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5일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구상을 밝히는 것으로 본격적인 대선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 전 시장이 독일 현지에서 공개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한반도 물줄기를 하나로 잇는 대역사다. 이 전 시장이 15대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1996년 7월부터 구상해온 프로젝트는 경부운하(가칭)와 호남운하,북한운하 등 3개 운하를 건설,하나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경제성 논란 끝에 공사가 잠정 중단돼 있는 경인운하도 포함된다.
프로젝트는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 건설이 핵심으로 총 연장 553㎞의 대수로를 만드는 사업이다. 문경새재 부근 조령의 해발 140m 지점에 20.5㎞의 터널을 건설하고 터널 양쪽에 두 강의 수위를 맞춰주는 갑문을 건설,물길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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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의 경부고속도로인 셈이다.
총 연장 200㎞의 호남운하는 영산강 하구와 금강을 거쳐 경부운하로 연결되며,북한운하는 2가지 연결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예성강과 대동강,청천강을 이어 신의주까지 수로를 연결하는 방법과 임진강부터 예성강을 연결,원산까지 수로를 연결하는 안이다.
이 전 시장이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물류비용 절감,국토균형 발전,수자원 보존 및 효율적 이용,관광산업 발달 등 파급효과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들어서면 한국 경제가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시장의 생각이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5000t급 바지선이 부산에서 강화도까지 왕래하게 돼 물류비용이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한강 유역의 빈번한 홍수 발생과 낙동강 유역의 물 부족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운하통과 지역을 중심으로 선착장과 물류터미널 등이 들어서면 지역경제가 균형 발전하는 것은 물론 국내 관광산업 발전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거세다. 경제학자들은 투자 대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환경단체 등에서는 하천과 산림 훼손이 불가피해 하천 생태계 파괴 및 수질오염 문제가 부각될 것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인공수로가 자연하천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일 수 있다”며 환경훼손 우려를 일축했다. 투자대비 효과 부분에 대해서도 “지도자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에도 자동차가 몇 대 다니지 않았으나 결국 이를 계기로 산업화가 됐고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경부운하, 물이 썩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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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산 터널을 뚫어 뱃길을 잇는다
낙동강과 한강을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 배를 띄우면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처음 언론에 소개된 것은 1995년 11월이었다. 주명건 세종연구원 이사장은 그해 11월29일치 <매일경제>를 통해 “서울~부산 사이에 경부운하를 만들고 이를 수도권 운하망으로 연결하면 2000년대 우리나라 예상 물동량 40억t 가운데 6억~7억t은 내륙 운하를 통해 수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주 이사장의 착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는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1996년 7월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강 충주댐에서 낙동강 지류인 조령천을 연결하는 20.4km의 터널을 만들면 물류비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현대 CEO 출신’ 초선 의원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로 거듭났고, 대선을 위해 ‘그때 그 카드’를 뽑아들고 나섰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꿈꾸는 경부운하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강의 그림은 그릴 수 있다. 이 전 시장 쪽 관계자는 “운하의 밑그림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며 “11월께 (이 시장의 경부운하 계획을 지원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의 이름으로 청사진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 쪽은 100여 명의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지난 1년 동안 1996년 발표된 세종대학교 쪽의 경부운하 구상을 갈고 다듬어왔다.
‘경부운하’ 계획의 뼈대는 낙동강과 한강을 가로막는 조령산맥에 터널을 뚫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고, 그 물길을 통해 서울과 부산 사이의 화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충주에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지류인 달천을 따라 조령산(1017m)에 터널을 뚫어 낙동강의 지류인 경북 문경의 영강을 잇는다는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다. 터널의 길이는 애초 세종대학교 안보다 3~4km 늘어난 24km, 크기는 조령산 중턱 10에 높이 20m, 너비 22~23m로 설계됐다. 터널은 양 방향의 배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복선으로 만든다. 운하의 총 길이는 한강 행주대교 부근 신곡수중보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530여km, 수심은 6m, 그 수심 유지를 위해 자연 하천인 낙동강과 한강을 대규모로 준설해 물길을 만들고, 수위를 확보하기 위해 높이 1짜리 보(洑)를 13~14개 설치해 물을 가둔다. 건설비는 17조~18조원으로 추산되지만, 골재 판매와 민자 유치로 사업비 대부분을 충당한다. 이 시장 쪽은 운하가 완성되면 2500t에서 5천t급짜리 바지선이 수백 개의 컨테이너선을 잇고 운하 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운하 건설사업은 국민 1인당 소득을 1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지금도 간장 냄새 나는 매리 취수장
낙동강과 한강을 운하로 만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한겨레21>은 환경시민단체 환경정의와 공동 조사단을 꾸려 9월17일부터 5일 동안 운하 건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낙동강과 한강의 주요 지점들을 답사했다. 답사 결과 (한강도 그렇지만) 낙동강은 배가 다니기에 수량이 충분하지 않으며, 수량을 유지하기 위해 강 곳곳에 댐을 만들 경우 물이 썩어 1천만 영남 주민들의 식수로 쓰이는 낙동강 수질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운하가 건설되면 1천만 낙동강 주민들이 2002년 ‘낙동강 수계 물 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낙동강 특별법)을 만들면서 가까스로 도달한 수질 보전과 지역 개발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뿌리째 뒤흔들어 강 상류와 하류 주민 사이의 물 다툼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9월18일, 답사단은 경남 김해시 상동면 매리 취수장으로 첫 발길을 옮겼다. 이곳 매리 취수장과 강 건너 양산시 물금 취수장에서 부산 사람들의 1일 수돗물 급수량(270만t)의 94%인 256만t을 취수한다. 매리와 물금 사이에 위치한 원동 취수장은 110만 울산 사람들의 젖줄이다. 9월, 매리에서 본 낙동강은 지난 여름 내린 비에 흡족하게 부풀어 있었다.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지금 모습만 보고 낙동강을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갈수기 때 수량은 지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쳐 간장 냄새가 납니다.” 2005년 8월 현재 이곳에서 측정한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2.9ppm이지만, 갈수기 때인 2006년 1~2월의 수질은 4.2ppm, 3월에는 5.0ppm으로 껑충 뛴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취수장 입구에는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매리 취수장. 국가중요시설물 가급. 400만 부산 시민들의 식수원”이라는 소개 간판이 답사단을 맞았다.
이준경 부산 강하천연구센터 사무국장은 “매리에 오면 부산 사람들의 노심초사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물”이라고 말했다. 1991년 페놀 오염, 1994년 벤젠·톨루엔 오염, 2002년 다이옥신 오염, 2006년 클로레이트 검출까지 지난 15년 동안의 낙동강 역사는 오염에 대한 기나긴 투쟁의 역사였다. 보다 못한 정부는 1998년부터 8조4천억원을 쏟아부어 강 살리기에 나섰고, 2002년에는 개발과 환경보존 사이에서 삐걱거리던 영남 1천만 시민의 뜻을 한데 모아 낙동강 특별법을 제정하며 오염총량제를 전격 도입했다.
모래를 퍼내 팔면 ‘자정작용’은 어찌하나
낙동강의 중류인 칠곡에 이르자 하류와는 전혀 딴판인 낙동강이 펼쳐진다. 물길은 가늘게 졸아들고 둔치에 너른 모래사장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1년 내내 하천 유량이 비슷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마 때와 겨울 갈수기 때 물의 양이 크게 다르다. 강의 최소 유량과 최대 유량의 비를 뜻하는 하상계수는 한강이 1:170, 낙동강이 1:140으로, 라인강(1:30)이나 센강(1:23), 양자강(1:22)보다 훨씬 차이가 크다. 결국 계절마다 수량 차가 큰 강에 배를 띄우려면 물을 가둬 수심을 확보해야 한다. 그 시설이 ‘보’다.
전문가들은 낙동강 곳곳에 보를 만들면 “부영양화 현상이 일어나 물이 썩는다”고 말했다. 물이 흐르지 못하면 질소와 인이 쌓이고 이는 플랑크톤을 불러모은다. “낙동강에는 평소에도 물이 부족합니다. 배를 다니게 하려면 물을 가둬야 하는데, 수질 관리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김진홍 중앙대 토목공학과 교수(환경정의 생명의물운동센터장)가 말했다. 그는 “보는 하천에서 취수를 위해 물 흐름을 막는 높이 2m 정도의 구조물”이라며 “1짜리 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건설 예정인 보는 운하 전 구간에 13~14개나 된다. 수심 6m 유지를 위해(낙동강의 연평균 수위는 1.다) 대규모 준설이 이뤄지고 이 시장 쪽의 주장대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하천 둔치를 정비하면, 한강~낙동강 전 구간은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한강 하류 모양으로 탈바꿈한다. 운하 건설 계획이란 결국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13~14개로 분절된 인공호수로 만들겠다는 뜻인 셈이다.
큰 비가 내렸을 때 토사가 쌓여 물이 탁해지는 것도 문제다. 선례는 1992년에 건설된 임하댐이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수계 관리위원회는 2005년 6월 김태완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임하댐 생태 관련 보고서에서 “탁수로 인해 임하호의 종다양도가 급격히 줄고 평균 생태점수도 근처 안동댐 수계(76점)의 50%도 안 되는 37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평소 안동시 정수장으로 흘러들던 임하댐은 2003년 11월8일부터 2004년 4월21일까지 방류를 중단했다. 낙동강 본류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 취수가 중단되면 대안이 없다. 김상화 대표는 “그것은 곧 재앙을 뜻한다”고 말했다. 정수가 가능한 수준이라도 이전보다 많은 양의 염소와 화학물질이 들어가 시민들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답사단의 봉고차는 상류를 향해 나아갔다. 경북 칠곡군 금산리 금산골재장에는 강모래를 퍼내는 포클레인과 이를 실어내는 10t짜리 덤프트럭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낙동강 중류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충당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앞다퉈 골재 판매에 나서 해마다 수십억원의 부수입을 챙겨왔다.
잠복해 있던 물싸움 다시 터질 수도
공동수 한강물환경연구소장은 “모래가 하천 생태계를 유지하며 물의 자정작용을 돕는다는 것은 너무 상식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낙동강공동체가 지난 2004년 10월 펴낸 <낙동강 생명찾기 백서>를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낙동강 중류를 끼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너도너도 골재 판매에 나서 해마다 200만 루베의 골재를 파내갔다”고 적고 있다. 그로 인해 낙동강 수위가 낮아져 대구 시민들의 젖줄인 강정취수장에 새로 보를 만드느라 210억원의 돈이 들었고, 하천 중류 생태계가 교란됐다.
상주에 이른 답사팀은 강의 본류를 버리고 문경에서 흘러드는 낙동강의 지천인 영강으로 접어들었다. 하류 구포에서 시작된 낙동강 700리 뱃길은 이곳 상주 낙동 나루터에서 끝난다. 조선 삼남의 세곡은 여기에 모여 새재를 넘어 한강을 따라 도성으로 운반됐다. 문경시 청사에는 “경제도약, 일등농촌”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바람에 나부끼는데, 화려했던 옛 광산 도시의 인구는 1970년대에 견줘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김석태 <문경시민신문> 편집인은 “운하 개발로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는 게 문경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강 상류와 하류 사람들은 수질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끊임없는 다툼을 벌여왔다. 대표적인 싸움은 1990년부터 대구와 부산, 경남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위천공단’ 논쟁이다. 공단은 경기 침체로 인한 고통을 떠안은 대구 사람들에게는 숙원사업이겠지만, 공단 하류에 있는 부산과 경남 사람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할 일이었다. 두 도시 사이의 다툼은 결국 2002년 낙동강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낙동강 사람들은 이제 강의 각 지점에 목표 수질을 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오염 물질을 방출해야 한다. 김상화 대표는 “운하가 지어지면 특별법의 체계가 무너지고 잠복해 있던 물싸움이 다시 터질 것”이라며 “그 정치적 책임은 누가 지겠냐”고 물었다.
산을 뚫어 태고 이래 한 번도 섞인 적이 없는 한강과 낙동강을 하나로 잇고, 강의 자정을 돕는 모래를 7조~8조원어치나 퍼내고, 부영양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길을 거대한 보로 막아 배를 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김상화 대표는 “운하 건설 계획은 대한민국 인구 절반을 판돈으로 건 대단히 위험한 사업”이라며 “청계천 추진하듯 밀어붙이기에 한강과 낙동강이 가진 생태적·문화적·산업적·환경적 가치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과 황우석은 쌍둥이”
9월20일 답사를 끝내고 대구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모여앉은 자리에서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장은 “어떤 점에서 이명박과 황우석은 쌍둥이”라고 말했다. “황우석이 줄기세포만 만들면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듯, 이 전 시장은 경부운하를 만들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출구 없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만병통치약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토목 전문가들은 “수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운하를 만드는 토목공사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쪽에서는 “5년 임기 안에 공사를 끝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이 시작되면 경부운하는 새만금이 그랬고 경부고속철도가 그랬듯, 합리적인 토론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부운하를 막을 수 없다. 그게 두렵다.” 류 회장이 신음하듯 말했다.
(뉘렌베르크=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 유럽 3개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은 24일(현지시간) 자신이 대선후보 제1공약으로 준비 중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와 관련, "기술적 검토가 끝났으며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후 뉘렌베르크 소재 라인-마인-도나우(RMD)운하 힐폴트스타인 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통해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루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시장이 구상 중인 한반도 대운하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가칭 `경부운하'와 금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호남운하'를 각각 건설해 남쪽 지역의 물줄기를 하나로 연결한 뒤 이를 장기적으로 북한의 신의주까지 연결하는 대역사다.
그는 가장 먼저 공사에 착수할 경부운하에 언급, "문경새재 부근 조령에 20.5㎞의 터널 2개를 뚫고 양쪽에 갑문을 만들면 한강과 낙동강이 연결돼 물길이 열리게 된다"면서 "국내외 학자 60-70명이 지난 10여년 간 기술적 검토를 마쳤으며, 공사는 시작만 하면 완공까지 채 4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설비용에 대해 "운하 전문가들은 7조-8조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대 15조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며 "그러나 준설작업에서 나오는 골재를 팔거나 민자를 유치하면 정부 예산이 거의 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외국에서도 한반도 대운하에 관심이 많다"며 "네덜란드의 한 기업은 이미 자체적으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며, 미국 모 기업은 운하예정지를 40년간 조차해 주면 민자로 짓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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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시장은 북한지역의 운하구간에 대해 "장기적으로 북한과 협의해 봐야 하지만 청천강과 대동강, 압록강 등 북한지역의 3개 강을 연결만 하면 되는 사업"이라며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당장 내년이라도 답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은 다음달과 내년 초 2차례에 걸쳐 유럽의 운하전문가들을 국내로 불러 대규모 `한반도 대운하 세미나'를 개최키로 했다.
한편 이 전 시장은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성이 있느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10년 동안 연구한 것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면 되느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본다"며 "이게 얼마나 전문성 있는 사업인데"라며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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