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은 집값이 갈랐다. 집값 폭등에 따른 희비는 삶의 가치관마저 뒤흔들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되레 손해 보는 현실은 온 사회를 한탕주의로 몰고 갔다. 화목했던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공동체의식은 무너졌다. 특히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은 인생의 굴곡을 한 해에 다 겪었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김영일씨(46·가명). 20년 전 서울 면목동 2000만원짜리 18평 전세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내집 장만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2001년 적금 2500만원을 탔다. 모은 돈이 1억원이 됐다. 30평대 아파트를 사려 했으나 5000만원이 부족했다. 다시 1년간 적금을 부었다. 하지만 그 1년새 집값은 7000만원 뛰었다. 김씨는 분노했다. “왜 국가가 서민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나.” 술독에 빠졌다. 경마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1억원을 날렸다. 부부싸움이 시작됐고, 한때 별거하기도 했다. 지금은 재결합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5년 더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때 가서 집을 살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김씨가 ‘파산’하는 그 몇 년 새 10억원대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서울 화곡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ㅇ씨(60)가 그렇다. 2001년 아파트 31평을 2억6000만원에 구입했다. 2004년 이 아파트 재개발이 확정됐고, 값이 뛰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공사를 맡기로 계약하면서 두배가 됐다. 지금은 7억원을 호가한다.
ㅇ씨가 새로 분양받을 아파트는 50평대다. 입주하려면 수억원을 더 넣어야 하지만 돈을 대출해준다는 은행이 줄을 섰다. 최근 ㅇ씨는 이 가운데 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으로 아파트 분양비를 내는 대신 사위에게 작은 아파트를 한 채 사줬다. ㅇ씨는 “새 아파트는 입주하게 되면 15억~20억원까지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운이 좋은 건 맞지만 목동·강남 지역 재개발 아파트에 비하면 이 정도는 대박축에도 못낀다”며 오히려 불만스러워 했다.
이처럼 집값이 서민들의 인생을 바꾸고 있다. 무리해 구입한 아파트가 값이 오르지 않아 가정 불화를 겪는 지모씨(31·학원강사·여)도 그 중 한 명. 지난 봄 결혼한 지씨 부부는 요즘들어 부쩍 싸움이 잦다.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아무리 쪼개고 아껴 써도 매달 가계부에 구멍이 난다. 아파트 때문이다. 결혼 전 남편이 “지금은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고 주장해 구한 집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집값 따라 끼리끼리···“니네 집은 얼마니”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 온 나라를 뒤흔든 ‘부동산 광풍’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전염되고 있다. 집 평수를 비교해 친구를 사귄다. 부동산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아이들마저 있다. 너무 일찍 속물근성에 물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친구는 평수대로=1년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46평형 아파트로 이사한 원모군(11)은 예전에 살던 28평형 아파트보다 2배 가까이 넓어진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 과제물 준비 등을 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원군은 “옛날에는 내 방이 따로 없고 비좁았는데 이제 내 침대에서 자니까 편하고 너무 좋다”며 “친구들도 놀러오면 집이 넓어서 좋겠다며 많이들 부러워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평수는 친구들을 사귀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48평형 아파트에 사는 한모군(10)은 같은 단지내 12평형에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지 않는다. 좁기 때문이다.
한군은 “우리 단지는 우리 단지에서 놀고 12평형 단지는 그쪽에서 따로 논다”고 말했다.
강동구에 사는 임모군(14)도 “집이 넓으면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넓고 비싼 집 사는 게 장래 희망=아이들 사이에서는 넓고 비싼 집을 사는 것이 ‘장래희망’이라는 식의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기도 한다. 서초구에 사는 김모양(12)은 “나중에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대치동 삼성 래미안 아파트에 살겠다”고 말했다. 장모군(14)은 “엄마 아빠가 집 얘기 많이 하고 집 바꾸려고 하는 것이 솔직히 나는 싫지 않다”면서 “집이 넓으면 밖에서도 집 안에 사는 사람도 고급스러워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남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매매물 벽보 앞에 서 있는 초등학생들이 종종 눈에 띈다. 도곡동에 사는 공모군(12)은 “학교에서 도곡렉슬 최고평수가 얼마이고 얼마에 팔린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강남 등 집값이 비싼 곳에 사는 아이들일수록 부동산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엄마, 우리 집은 몇십억원짜리야?’라고 물어 부모들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우리 집은 전세로 하면 얼마고 매매로 하면 얼마야?’ ‘우리는 얼마나 더 모으면 아이파크 53평짜리로 이사갈 수 있어?’ ‘저 집은 갑자기 10억원이 됐는데 우리 집도 그렇게 올랐어?’ 등도 일상적인 대화의 한 부분이 됐다.
◇매체와 부모 탓=집 평수와 집값에 민감해지는 아이들 뒤에는 부모가 있다. 임모군(14)은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커가면서 집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됐다”며 “엄마 아빠도 소파에 앉아 뉴스 보면서 집 얘기를 하고 집 넓혀서 가야겠다고 얘기하니까 자연스럽게 집을 의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25)는 “집값이나 평수를 비교하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고 간혹 친구들과 분쟁을 일으킨다”며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마치 행복의 기준이 되는 양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의 속물근성이 엿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아이들보다는 집값 얘기에 몰두하는 부모의 행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부동산 뉴스를 쏟아내는 방송이나 화려한 아파트 광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매달 내는 대출금 이자만 100만원이 넘는다. 집값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양도세다 뭐다 해서 다시 집을 파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신혼의 달콤한 꿈은 대출금으로 인한 생활고로 산산조각 났다.
집값 파문은 사람들의 인생관도 변화시키고 있다. 박모씨(29·회사원)는 최근 2000만원짜리 승용차를 구입했다. 지난 여름휴가 때는 수백만원을 들여 이탈리아 여행도 다녀왔다. 나이가 찼지만 결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내집 마련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박씨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을 보며 인생관이 바뀌었다”며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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