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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재.태.크

집 없는 ‘거지’들의 정체

여행가/허기성 2007. 1. 9. 22:53

어느 회사에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가 찾아 왔다. 노련한 면접관은 그가 숙련된 일꾼도 아니고 별 재주도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곧 알아차렸다. 하지만 워낙 일손이 딸리는 터라 채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문제는 임금 협상 과정에서 불거졌다. 구직자는 숙련자의 임금을 넘어 고급 관리자의 연봉을 요구했다. 최고경영자의 연봉에 비하면 싼 것이고 스스로를 유능한 인재라 생각하며 숨겨진 ‘끼’를 감안할 때 그 만한 몸 값은 당연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인사담당자는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면접관은 그를 잘 못 본 것이고 채용을 포기한 인사담당자는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인재를 놓친 것일까? 만약 어떤 이가 채용박람회장에 나와 면접장을 일일이 돌며 자신의 가치는 100억원을 충분히 넘으니 연봉 10억원에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면 면접관 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다른 구직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부동산 투기 세력들은 현재 집을 갖지 못 한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집 없는 ‘거지’라고 부른다. 또 집 없는 거지들은 무능하고 돈이 없어 집을 사지 못 한 것이라며 남의 집 값 오르는 걸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그들을 헐뜯는 ‘배아파족’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심지어 집 값 거품이 꺼지고 매물이 나오면 ‘헐 값’에 남의 집을 거저 먹으려는 ‘날강도’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인력시장이든 자산(資産)시장이든 시장에서 인정되고 통용되는 객관적 교환가치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장가격’이라고 부른다. 이 시장가격이 공급자에 의해 왜곡되면 사는 이가 없어 물건이 남아 돌고 수요자에 의해 왜곡되면 파는 이가 없어 물건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취업난과 구인난이 혼재하는 인력시장이나 주택 매물과 매수 세력이 모두 사라진 요즘의 부동산 시장은 상황이 거의 흡사하다. 그들은 모두 상대방이 시장가격을 왜곡한다고 주장하지만 머지 않아 ‘끝장’이 나고 나면 저절로 판가름날 문제이다. 극한의 대립은 왜곡하는 자가 ‘파탄’을 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상황은 그렇게 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일 자신의 ‘몸 값’을 주관대로 측정해 거액의 보수를 요구하는 구직자를 시장가격을 무시한 억지라며 채용을 거부하는 회사가 돈 없는 ‘거지 회사’가 아니고 인사당담자가 미치거나 무능한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그것을 요구한 구직자가 미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주택의 시장가격 왜곡이 공급자인 건설회사나 소유자들에게 있다면 그들이 ‘입심’으로 올려 놓은 ‘유희(遊戱)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은 ‘집 없는 거지’들은 경제 중추 세대인 40~50대는 물론 황혼에 접어든 노년층과 20대 청년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을 무차별적으로 미치게 하는 부동산 광풍(狂風)에 맞서 힘겹게 미치지 않은 것일 뿐 결코 무능한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 ‘못 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최고 90%에 다다랐던 2001~04년 사이 사람을 보지 않고 집을 보고 돈을 빌려 주는 금융 레버리지(지렛대)를 이용하지 못 해 집을 못 살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거품이라고 판단한 집 값을 인정할 수 없었고 조만간 금리가 인상될 것을 예견했으며, 거품이 꺼질 경우 빚을 갚을 자신이 없어 ‘안 산’ 것 뿐이다. 그렇게 자기 분수를 지킨 이들이 어떻게 무능한 거지란 말인가.

무주택 서민들은 집 값이 폭등해서 집 부자들이 시쳇말로 떼돈을 벌면 솔직이 배가 아프다. 떼굴떼굴 구르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들이 배가 아픈 이유는 집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고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집 부자들이 집으로 벌어들인 소득에는 ‘집 없는 거지’들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람의 기본적 생활 수단을 잔꾀와 돈의 힘으로 사재기해 얻는 대가이기에 더욱 괘씸한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은 집 값이 떨어지면 집을 살 것이다. 헐 값이 되면 더 열심히 살 것이다. 주택 거래가 활황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주택 구매에 적극 나설 것이다. 집을 사지 않은 이유가 ‘미친’ 가격 때문이었다면 집 값이 제 정신으로 돌아 와 요새 아이들 말마따나 ‘착한’ 가격이 되었는데 정상 가격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안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을 날강도라고 부른다면 온 국민이 같이 미치자는 말인가.

여기저기서 집 값이 미쳤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일각의 지적은 집 값이 미친 게 아니라 사람이 미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미친 것일까? 집 값이 미쳤다면 제 값어치 만큼 저절로 오른 것이니 거품도 없을 테고 빠질 리도 없다. 사람이 손 쓸 방법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 미친 것이라면 그가 제 정신으로 돌아올 때 거품은 사라질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일그러진 제도가 제 자리를 찾을 때 거품은 꺼질 것이다.

거품을 부둥켜 안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집 값 거품은 거칠게 붕괴될 것이다. 우리는 투기 필패의 교훈 아래 21세기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도전 과제들을 온 국민이 단결하고 땀을 흘려 헤쳐 나가야 한다. ‘거품시한폭탄’은 점점 커지는데 자업자득으로 피해가 불가피한 이들과 ‘신기루(蜃氣樓) 가격’에 배 불러 하는 일부 몽환자(夢患者)들을 위해 해체를 미루다 한국이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로 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집 없는 이여, 움츠러들지 말라. 그대들은 덩달아 미치지 않은 죄밖에 없노니. 또한 신(神)에게 감사하자. 그대들의 온전한 정신이 달아나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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