호로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 · 공포되어 강남지구를 특정지구로 고시하고, 1975년까지 영업세, 등록세, 취득세, 재산세, 면허세 등의 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개발을 촉진시켰다.
또한 민간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거점개발전략(據點開發戰略)이 1972년 서울시 공무원아파트와 시영주택단지 개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거점개발전략과 특혜적인 개발육성정책을 통해 강남주거지역의 개발은 가속화되어 지금의 강남지역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숲이 형성되게 되었다. 애당초 계획되지 않았던 아파트지구에 대한 지정은 1973년의 '영동지구 토지이용 세부계획'에서 처음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주택단지의 조성으로 반포주택단지가 들어섰다. 1976년에는 아파트지구에 대한 도시계획법상의 시행령이 마련되고 개포 · 압구정 · 청담 · 도곡 · 이수지구를 아파트지구로 지정하여 민간아파트의 건설을 자극하였다.
경인개발주식회사가 반포지구를 매립하여 주택공사가 그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지구를 조성한 것이 소위 강남지역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효시였다. 현대건설이 한강 남안의 압구정지구를 매립하여 현대아파트지구를 만든 것도 이 시기였다. [註27]
참고로 영동지구 개발계획과 내용의 변천과정을 보면 <표 : 영동지구 개발계획과 내용의 변천과정>과 같다.
1970년대 초반에 서울 강남지역의 신시가지 개발정책이 실시된 이후 이 지역은 이른바 중산층의 거주지역으로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강남지역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註28]
첫째, 신시가지 개발을 통한 대단위 주거지 형성과정에서 강남지역은 주택 공급 및 배분정책으로 인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아파트 비율이 높고 주택의 질도 양호한 지역으로 발달하였다.
둘째, 이와 같은 자가소유 위주의 대규모 고급 주택단지가 형성됨에 따라 강남지역에는 차별적인 근린효과(近隣效果)를 획득하기 위해 중산층들이 대거 이주하여 인구 및 가구특성에서도 다른 지역과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셋째, 강남지역은 주거지역으로서 뿐만 아니라 상업 · 사무기능의 강남이동으로 경제활동의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넷째, 강남지역의 개발과 성장은 서울의 도시 공간구조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편 강남의 성장을 위한 일련의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강북지역의 상대적인 열세를 가져 왔다. 강남지역의 개발과 성장을 위한 재정적 투자와 정책적 배려 속에서 강북의 성장이 위축된 것이다. 강북의 도심 낙후지역 및 변두리 불량주택 밀집지역에서는 생활편익 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고 도시기능의 쇠락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도시공간의 불균등 발전은 심화되고 주거지의 공간적 분화가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후에는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