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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퇴자들 ‘굿바이 서울’

여행가/허기성 2006. 11. 25. 11:25

중산층 은퇴자들이 서울과 수도권 밖으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생활비를 부담해가며 30년 이상 노후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본지가 최근 5년간 서울에서 타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60세 이상 은퇴자들의 이동(retirement migration) 경로를 추적한 결과, 두 가지의 큰 트렌드가 드러났다.

집 팔아 생활비 싼 곳으로

첫째는 서울 아파트를 팔고 가격이 좀더 싼 경기도 위성도시로 옮기는 행렬이다. 아파트 생활을 선호하는 은퇴자들이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 통계청 인구이동 조사에 따르면 2001년 이후 5년 동안 약 20만명의 은퇴자들이 서울에서 경기도 위성도시로 이사를 갔다. 용인·하남·분당·일산·산본·파주 지역에서 60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스트알(부동산컨설팅업체) 김우희 상무는 “위성도시로 가는 은퇴자들은 대부분 아파트 평수를 줄여 노후생활비를 만들려는 목적”이라며 “서울 30평 아파트를 팔아 위성도시로 이사가면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고도 1억~4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서울을 떠나 아예 지방도시나 농촌으로 향하는 행렬이다. 최근 5년 동안 약 10만9000명의 은퇴자들이 수도권 밖의 지방도시로 떠나갔다. 전국 곳곳으로 흘러갔지만 강원·대전·충북·충남 등 서울에서 150㎞ 이내에 위치한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은퇴자를 끌어들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장점에다 집값이 더 싸다는 점이 수도권 은퇴자들의 마음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은퇴자 이주와 관련해 주목을 받는 곳이 최근 남한강 주변(양평·여주·횡성.부론·소태·앙성·충주)을 따라 형성되고 있는 ‘은퇴자 주거 벨트’다. 경기·충북·강원 등 3개 도의 경계(境界) 지역인 원주시 부론면의 경우, 6년 전부터 은퇴자가 몰려들기 시작해 현재 100가구가 넘는 은퇴자들이 살고 있다.

남한강 은퇴벨트 형성



부론면에서 은퇴자 주치의로 활동하는 신동일 사랑의원 원장은 “남한강변은 날씨도 좋고 생활비도 적게 먹혀 은퇴자 주거지로 안성맞춤”이라며 “다만 정부의 개발계획 남발로 최근 2년 사이 땅값이 3배 이상 올라 젊은 은퇴자들이 주거지를 새로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90%는 직장을 다니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 중산층 은퇴자들의 지방 이주는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활비 싼 곳 찾아가지 고향으론 안가요”



[조선일보 선임기자]

도시인들은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한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고향을 열심히 찾아 성묘를 하고, 일가 친척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고향을 그렇게 그리워한다면 정년 후의 은퇴 생활도 고향에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서 사는 은퇴자들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중부·영동고속도로를 1시간 20분 가량 달려가면 여주가 나온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남동쪽으로 20분을 더 가면 ‘부론면’이라는 농촌마을에 도착한다. 행정구역은 원주시에 속하지만 경기도와 충청북도, 강원도가 서로 맞붙어 있는 접경 마을이다. 인구는 약 2800명.

박태선 부론면장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매년 100명씩 인구가 줄다가 최근 들어 감소세가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6~7년 전부터 은퇴자들이 계속 몰려든 덕분이다. 부론면에 거주하는 은퇴자는 현재 100 가구가 넘는다. 생면 부지의 은퇴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 것이 이렇게 큰 집단으로 발전한 것이다.

개인사업을 하다 은퇴한 이광래(63)씨는 “서울과 가깝고 생활비가 싸다는 점이 이곳의 장점”이라며 “시골인 탓으로 대중교통편이 적고 대형병원이 없다는 점이 다소 불편하다”고 말했다.

부론면에선 월 생활비를 100만원 이하로 쓴다는 사람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은퇴자 30명 가운데 생활비를 200만원 이상 쓰는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80만~150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금천우체국장을 지낸 김봉식(59)씨는 “서울에서 살 때보다 생활비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면서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찬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식비도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기자가 만난 은퇴자 가운데 고향이 부론면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서울과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한 이성윤(59)씨는 “93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은퇴 장소를 물색하다 물 좋고 경치 좋은 이곳을 발견하고 집을 지었다”면서 “부론면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농촌에서 사는 은퇴자들 대부분이 타향살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은퇴자들이 고향으로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시골에서 자랐더라도 대학 등록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하면서 집안의 농토를 대부분 팔아 치운 은퇴자들이 많다”면서 “동네 어른들 얼굴 보기 민망해서라도 고향에서 살기 힘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심재헌(63)씨는 초등·중학교는 전주,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고, 25년간의 직장생활은 창원에서 한 다음 퇴직 후 7년간 경주에서 살다 2002년 부론면에 정착했다. 그는 “차를 타고 지나가다 수퍼마켓에서 빈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사버렸다”면서 “남의 땅에 지어진 집을 550만원 주고 산 다음 2500만원을 들여 고쳤더니 살만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씨 같은 사례는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5~6년 전부터 착실히 이주 준비를 했다고 한다. IMF 때 회사가 어려워지자 후배들을 위해 사표를 냈다는 신건조(65)씨는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별빛을 보고 부론면에 터전을 잡았다”면서 “조립식 주택을 이용하면 땅값과 건축비를 합해 1억원 정도면 쓸만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부론면 은퇴자들이 다 즐겁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신동일 부론사랑의원 원장은 “은퇴자들 간에 네트워크가 없어 대부분이 서로 모르고 지낸다”면서 “문화시설이 부족해 무료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원주민들과의 갈등도 적지 않다. 주민들과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 사람들도 있지만, 주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 생활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