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거상들은 장부 가운데 ‘녹심첩’이란 것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한다. 녹심첩은 단골 손님 명단이다. 단골 손님 뿐 아니라 그 손님을 중심으로 3-5대의 가계가 마치 족보처럼, 심지어 외가와 처가 가계까지 정확하게 기록돼있었단다. 여기에 각 인물마다 개인사가 상세히 덧붙여졌다. 자손대대로 물려 번창의 밑천으로 삼은 이 녹심첩은 이들에게 신주단지나 마찬가지였다. 만일 화재라도 발생할라치면 비상반출품 제 1호가 된 것은 물론이다. 중국고전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장수 관우(관운장)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 ‘군신’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군신’으로 추앙받던 관운장은 그러나 19세기 이후 지방 향리와 무인, 상인 계층 사이에서 ‘재물신’과 ‘지방수호신’으로 바뀌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기를 빌며 관운장에게 제사를 지내곤 했다. 이 때 제단에 올려놓는 신물 역시 녹심첩이었다. 철저한 단골 관리가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 상도였음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오늘날에도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단골 관리에 탁월한 노하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규 고객을 많이 창출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고객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들을 단골 계층으로 편입시키는 것도 신규 고객 개척 창출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철저한 단골 관리로 디지털 거상 대열에 올라선 Y씨 역시 이처럼 단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부터 Y씨가 어떻게 고객과 직접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단골을 만들어나갔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철 들 무렵부터 유난히 옷을 좋아했다는 Y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쇼핑몰 오픈으로 진로를 잡았다. 초기 창업자금 1000만원은 부모님께 빌렸다. 이 돈으로 디지털카메라와 조명기기, 초도물품 등을 구입했다. 장소는 야후소호몰로 정했다. 야후소호몰은 여성의류가 특히 강세인 곳. 학생 시절, 야후소호몰에서 종종 옷을 사입곤 했다는 Y씨는 자신도 야후에 둥지를 틀었다. 2003년 3월 일이다. 사실 한 때 엄청난 열풍이었던 소호몰 붐은 요즘 왕창 사그라든 상태다. 처음 소호몰이라는 개념이 생겼을 때는 신기한 마음에서 네티즌들이 소호몰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그러나 신기한 마음이 어느 정도 시들해진 요즘은 구매를 원하는 제품 위주로 검색하고 다닌다. 젖병 하나 사기 위해 육아용품 소호몰을 줄줄이 찾아다니는 대신 옥션 등지에서 젖병을 검색해 가장 싼 가격의 제품을 구입하는 식이다. 이같은 트렌드 변화와 함께 소호몰들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최근 다음, 네이트, NHN 등이 줄줄이 소호몰 코너를 없앴다. 야후소호몰은 현재 포탈 중에서 유일하게 소호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일뿐더러 패션의 메카로 성장했다. 이처럼 야후소호몰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스타소호몰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Y씨의 쇼핑몰도 그 중 하나다. Y씨가 취급하는 여성의류는 아주 흔한 아이템이다. 심지어 쇼핑몰의 70%가 여성의류라 하지 않던가. 차별화가 절실했다. 차별화를 고민하다 Y씨는 ‘제품이 아닌 나 자신을 팔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프라인 상에서 단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제품이 맘에 들어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인이 맘에 들어서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일단 주인과 안면을 트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을 기억해주는 주인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기억하는 주인도 아주 중요한 셈. Y씨는 이 부분을 간파했다. 온라인 쇼핑에서 고객들은 대부분 주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제품만 보고 사게 된다. 이 경우 가격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사는게 중요하지, 어느 쇼핑몰에서 사는가는 전혀 고려할만한 포인트가 되지 않는다.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어떨까, 고객들이 주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면 단골로 편입시킬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는 데 생각이 미친 Y씨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레 자신을 알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Y씨가 생각해낸 방법은 마네킹 대신 스스로를 활용하는 것. 지금은 트렌드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의류 판매몰들은 대부분 옷을 마네킹에 입힌 후 촬영한 사진을 올렸었다. 그러나 Y씨는 자신이 직접 옷을 입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명목상으로는 ‘내 얼굴을 걸고 파는 옷이니 믿고 사라. 내가 직접 입어보고 좋은 옷만 파는 것이지, 그냥 시장에서 물건 사와서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파는게 아니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주인과 고객의 친밀감을 높임으로써 단골로 묶어두자는 전략이었다. 또 한가지. Y씨는 키 크고 늘씬한 모델이나 마네킹이 입었을 때의 모습이 아닌, 자신처럼 평범한 여성이 입었을 때의 모습을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주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아주 날씬하지도 또 뚱뚱하지도 않은 보통 키와 몸무게. 수많은 여성들과 비슷한 체형의 주인장이 입은 모습을 보고 고객 자신이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의도인 셈이다. 이같은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마네킹이나 모델이 입고 찍은 사진에 혹해 샀는데, 막상 받아서 입고 보면 내게는 잘 안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기서 사는 옷은 다르다. 주인장이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가졌던 느낌이 내가 직접 입었을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소박해보이는 주인장 얼굴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다’라는 식의 소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Y씨가 파는 옷은 무조건 믿고 산다는 사람들이 한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단순한 쇼핑몰 주인과 고객의 관계를 넘어서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같은 사이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Y씨 사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준 것은 물론이다. 이 지점에서 응용력을 발휘해보자. 이제 트렌드가 된 ‘주인장이 옷 입고 나서기’를 여성의류를 넘어서 모든 분야의 쇼핑몰에 적용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식품이라면 홈페이지 첫페이지와 상품 중간중간에 파는 이의 얼굴을 올려놓는 식이다. 단순히 사진만 찍어 올리는 게 아니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 쇼핑몰을 운영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물건을 파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올려놓는다면, 적어도 처음 오는 고객에게는 믿을만한 쇼핑몰이라는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고, 계속 오는 고객들에게는 더욱 친근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유아용품이나 어린이한복도 마찬가지다. ‘엄마인, 혹은 아빠인 내가 내 아이에게 줄 좋은 물건을 찾다 쇼핑몰까지 내게 됐다, 내 아이를 위한 물건을 고르는 심정으로 제품을 선택하고 판매한다’는 얘기를 사진과 함께 올려놓는다면, 쇼핑몰은 물론 파는 이에 대한 소개 한 줄 없는 쇼핑몰에 비해 얼마나 가깝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질 것인가. 이 외의 다른 아이템 모두 응용하기 나름일 터다. 자, 이제 물건을 팔지 말고 '나'를 팔아보자. 어느 순간부턴가 물건이 저절로 팔리기 시작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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