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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나무 아래서는>

여행가/허기성 2007. 12. 22. 07:54






진실의 나무아래 서는 12월 / 유안진





"진실을 말하면 흔들리는 나무가 있었다"



고려말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 권세를 한 손에 쥔 승려 신돈이 이 나무아래 모였다. 셋은 각자 자신의 진실을 얘기하기로 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듣고있는 나무의 흔들림으로 알 수가 있었으므로 모두가 정직해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맨 먼저 공민왕이 입을 열었다.


" 이 나라의 모든것이 다 왕인 내 것인 줄 안다. 내가 원하면 갖지 못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한 신하가 인삼 한 뿌리를 갖다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놈이 분명 내게 아부하느라고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번번이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얘기를 마치자 나무가 흔들렸다.


다음에는 노국공주가 말했다.


"전하께오서 오로지 저만을 그리도 깊이 사랑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게는 아무런 부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마음이 쓸쓸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누군가가 저만을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또 한사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왕비인 노국공주가 말하자 나무가 또 흔들렸다


"소신은 이 나라의 권세를 한 손에 다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은 못할 바가 없으면서도 단 한 가지만은 못하는 게 있어서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온 임금님이 앉으신 옥좌에 앉고 싶다는 것입니다" 신돈의 이 말에도 나무는 흔들렸다.


누군가가 꾸며댄 말이겠지만 이 얘기는 몇가지 인간적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는 것과 남성은 공민왕이나 신돈처럼 재력이나 권력을 원하지만, 여성은 진실된 사랑을 더 소원한다는 얘기는 아닐는지 아니 이 세상의 모든 남성은 권력과 재력을 더 좋아하므로 진실된 사랑따윈 안중에 없다는 뜻인지....


독신의 모씨에게 이렇게 권했다. 여성이 혼자살기 힘든 시대이니 좋은 사람 만나면 재혼하라고 이분은 '다람 다람 다람쥐'라는 동요를 비유하여 이렇게 얘기했다.


알밤인가 하고 주워보면 솔방울이고 알밤인가 하고 또 주워보면 조약돌이듯이, 진실된 사랑인가 하고 보면 아니었다고 자기가 사귀어본 남성들이 다 그러했다고...


옳은 말이다. 어쩜 세상에는 이런 남성들 뿐일 수도 있으리. 그러니 사랑이란 더욱이 남성과의 사랑이란 대낮 아닌 달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대낮처럼 잘 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솔방울이나 조약돌일지라도 알밤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달밤에나 말이다. 어찌 속아주는 것이 나뿐일까 보냐! 나 역시 알밤을 가장한 솔방울이나 조약돌이었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한평생 얼마나 많은 거짓을 만들며 사는가?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고 믿으려 애쓰고 하는 수 없이 속아주며 착각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일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평생 멋진 계약부부였는가를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랬다고 대답할까? 남 보기에 멋진 것이 얼마나 많은 진실을 위장한 것인지... 그것을 따지지 않는 것도 삶의 지혜는 아닐는지!!


"전화 여러번 했었어 근데 아무도 없더라"


분명 거짓인 줄 아는 이 한마디도 우리에겐 얼마나 따스한 위로가 되는가? 열마디의 거짓중에서 단 한마디의 진실이 있으면 모두를 싸잡아 진실로 여기고 싶다.


이런 너그러움이 해마다 12월에는 더 절실해진다. 아아 내 입술은 얼마나 많은 거짓을 쏟아냈을까? 차라리 입이 없는 벙어리라면 보다 진실해질수가 있었을텐데....... 차라리 모자라는 정신박약이었다면 거짓 미소 몸짓 거짓말 등 을 덜 만들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도 진실의 나무처럼 긴긴 밤의 계절을 침묵과 묵상으로 뉘우치며 진실되기 위해 보내고 싶다.


산도 강바닥도 나무도 잡초도 모두가 제 거짓을 다 벗어버린 채 부끄러워도 진실해질 수 밖에 없는 겨울이 돌아왔다. 그래서 모든 것이 초라해지고 고독해질 수 밖에 없는 겨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