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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0년째 걷기만 하는 스님의 `따끔한` 지적

여행가/허기성 2008. 1. 21. 06:48
왜 그는] 30년째 걷기만 하는 원공 스님 "담배꽁초 하나 주울 때도 고개 숙여야 돼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그게 下心이야"
올해로 30년째, 자동차·기차·경운기는 물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걷기만 한다'는 원공(圓空·64) 스님의 연락처를 물어물어 알아냈다. "스님, 정말로 아무것도 안 타세요?" 첫 질문에 스님은 "내가 녹차를 좀 타지" 하며 껄껄 웃었다.

1979년 3월부터 우리 땅을 걷고 있는 스님을 13일 대전에서 만났다. 아침 7시 충남 논산시 연산면을 출발한 스님의 두 다리는 오후 4시가 돼서야 쉬게 됐다. "어이구, 무릎이야. 내가 무릎이라도 성나겠다.


30년째 걷기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원공 스님이 대전의 한 산길을 걸어내려오고 있다. /대전=전재홍 기자 jhjun@chosun.com
" 지난해 국도 2차선에서 마주 달리는 차를 피하려다 오른쪽 무릎 인대가 파열된 스님은 먼저 무릎에게 미안한 척을 했다.

―스님은 왜 계속 걸으십니까. 걷는 게 수행이 됩니까.

"인간은 원래 직립동물 아닌가. 걸을 수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건데, 차에 의존하게 되면서 걷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된 거지. '행각(걸으며 깨닫는다, 行脚)'을 하면 밥만 제때 먹어도 자족하는 걸 배우게 돼. 길에서 페트병 하나, 담배꽁초 하나를 주울 때도 숙여야 돼. 보잘것없는 쓰레기에게 고개 숙이면서 배우는 거지. 그게 하심(下心)이야."

―30년 동안 걸었는데, 목적지는 어떻게 정합니까.

"아침에 일어나 침 탁 뱉어서 튀는 대로 가지. 앞일은 몰라. 내일 당장 차에 치여 쓰러져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지. 하루 종일 걷고 숙소에 들어오면 '아,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원공 스님이 세상의 길에 몸을 맡긴 것은 도봉산 천축사 내 '무문관(無門關) 6년 수행'을 마친 후였다. 이름 그대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아니면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 부처의 6년 수도를 따라 6년간 바깥 세상과 일체의 인연을 끊은 채 면벽 참선에만 정진한다.
―무문관 수행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사람들은 무문관 수행을 했다고 내가 좀 더 나을 거라고 보고 접근해. 하지만 그저 수행하는 과정으로서 한 번 하고 나온 것이지, 내가 더 나을 게 하나도 없어. 그때야 무척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지. 그 과정이 없었다면 행각을 한다고 돌아다닐 수 있었겠는가."

―무릎 사고 이후로 걷는 게 두렵지는 않았습니까.

"오히려 얻은 것이 있지. 내가 원래는 굉장히 빨리 걷는데, 무릎이 아파서 천천히 걷다보니 사물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거야. 그래서 또 새 세상을 알게 됐어. 사고 났을 때 구급차에 실려갔으면 29년으로 행각을 그만뒀어야 했겠지. 하지만 29년이면 어떻고 30년이면 어떤가. 달력도 인간이 만든 감옥이야. 올해가 무자년이니 1월이니 며칠이니 따지면서 인간사가 복잡해진 거지."

스님은 대개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걷는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도 걸었는데 이제는 힘에 부친다"는 설명이다. 메고 다니는 배낭에는 밥을 할 수 있는 버너와 우의, 무릎 약이 들어있다. 비상식량으로 라면과 생쌀도 갖고 다닌다. "생라면 2개 먹고 물 한잔 마시면 맛이 좋다"는 게 스님의 주장이다.

―숙소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가다가 적당한 데서 자. 절에서도 자고 교회에서도 자고. 교회니 절이니 구분하는 건 교육 때문이야. 눈감으면 똑같아."

―운동화는 이제까지 몇 켤레나 닳았습니까.

"알 수가 없어. 지금 신고 있는 게 두 달쯤 돼가는데 밑이 떨어졌어. 원래 발 크기는 280㎜인데 신발은 300㎜ 신어. 걷다보면 발이 붓거든."

―간첩으로 오인된 적도 있었다는데.

"20년 전만 해도 혼자 산으로 넘어다니면 신고가 들어갔어. '혼자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살펴보자' '인심 좋은 저 아저씨 간첩인가 살펴보자' 곳곳에 써있었지. 지금은 전산망이 잘 깔려있지만, 그때는 신원조회 결과 기다리느라 경찰서에서 하룻밤 자는 건 보통이었지."

―정해진 곳도 없이 그렇게 걸으면 외롭단 생각 안 듭니까.

"외로움도 망상이지. 나는 어린 나이에 절에 들어갔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런 망상을 할 틈이 없었어. 망상도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여유가 있으니까 하지."

―그만두고 싶은 때는 없었습니까.

"내가 하고 싶어서 했으니까 그런 적은 없었어. 달밤에 볼일 보러 나왔다가 달하고 별을 보게 되면 다시 들어가서 잘 수가 없어. 짐 짊어지고 나와서 또 걷는 거지. 그러면서 즐거움을 느껴. 그런 즐거움에 지금까지 걸은 거야."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그냥 걷는 게 아니고 매일 쓰레기를 주워. 하루에 쓰레기봉투 50ℓ짜리 5개 정도를 채우지. 환경이 더러워지면 인간도 더러워지지 않나."

쓰레기봉투는 스님의 필수품이다. 전국 쓰레기봉투 값을 훤하게 꿰고 있다. 도봉산 계곡에 몇십 년째 묻혔던 쓰레기를 파내기도 했다. 1000일 전국 도보행각, 155마일 휴전선 순례, 통일기원 180일 국토순례 등 행각으로 사람을 깨우칠 수 있는 행사도 여럿 이끌었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경기장을 돌아 123일 동안 4000㎞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다.

―30년 행각을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하실겁니까.

"나는 하늘에다 대고 주먹질은 안 해.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하다보면 점진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 말만 하는 것도 안 해.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중요한 거지."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나라는 본질은 그대로지. 세상이 많이 변했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서 버리지 않아야 될 것도 버리고 있어. 버리면 다 쓰레기 아닌가. 덜 소유하면서도 자족할 줄 알아야 세상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범인들에게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쉽지 않은 주문 아닙니까.

"무소유는 있을 수 없어. 저소유가 가능하겠지. 나는 옷이 한 벌밖에 없지만 꾀죄죄하지 않아. 저녁에 빨아서 널어뒀다가 아침에 마르면 마른 대로 입고 덜 마르면 덜 마른 대로 입고. 속옷도 빨아가며 열 달 넘게 입었어. 떨어져야 버리든지 하지. 덜 소유하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는 거야."

―평생의 화두가 있다면?

"화두라는 것도 가지고 다니면 무게를 느껴. 화두의 무게조차 놓아버려야 해."

―어디서 30년 행각을 마치실 겁니까.

"3월 6일에 어디가 됐든 발이 머무는 곳에서 마칠 거야. 지금부터는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기름 거두느라 애썼는데, 지금이라도 가보면 내가 할 일이 있을 거야."


30년째 걷기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원공 스님이 대전의 한 산길을 걸어내려오고 있다. /전재홍 기자
출처 : 30년째 걷기만 하는 스님의 `따끔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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