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주부들로 구성된 아줌마 밴드‘화려한 외출’이 올해 3월 인천 부평에서 열린 백혈병 어린이 돕기 자선 음악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맨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오현, 서순희, 김정미, 안혜숙 씨. /김경은 기자 |
“♪ She’s got it. Yeah, baby, she’s got it. ♬” 지난 16일 저녁 9시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음악학원 연습실. ‘둥둥! 두둥! 탕!~’ 김정미(여·48)씨의 드럼 소리가 요란하게 퍼지자 서순희(여·44)씨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록그룹 ‘바나나라마(bananarama)’의 히트송 ‘비너스(Venus)’를 시원스럽게 뽑아냈다.
안혜숙(여·48)씨의 손은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건반(키보드) 위를 움직이고, 김오현(여·46)씨의 베이스기타 연주가 나지막하게 깔렸다.
인천에 사는 주부 4명이 지난해 6월 결성한 아줌마 밴드 ‘화려한 외출’이 화려한 외출을 위해 맹훈련 중이다. 밤늦도록 연습에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이준익 감독의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오후 7시 인천 서구 ‘7080Live 서인천 공개홀’에서 열리는 ‘사랑나눔 자선콘서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서 모금한 돈은 인천 계산동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끔 탈출하는 ‘화려한 외출’
‘화려한 외출’ 멤버들은 평소 집에서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평범한 주부들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곡은 주로 70·80년대 팝이나 대학가요. 고정 레퍼토리는 ‘한동안 뜸했었지’, ‘오늘 같은 밤’, ‘이별의 종착역’, ‘그리움만 쌓이네’ 등 18곡. 4명이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3개월 정도 연습해야 한다.
연습은 매주 화·목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활달한 아줌마들이지만 연습할 때 수다는 절대 안 된다. 이들이 공연을 할 때는 화려한 변신을 한다.
드러머 김정미씨는 큼직한 귀고리에 파란 망사 상의를 즐겨 입는다. 리드보컬 서순희씨는 황금빛 아이섀도에 목걸이를 겹겹이 두른다. 키보더 안혜숙씨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붉게 반짝이는 입술에 빨간 가죽재킷을 입는다. 아이보리색 정장에 진주 목걸이를 두른 김오현씨(베이스기타)에게서 중년 주부의 중후함, 관록 같은 분위기가 묻어난다.
“우린 아줌마지만 가끔 일상에서 탈출하는 여성 밴드죠. 연주에 몰두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단번에 날아가 버려요.”(서순희씨)
◆록밴드 멤버가 되기까지
드러머 김정미씨는 현재 고3 엄마다. 남편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아들(25)은 중앙대 창작음악과 4학년이고, 딸이 입시를 앞두고 있다. 두 자녀 중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시간이 생겨 2년 전부터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드럼은 마치 한여름에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 같아서 연주할 때면 모든 근심을 다 날려 보내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낍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드럼을 치고 공연을 하니까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 남편 김형규(49)씨는 “요샌 나보다 우리 마누라가 더 유명해”라고 말했다.
키보더 안혜숙씨도 회사원 딸(25)과 군대 간 아들(22)을 둔 전업주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운 피아노 실력을 바탕으로 학창 시절 합창대회 반주도 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결혼한 뒤 음악을 접고 평범한 주부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기타를 사달라고 해서 우연히 악기사에 갔다. 그때 악기사 주인이었던 서순희씨를 처음 만났고, 서씨의 제안으로 밴드에 합류하게 됐다.
베이시스트 김오현씨는 26년째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큰아들 노기상(23·중앙대 작곡과 2학년)군과 작은아들 기평(18·단국대 생활음악과 색소폰 전공 1학년)군을 키워낸 일하는 엄마다. 가정주부로, 학원 선생님으로 정신 없이 살다가 새로운 삶에 눈을 떴다.
그 역시 학원에서 쓸 리코더와 하모니카를 사러 서씨의 악기사에 갔다가 베이스기타를 맡게 됐다. 경찰관인 남편 노국환(49)씨는 김씨의 든든한 후원자. 지금은 경북 예천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어 곁에서 도와주지 못하지만 공연 때마다 찾아와 응원해주고 캠코더로 동영상도 찍는다. 리더이면서 밴드의 막내인 보컬 서순희씨는 인천에서 20년째 악기사를 운영하고 있고, 4명 중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올드미스다. 대신 서씨는 밴드의 살림살이를 챙긴다.
‘화려한 외출’은 그동안 인하대 축제, 썸머락페스티벌(인천밴드연합 주최), 결식아동돕기 사랑의 락콘서트, 인천시민문화예술공연 등 주로 인천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대돼 약 30번 공연을 했다.
한번에 30만~50만원 정도 받는 출연료는 백혈병 어린이, 결식 아동 돕기 등에 전액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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