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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서 ‘임산부 배지’ 보면 양보를

여행가/허기성 2006. 10. 2. 20:49
[쿠키 사회] 임신 11주째인 김모(27)씨는 지하철에서 불편한 시선을 경험했다. 임산부·노약자용 좌석에 앉았더니 맞은편 할머니가 계속 쳐다보며 나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아 임산부로 보이지 않는 김씨는 버스 승객들에게 ‘개념 없는’ 젊은 여성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5개월째에야 태동을 느끼고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 임신 특성상 '초기 임산부'는 일반인과 겉모습에서 차이가 없다. 굳이 임산부임을 알리지 않는 한 일상에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김씨처럼 억울한 오해를 사곤 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위기를 맞은 한국 사회에서 초기 임산부는 최대한 보호해야 할 '자산'이다. 사회적으로 이들을 배려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 임신 초기 “힘들다, 힘들어”

새내기 임산부 장모(28)씨는 환절기에 덜컥 감기에 걸렸다. 열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임신 초기엔 먹는 약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의사 말을 듣고 ‘감기 쯤이야’하는 생각에 그냥 참았다. 아기를 생각해서 참긴 하지만 약물 도움 없이 견디는 몸은 두배로 힘들었다.

직장인 임산부 박모(29)씨는 식사시간마다 괴로워 혼자 밥을 먹고 싶다고 털어놨다. 입덧을 시작하면서 모든 음식 냄새가 역하게느껴져 함께 식사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식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슬며시 나가고 싶지만 “임신한 게 벼슬이냐 ”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저 참을 뿐이다.

또 다른 직장인 이모(31)씨는 임신 초기 졸음을 견딜 수 없어 고통스러워 했다. 여성휴게실에서 쉬고 싶어도 미혼 여성들의 대화 소리가 시끄러워 몰래 화장실에서 졸다 보면 “무슨 죄인인가 싶어 기분까지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공연을 보러 나선 초기 임산부 유모(31)씨는 좌석을 예매하다 주저앉을 뻔했다. 예매를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긴 줄에 서서 기다리다 빈혈증세가 나타난 것.인터넷으로 예매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난 남편에게 임산부를 위한 빠른 줄은 없냐고 투덜댔다.

◇초기 임산부에게 배려가 필요한 이유

수정란이 자궁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 12주가 소요된다. 이 기간을 임신 초기라고 한다. 이 3개월간 유산 위험이 가장 높다. 그러나 초기 임산부의 겉모습은 자유롭게 생활하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어 주변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임신 초기에 임산부를 괴롭히는 갖가지 증상 중 입덧이 가장 대표적이다. 입덧은 임산부의 70∼80%가 겪는 흔한 증상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기운이 없고 어지럼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수면장애도 임산부를 고통스럽게 한다. 많은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쏟아지는 졸음의 고통을 호소한다. 이로 인해 피로를 쉽게 느껴 밤에는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아침엔 몸이 무거워진다.

일반적으로 먹고 자는 일이 원만치 않아 체력적 무력감이 크다. 급격한 호르몬 분비 변화로 정서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이 있는 임산부는 각박한 사회생활 스트레스로 이중고를 겪기 마련이다.

◇ 임산부 보호 캠페인… ‘i배지’ 부착한 사람은 초기 임산부

임산부전용 사이트 임산부닷컴은 10월10일 ‘제1회 임산부의 날’을 맞아 임산부 배려 캠페인을 벌인다. 이 날은 개정 모자보건법에 따라 지정된 국가기념일로 올해가 첫회다.

보건복지부 출산지원팀 관계자는 “올 초부터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는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고 임산부임을 표시하는 배지와 가방고리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라면서 “현재 대중교통에 노약자 배려 좌석이 있긴 하지만 초기임산부도 배려해 달라는 스티커를 덧붙여 사회 인식의 변화를 도모코자 한다”고 말했다.

임산부닷컴은 초기임산부를 보호하는 표식인 ‘i배지’를 온·오프라인에서 배포한다. ‘i배지’는 우리 말 ‘아이’와 발음이 같은 영문 알파벳을 인용한 이름이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10월 말까지 강남역, 이대앞, 명동 등 인파가 많이 몰리는 서울 지역에서 임산부닷컴 캐릭터 ‘만삭이’와 기념촬영하는 행사도 벌일 계획이다.

◇ 일본에선 임산부 보호 캠페인 이미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도쿄 지하철 업체들이 8월부터 승객에게 임산부 배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배지엔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과 함께 ‘뱃속에 아기가 있어요’란 글귀가 적혀 있다. 임신 사실을 일일이 밝혀가며 타인의 배려를 바라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출산율이 2005년 말 1.25명에 불과해 저출산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1명(8월 기준)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는 보육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지만, 아이를 낳는 과정 역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며 “꾸준한 캠페인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임산부 스스로 임신 사실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제기됐다. 캠페인에 대해 임산부 김모씨는 “그냥 참고 말지 배지까지 달고 다니면서 임신한 사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냐”고 말해 임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풍토의 단면을 보여줬다.

임산부닷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산부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캠페인을 통해 사회 저변에 임산부 모두를 배려하는 풍토가 자리잡히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