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는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성별에 따라 남녀로, 소득에 따라 부자와 저소득층으로, 연령에 따라 젊은이와 노인으로, 직업에 따라 노동자와 고용주 등으로 분류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소비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소비자는 이렇게 인구통계적 특성에 따라서만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리고 가치관에 따른 소비 패턴에 따라서도 분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시대의 흐름 및 경제·사회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과거의 소비자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새로운 소비자, 이른바 ‘신(新) 소비자’가 등장, 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비소자란 누구이며, 그들은 과거의 소비자들과 비교하여 무엇이 다른가?
신소비자는 누구인가?
우선 신소비자는 소비에 대한 가치관과 소비 패턴이 과거의 소비자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즉, 신소비자는 연령·소득·성별 등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기 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소비 패턴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50대의 집단에서도 신소비자는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구매결정은 기업의 흥망성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정 브랜드의 구매에는 물론 정부의 정책, 정치적 이데올로기, 정신적 믿음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고객’이라기보다는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몇년 전부터 이전의 소비자들과는 다른 특징과 구매 성향을 가진 신소비자 집단이 빠르게 부각되었는데, 이미 강력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유럽·아시아 등 전세계의 소비를 지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변화는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과 새로운 디지털경제 시대의 도래는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0년대에 들어와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환경의 급변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소비자의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물질적 안정과 양적인 소비생활을 목표로 하던 과거와 달리 생활의 질, 개성적인 라이프 스타일, 정신적·문화적 만족 등에 초점을 맞춘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소비자의 여섯 가지 특징
그렇다면 신소비자를 과거의 소비자와 비교,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신소비자는 대체로 독창적,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하며, 대량생산이나 널리 알려진 제품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인데, 이는 다음과 같이 세분화해 볼 수 있다.
첫째, 신소비자는 진품성(authenticity)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과거의 소비자들이 주로 제품의 희소성과 편리함 때문에 구매를 하였다면 신소비자는 진품에 대한 욕구에 의해 구매를 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인 것이다.
즉, 과거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광고에 이끌려 다수의 소비자들이 하는 것처럼 순응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반면에 신소비자들에게 있어 구매는 단순히 기본 욕구만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러한 제품, 그리고 그 제품을 만드는 기업과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은 대량생산된 제품과는 차별화되는 제품을 찾아내려 애쓰면서 제품의 미세한 변화·독특한 표현방식·브랜드의 의미 등의 요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진품이란 ‘값비싼 명품’과는 다른 개념으로, 독특하며 자신의 개성이 표현되어 있는 상품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소비자들에게는 로렉스(Rolex) 시계가 진품이 아니라 단아한 수제 시계가 진품인 셈이다. 그렇게 진품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단지 품질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진품의 소유를 통해 현실 속의 자신이 아닌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신의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진품이라는 확신만 들면 필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에도 관대하다.
그러나 진품인가 아닌가는 사실상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진품은 못되더라도 진품성, 즉 신뢰성(credibility)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STARBUCKS)가 본질적으로는 대량생산과 홍보에 의해 생산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와 같은 외관·향기·느낌을 재창조해서 신소비자들의 진품성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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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개인의 가치를 중시한다.
신소비자는 과거 소비자와 달리 혼자서 또는 작은 집단 안에서 혼자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개인의 개성과 가치를 중요시하고 이러한 개성을 수용한다. 더욱이 ‘차별성’은 곧 자신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품이 지닌 섬세한 차이점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듯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인프라는 ‘개인’, 즉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정보기술이 발달하여 거대한 집합체를 형성하더라도 과거의 소비자들처럼 개인을 집단 속의 한 부분 또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과 특성을 지닌 개인으로 바라본다. 전통사회의 개인은 ‘소외된 자아(nobody)’였으며, 대중산업사회의 개인은 획일적인 대중 속에 파묻힌 ‘익명의 개인(anybody)’으로 존재했다면, 신소비자들에게 있어서는 ‘표출된 개인(somebody)’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통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그들은 타인과 동일함을 거부하고 소비에 있어서도 차별화된 개성을 연출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구매를 피하고, 물건의 효용성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에서 구매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소비자들이 ‘상품의 주요 기능을 소비’하는 데 초점을 두고 그 주요 기능을 상품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면, 신소비자는 상품의 기능보다는 그 상품이 갖는 이미지에 초점을 두고 그 이미지로부터 얻게 되는 효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셋째, 신소비자는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 자신이 정보의 원천이 된다.
인터넷 등의 각종 정보 루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 되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에 앞서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 가격을 비교하고, 상품의 품질·특성·구매방법·구매장소·사용방법·보증내용·구매 후 피해구제와 관련된 내용 등을 살펴보며 표시를 확인할 정도이다.
또 소비자가 이용하는 정보도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차원에서 벗어나 소비자 자신이 정보제공자(information producer)가 되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최근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평가하는 사이트가 많이 생겨났는데, 엔토크(www.entalk.co.kr)라는 사이트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게시판에 올려 회원들끼리 구매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외국의 이피니온스(www.epinions.com) 는 100만 개가 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가 평가하는 사이트로서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요한 정보원이 되고 있다.
이렇듯 소비자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제공되는 소비자 정보는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전문성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신뢰성은 높게 평가되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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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신소비자는 생산과 소비에 있어 능동적이다.
앞서 말했듯 신소비자는 진품성을 추구하는 만큼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한다. 즉, 자신들의 구매 욕구가 정확하게 반영된 것이 생산·판매되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으로 소비자간의 의사소통 범위가 넓어지면서 소비자동호회(커뮤니티)가 제품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이와 더불어 ‘소비자 커뮤니티 마케팅(consumer community marke-ting)’이 활성화되고 있기도 하다.
기업이 직접 소비자 커뮤니티를 지원하면서 상품 개발을 위한 소비자 요구를 파악하여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계 회사인 랑콤이 여대생을 대상으로 엘리트클럽을 만들어 소비자의 의견을 생산과 경영활동에 반영하는 것은 그 한 사례라 하겠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기업과 소비자의 협동으로 상품을 기획하거나 개발에 참여하는 커뮤니티 마케팅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마쓰시다는 평면 TV를 시장에 내놓기에 앞서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디자인과 사용 방법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수렴, 상품화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일본의 타노미(www.tanomi.com) 사이트는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사이트로 눈길을 끌고 있다. 소비자가 제안한 상품 아이디어를 기업이 채택한 다음 인터넷상에 일정 기간 상품을 올려 주문이 일정량 이상 들어오면 제품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곧 소비자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 ; 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소비자의 능동성은 생산과정 뿐 아니라 판매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역경매·공동구매 등을 통하여 거대한 구매교섭력을 행사하게 되고,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이끌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다섯째, 시간에 대한 관심 증가이다.
신소비자들은 과거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생활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졌고,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에 기인한다. 이러한 시간 부족은 소비자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어떠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시간을 절약하려는 의식과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면 시간절약형 가전제품이나 상품의 구매 증가, 전자상거래와 통신판매의 활발한 이용, 각종 배달서비스나 대행서비스의 증가는 이를 반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또 한 예로 영국의 스크루드라이버(Screwdriver)사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시중에서 파는 조립식 가구와 DIY 제품을 전문적으로 조립해 주는 서비스를 판매하데, 시간에 쫓기고 있는 수많은 소비자들이 추가비용을 부담하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부족은 자신의 외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관심의 부족을 의미하는 경우도 많다. 신소비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상황이나 사물이 빨리, 그리고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개인적으로 관련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즉, 신소비자는 광고나 판매전략 등 모든 외부 구매자극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광고 중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갖는 경향을 띄는 것이다.
여섯째, 신소비자는 물질을 초월한 가치를 지향한다.
킨스만(Francis Kinsman)은 「미래사회를 향하여(Towards Tomorrow’s Socie-ty)」에서 매슬로우(Maslow)의 계층적인 욕망이 충족됨에 따라 개인은 ‘생존지향형’에서 ‘외부지향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내부지향형’으로 이행한다고 설파했다.
생활의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생존지향형이나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가운데 사회적 지위와 부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외부지향형과 달리, 내부지향형은 인간 행동의 동기가 자아실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내부지향형은 생존지향형·외부지향형에 비해 물질적 성공보다는 정신적 성장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소비자들은 제품과 서비스의 구매를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의 최정상에 있는 자기실현의 욕구나 진정한 잠재력의 실현 수단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구매의사 결정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자기계발에 대한 내부적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신소비자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구매하는 것이다.
또한 신소비자들은 물질적 풍요나 편의주의적 소비욕구 충족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생활무대인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생태환경을 포함한 생활공동체의 이익을 지향하는 소비를 하려고 한다.
이는 곧 ‘더 좋은 세계를 위한 소비(consum-ption for a better world)’로서, 사회공동체나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시민(consumer citizen)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환경 소비자주의(green consumerism)의 부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환경보호라는 입장에서 비판을 하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구환경보호로까지 확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근 몇년 전부터 급부상하고 있는 신소비자 집단의 주요한 특징을 살펴보았다.
과거에는 소비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또 소비자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경제사회가 디지털화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힘이 커지고 있다.
MIT의 셀리 터클(Shelly Turkle) 교수의 말처럼 “옛 것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으며, 인간은 다음에 무엇이 발생할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와 대런 브리저(Darren Bridger)의 말처럼 “소비자가 무엇을, 왜 구매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며 나아가 신소비자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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