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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삶"이야기..

CEO 그들은..

여행가/허기성 2006. 6. 17. 22:38


 

‘아니 당신 미쳤어.’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인공 뼈’ 바이오 기업인 ‘오스코텍’ 김정근 대표. 그는 서울대 치의학 박사로 단국대 교수를 지낸 치과의사다. 치과의사를 포기하고 벤처기업을 설립하자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2월. 정부가 벤처지원 정책을 발표하자 그는 과감하게 대학 교수직과 치과의사를 포기하고 평소 친분이 있는 교수 8명과 자본금 5000만원짜리 오스코텍을 설립했다. 당시 미국 대학의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상태였고 치과의사로 개업을 고려하던 때였다. 그는 수익이 보장된 ‘치과의사’로 돈을 벌기보다는 ‘뼈’라는 분야에 심취해 ‘뼈 박사’가 됐고 아예 ‘인공 뼈’를 만들고 관절염 신약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초기에는 사무실을 마련할 돈이 없어 여섯평 남짓한 개인 연구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연구실이 없어 서울대, 경북대, 단국대 의대 등에서 철새 연구 생활을 했다. 지금은 골다공증, 관절염, 치주질환 등 뼈와 관련된 특화 시장을 선점했고 하반기 코스닥시장에도 상장한다.

이처럼 코스닥시장에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士)’자나 ‘교수모’를 버리고 도전정신과 기술만 갖고 고행인 벤처기업 CEO의 길을 걷는 이색 경영인들이 적지않다.

■흰 가운 벗어던진 CEO들

제넥셀 김재섭 대표는 의학박사이면서 서울대, 미국 위스콘신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지낸 코스닥 CEO다. 당뇨병 합병증을 치료하는 혈관 생성 촉진 단백질인 콤프앤지원(C OMP-Ang1)을 개발했다. 서울대 최단 기간 박사학위 취득, 네이처, 셀, 사이언스 등 세계 3대 과학잡지에 6차례 논문 게재, 스웨덴 한림원의 ‘젊은 과학자상’ 수상 등 의사로서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가 힘든 벤처기업 CEO가 된 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다. 외환위기로 형제들이 잇따라 사업에 실패하자 도움을 주기 위해 제넥셀을 설립했다. 앞으로 그는 세계 20대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해 더 많은 어려운 사람에게 힘을 보태주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교수 출신인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제대혈(臍帶血) 보관 기술을 국내 최초로 실용화한 전문의 출신인 양대표는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에 이어 임상병리학 전문의 자격시험에도 수석 합격한 국내 최고의 세포 치료제 전문가다. 양대표는 “제대혈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찾는 환자를 볼 때 보람을 더 느꼈다. 이것이 창업의 동기”라고 말한다. 남들이 모두 말렸지만 양대표의 도전정신을 꺾지는 못했고 그는 지금 시가총액 1000억원이 넘는 코스닥기업의 CEO다.

바이로메드의 김선영 대표도 에이즈 바이러스 연구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MIT·옥스퍼드·하버드 의대에서 교수를 지낸 학자 출신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유전자 치료 전달체로 사용한 신약 개발을 위해 국내 제약사에 사업화를 제의했지만 사업성을 의심받아 거부당하자 지난 96년 서울대학교 벤처기업 1호인 바이로메드를 직접 세웠다.

■전공 살린 CEO들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은 공인회계사다. 유회장은 지난 56년 동아제약에 입사해 근무중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라미화장품 등을 거치면서 88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해 국내 굴지의 화장품 메이커로 발돋움시켰다.

서울대 공학박사인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교수를 꿈꿨으나 제어계측과 박사과정 때 “휴렛팩커드(HP) 같은 회사를 만들어 보라”는 은사의 말에 기업가의 길을 걷기로 방향을 바꿨다. 변사장은 졸업하던 해인 지난 89년 2월 대학원 동료 6명과 함께 가요반주 기업체인 건인시스템을 세워 국내 판매량 1위에 오르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후 셋톱박스를 가요반주기를 이을 새로운 아이템으로 선정했고 98년 사명을 바꿔 현재의 휴맥스로 성장했다.

운수장비 업체 인팩의 최오길 회장도 대학 재학중인 지난 61년
공인회계사 시험 수석 합격을 비롯해 세무사, 경영진단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산업은행과 대신증권을 거쳐 동신제지 CEO로 전문 경영인의 길을 걸은 후 91년 인팩의 전신인 삼영케블을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접 창업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디유하이텍 이경훈 대표도 독특하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경호원으로 들어갔다가 의전비서관이었던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의 결혼 승낙 전제 조건은 사법시험 합격. 결국 그는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으나 최근 폐업하고 전문경영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대표는 “집사람이 변호사 관두려면 이혼하자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는데 경호원을 지냈기 때문에 보안관련 업무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고 향후 유망한 분야이니 믿어달라고 설득했다”며 웃는다.

대우증권 신동민 연구위원은 “코스닥 CEO 중 의사나 교수, 대기업 연구원 등 전문직 출신이 많은 것은 벤처기업의 최고 자산인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학 교육이 산학협동 등을 통한 실용화로 바뀌면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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