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 열어 봤자 뭐합니까, 관리비도 안 빠지는데요. 차라리 운영비를 아껴서 어음을 막는 게 낫습니다.” 8일 오후 부산 서면역 인근 A사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울상을 지었다. 울긋불긋한 화환과 대형 현수막, 일렬로 도열한 도우미들의 기계음 같은 안내 멘트로 시끌벅적했을 곳이었지만 이날은 차디찬 냉기만 감돌았다. A사는 분양률이 30%가 채 되지 않는데도 벌써부터 모델하우스를 철거하기 위해 용지 인수자를 찾고 있었다. 한 달에 5000만∼1억 원이 드는 모델하우스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하루 내방객이 1, 2명이 될까 말까 하는데 전기료라도 나오겠느냐”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9만 채에 육박하면서 주택업체들이 ‘줄도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4일 중견업체인 세종건설이 쓰러진 데 이어 일부 업체의 추가 부도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미분양 아파트의 94%가 비(非)수도권에 몰려 있는 데다 연말까지 15만 채 이상이 ‘밀어내기’식으로 신규 분양될 예정이어서 주택업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부산-경남 미분양 2만여 채 최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8만9924채. 이 중 부산 경남은 2만1284채(23.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계약률 제로(0)’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초 분양한 B아파트는 400여 채가 모두 미분양으로 남았다.
C사는 2005년 10월에 분양을 시작했다 실패하자 모델하우스 문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지만 2년째 계약률이 40% 선에 머물고 있다.
이미 분양을 받은 당첨자들도 “위약금을 물 테니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주장해 건설사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시세가 분양가보다 낮은 이른바 ‘깡통 아파트’로 전락한 만큼 분양가의 10%가량을 떼이더라도 해약하는 게 이익이라는 것.
수영만의 D사 아파트는 이미 완공됐지만 일부 계약자가 업체를 상대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겉으로는 시공상 하자 때문이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공급 과잉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자 환불을 해달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해석이다.
부산과 함께 대표적 미분양 지역인 광주도 사정은 마찬가지. 2000년 1900여 채에 불과했던 신규 분양 아파트가 지난해에는 2만7700여 채에 이르면서 주택업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광주 수완지구에서 500채가량을 내놓은 E사는 3개월 동안 분양률이 5%대에 그치자 계약금을 모두 돌려준 채 사업을 접었다. 이 회사는 분양 당시 계약자 전원에게 경품으로 중형 승용차를 준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분양 숨기려 빈집에 불 켜놓기도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자 주택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존 물량을 털어 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미 땅을 잡아 놓은 신규 분양분을 처리하기 위해선 기존 미분양 아파트를 팔아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 금정구 G사는 최근 미분양 아파트를 30%가량 할인한 값에 ‘땡 처리’ 전문업자에게 일괄 매각했다. 분양대행사인 한아름기획의 송희영 과장은 “완공 때까지 금융 부담을 감안하면 차라리 지금 ‘던지는’ 게 낫다는 것이 건설사 측 판단”이라고 귀띔했다.
분양가의 절반만 내면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도 있다. 반도건설 이만호 상무는 “서면의 M아파트 등은 분양가의 50%를 입주 후 2, 3년 뒤에 받고 있다”며 “물론 그 기간에 발생하는 이자는 업체가 부담한다”고 귀띔했다.
광주에서는 부부 동반 해외여행권, 분양가 5% 할인, 무이자 대출 등 갖가지 판촉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벽산건설은 운암동에 짓는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지난달에 계약한 고객에 한해 해외여행권을 제공했고, 대주건설은 주말마다 드럼세탁기, 선풍기, 자전거 등 경품 행사를 벌이고 있다.
영산대 이종찬(건축학) 교수는 “분양이 절반도 안 된 아파트에 훤히 불이 켜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한번 분양이 안 된 아파트는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태 장기화 가능성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11월까지 추가로 나올 아파트는 288곳, 15만1335채에 이른다. 이 중 지방에서는 8만2774채가 쏟아진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승인을 신청한 물량이 일시에 공급되는 것이다.
대주건설 김정균 분양소장은 “담보인정비율(LTV) 제한 등 금융 관련 규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공급만 늘고 있어 미분양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내년부터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 주택이 본격적으로 나올 예정이어서 지금 분양하는 아파트 중 상당수는 완공 후까지도 빈집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한 중견 주택업체의 임원은 “정부 공식 통계로는 부산지역 미분양이 9000여 채이지만 여기에는 100∼200채의 소형 단지는 빠져 있다”며 “이들을 모두 합치면 지금도 2만 채 이상이 미분양으로 쌓여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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