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국토 균형개발이란 명분으로 골프장 건설에만 열올리는 지자체들…태안 158만 평, 영암·해남 310만 평… 혜택은 결국 거대 자본의 몫
▣ 무주=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한명숙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기업도시위원회는 현대건설과 태안군이 올린 ‘태안 관광레저도시 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안’을 원안 의결했다. 이날 문화관광부는 “낙후된 태안군의 개발과 투자, 고용 창출로 인해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타 기업도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2005년 8월 정부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따라 6곳을 기업도시 시범사업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3곳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이하 관광레저도시)다. 이날 태안은 기업도시 6곳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 승인을 얻었고, 무주와 해남·영암은 올 상반기 안에 이 절차를 마칠 예정이다. 기업도시위원회가 개발계획을 승인하면, 기업도시는 즉각 토지보상에 들어가는 등 사업에 들어간다.
관광레저도시란 무얼까.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따르면, 관광레저도시는 “민간기업이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어) 관광·레저·문화 등의 주된 기능과 주거·교육·의료·문화 등의 자족적 복합기능을 고루 갖추도록 개발하는 도시”다. 쉽게 말해 관광·레저 시설이 가까운 전원형 도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개발계획을 봐선, 관광레저도시는 ‘골프장 도시’에 가깝다. 관광레저도시로 지정된 땅 대부분이 골프장과 이를 위한 편의시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원주민은 비싼 땅값에 타지로 내몰리고,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원주택 단지로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1월18일 찾은 무주군 안성면 두문리와 덕곡리. 구름이 걷히자 국립공원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 눈 덮인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덕유산 줄기 서쪽 산등성이인 245만 평이 관광레저도시가 들어설 곳이다. 덕곡리에 사는 박우근(58)씨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향적봉까지 젊은이 걸음으로 2시간이에요.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골프장이 들어온다니요?”
지역 주민들도 뒤늦게 안 골프장 계획
두문·덕곡리 주민들은 관광레저도시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고 있었다. 박씨는 “2005년 4월 무주군청 직원 6명이 마을에 들어와 동의서를 받아갔는데, 그때 골프장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주군이 대한전선과 함께 ‘관광레저도시 사업제안서’를 문화관광부에 제출할 때에야 골프장이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두문리와 덕곡리 주민 300명은 그 뒤 ‘무주골프장기업도시 반대대책위’를 꾸렸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싸움을 진행하다 1월15일 무주군청 앞에 철야농성용 천막 3개를 세우며 마지막 배수진을 쳤다. 무주군과 대한전선이 계획대로 이달 안에 최종 개발계획서를 기업도시위원회에 올려 개발계획서가 태안군처럼 원안 의결이 되면, 주민들은 마을에서 쫓겨나도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다.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은 사업자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문·덕곡리 주민들은 싸움을 한다고 해봐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덕곡리 주민대책위원장인 박씨는 덕곡리 마을의 ‘막내 사형제’ 중 한 명이고, 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심순보(52)씨는 두문리 마을의 막내다. “무주군과 대한전선이 이주민 주택을 분양해준다고 하지만, 평당 4만~5만원에 보상을 받아서 나가면 평당 40만원이 된다는 이주민 주택을 어떻게 분양받을 수 있겠어요? 우린 이대로가 좋아요. 논 한 마지기, 두 마지기 지어 먹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들딸 시집 장가 다 보냈어요.”
개발계획안마다 골프장, 골프장…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균형발전의 특효약은 골프장이 되었다. 2004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제안한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은 아주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인 ‘여섯 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내세우며 법률 통과 여덟 달 만에 기업도시를 지정했다. 기업도시 6곳 가운데 3곳은 관광레저도시였고, 관광레저도시의 대부분은 골프장이었다. <한겨레21>은 관광레저도시 3곳의 개발계획(안)을 분석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개발계획이 확정된 태안 관광레저도시는 전체 부지 442만 평 가운데 158만 평에 골프장이 들어선다. 35.7%에 이르는 수치다. 모두 6개 108홀의 골프장이 들어선다. 영암·해남 관광레저도시는 전체 땅 3100만 평 가운데 10~20%가 골프장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전체 면적 대비 골프장 비율은 태안보다 낮지만, 규모는 300만 평 이상이어서 단일 지역에 건설되는 ‘골프장군’으로는 국내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 건설되는 골프장은 모두 10개, 180홀 이상이다. 무주는 245만 평 가운데 62만 평이 18홀 골프장 2개로 채워진다. 전체 면적 가운데 27%를 차지하고, 자연 녹지를 제외한 ‘개발 면적’ 가운데 50%를 넘는다. 이것도 원래 골프장 3개를 건설하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가 크자 골프장 1개(35만 평)를 스키장으로 변경했다.
관광레저도시는 골프장 건설 붐의 기폭제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2006년 7월1일 현재 국내 골프장은 227곳. 건설 중인 78곳과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착공을 준비하고 있는 16곳을 합치면 300곳이 넘는다. 1995년 100개가 채 안 되던 골프장은 10년 만에 100개가 늘었다. 이제 국내 골프장은 1억 평 시대를 앞두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영업 중인 골프장의 총면적은 8천만 평(2억6293만3662㎡)에 이르고, 건설 중인 골프장까지 합치면 1억 평(3억3534만489㎡)이 넘는다. 이렇게 국내 골프장을 합한 면적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 여의도(약 250만 평)의 40배이고, 서울 지역 초등학교 운동장(2,687,119㎡)을 모두 합한 넓이의 122배에 해당한다.
땅값은 이미 열 배 이상 치솟아
골프장이 이렇게 늘어나는 이유는 골프 인구가 늘어난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골프장을 유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월17일 만난 한상술 무주군청 기업도시개발사업소장은 “주민들이 처음에는 관광레저도시를 환영하다가 나중에 환경단체가 개입해 반대하기 시작했다”며 “노약자 등 땅이 없는 주민들에 대해서 각종 지원 대책을 세밀하게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골프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 민간기업이 투자하겠습니까? 벼농사를 지어봤자 소득이 크지 않고… 훼손 부분이 많은 전답 등에 개발계획을 앉힌 겁니다.”
골프장이 들어오면 지역경제는 회생할까. 지자체 입장에서는 손쉽게 세금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골프장 입주를 환영한다. 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마당에 골프장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4년 펴낸 보고서에서 골프장 250개가 생기면 건설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이 11조9천억원 늘고 일자리 5만 개가 창출되며 세수 1조2천억원이 확보된다고 주장했다. 보통 골프장 예정지 주변의 주민들도 찬성한다. 땅값이 치솟기 때문이다. 박우근씨는 “무주 관광레저도시 발표 전 평당 2만~3만원이던 주변 땅값이 발표 뒤 20만~30만원대로 뛰었다”며 “안성면에서도 두문·덕곡리 사람들은 골프장 도시를 반대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찬성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골프장 건설이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골프장이 하나 들어서면 200명의 고용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골프장 정규 인력은 서울에서 채용한 관리직이고, 캐디는 캐디스쿨을 나온 사람들이지요. 지역 주민은 조경 관리를 맡는 정도의 일용직이에요. 사실상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미미합니다.”
일용직 노동자냐 농사꾼이냐
골프장으로 인한 지하수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은 전형적으로 ‘없는 자’가 많이 겪는 환경 피해다. 두문·덕곡리 주민들은 기업도시가 건설되면 “마을 뒤 덕유산 황골에 사는 수달과 반딧불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태안 관광레저도시의 경우 더 심각하다. 근처가 바로 동북아시아 최고의 철새 도래지이기 때문이다. 이평주 태안서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농지가 없어지고 골프장이 건설되면, 철새들이 먹고 살 게 없어진다”며 “태안 관광레저도시가 완공되면 천수만은 적지 않은 생태계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에 자꾸만 늘어나는 골프장은 어떤 면에서 보면 거대 자본의 ‘자영 경제’ 침입 과정이다. 시골보다는 도시가,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이, 땅 없는 자보다는 땅 부자에게 유리하다. 관광레저도시로 인해 무주군의 경제적 지표가 좋아지더라도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두문·덕곡리의 주민들은 알고 있다. 백발이 성한 주민들에겐 남은 건 두 가지 선택뿐이다. 일용직 노동자를 선택하는가, 농사일을 지속하기 위해 싸우는가.
과연 골프는 대중스포츠인가
정부·업계와 통계청·갤럽이 각각 실시한 골프인구 조사마다 차이 커
골프장 건설 붐에는 ‘골프가 대중 스포츠가 됐으므로 골프장을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2004년 9월 ‘골프장 건설규제 개선안’에서 국내 골프인구를 300만 명으로 추정했다. 2003년 골프장 이용 연인원 1500만 명을 평균 연 5회 방문한 것으로 간주해 이같은 수치를 끌어낸 것이다. 골프장 업계도 한국의 골프인구를 350만 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2004년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만 20살 이상 성인 인구 가운데 골프를 치는 사람은 5.8%였다. 이를 인구로 환산하면 206만 명이었고, 이 가운데 골프장을 이용한 비율을 인구로 환산하면 78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통계청이 실시한 사회통계조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골프장을 이용한 비율은 만 15살 이상 인구의 2.1%였다. 이를 인구로 환산해보면, 약 79만 명이 나온다. 2005년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골프장에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만 15살 이상~65살 미만)은 3.7%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정부와 업계는 골프장 이용 연인원을 평균 방문 횟수로 나누는 반면, 통계청이나 연구기관의 조사는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한 조사 방식 때문에 이토록 거대한 차이가 나타나는지 알 수 없지만, 환경단체에서는 업계의 자체 집계는 ‘골프장 규제 완화’라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골프장은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내부보고서는 “국내 적정 규모의 골프장 수는 여러 연구에서 250~350개로 추정되고 있다”며 “2008년께 골프장 수 증가에 따라 확대된 수요까지 모두 흡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프장 건설 붐에는 ‘골프가 대중 스포츠가 됐으므로 골프장을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2004년 9월 ‘골프장 건설규제 개선안’에서 국내 골프인구를 300만 명으로 추정했다. 2003년 골프장 이용 연인원 1500만 명을 평균 연 5회 방문한 것으로 간주해 이같은 수치를 끌어낸 것이다. 골프장 업계도 한국의 골프인구를 350만 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2004년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만 20살 이상 성인 인구 가운데 골프를 치는 사람은 5.8%였다. 이를 인구로 환산하면 206만 명이었고, 이 가운데 골프장을 이용한 비율을 인구로 환산하면 78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통계청이 실시한 사회통계조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골프장을 이용한 비율은 만 15살 이상 인구의 2.1%였다. 이를 인구로 환산해보면, 약 79만 명이 나온다. 2005년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골프장에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만 15살 이상~65살 미만)은 3.7%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정부와 업계는 골프장 이용 연인원을 평균 방문 횟수로 나누는 반면, 통계청이나 연구기관의 조사는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한 조사 방식 때문에 이토록 거대한 차이가 나타나는지 알 수 없지만, 환경단체에서는 업계의 자체 집계는 ‘골프장 규제 완화’라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골프장은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내부보고서는 “국내 적정 규모의 골프장 수는 여러 연구에서 250~350개로 추정되고 있다”며 “2008년께 골프장 수 증가에 따라 확대된 수요까지 모두 흡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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