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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삶"이야기..

"만원짜리 옷 한벌도 못팔아 사람 구경 해보는게 소원"

여행가/허기성 2008. 7. 4. 12:32
'어둠이 덮친 거리' 동대문 시장의 새벽 "한달만에 매출 절반 '뚝' IMF 때보다 더 힘들어요"

"작년 다르고, 올해 또 달라요. 요새 같으면 IMF 때가 더 나은 거 같아요."
3일 오전 0시30분,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에서 의류 코너를 하고 있는 황경숙(여·48) 사장은 "오후 9시부터 장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손님이 2명밖에 없었다"며 "이곳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지만 요즘 같으면 차라리 장사를 접는 게 낫다"며 한숨을 쉬었다.

↑ 3일 오전 1시 서울 동대문의 한 도매의류시장. 한때 지방에서 심야버스로 올라온 소매상인들로 옆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붐볐지만, 요즘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한산하기만 하다. 일찍 문을 닫은 상가도 곳곳에 보였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전국의 소매상들이 물건을 구하러 오는 동대문 의류 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방 상권이 무너지면서 지방에서 물건 사러 오는 상인들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중저가 의류를 사러 이곳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새벽시장 열기 사라진 동대문 상가
3일 새벽에 둘러본 서울 동대문 시장은 가장 활기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한산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상인들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복도를 오가며 물건 값을 묻는 손님 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가게를 지키는 점원들이 복도를 오가는 손님들보다 많아 보일 정도였다.

6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는 임성빈(57)씨는 "요새 같이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종업원 없이 혼자서 하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지, 아니면 인건비 부담으로 진작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매출이 5월에 비해 50% 이상 줄었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올라온 이지희(여·38)씨는 "6월 들어 특히 장사가 잘 안돼, 동대문 시장을 찾는 횟수를 1주일에 2번에서 1번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헬로우apM , 밀리오레 , 두산타워 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날 오전 1시 반에 찾은 이들 대형 쇼핑몰은 나이 어린 점원들이 엎드려서 쪽잠을 자거나, 아예 점원이 보이지 않는 매장도 많았다. "와 싸다. 남방이 만원!" 소리를 지르며 경쟁적으로 손님을 끌던 한 점원은 "장사가 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까지 물건을 한 개도 못 팔았다. 팔아주면 인터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밀리오레 남성복 매장 직원인 이주엽(26)씨 역시 "오후 7시 반부터 나와서 일했는데 지금까지 3개밖에 못 팔았다"며 "이래서 월급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정동 아웃렛 매장도 마찬가지
3일 오후, 100여개의 패션·스포츠 의류 브랜드들이 즐비한 서울 문정동 로데오 거리 .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오후 시간대이지만, 이곳은 일부 매장을 제외하고는 손님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50대 주차가 가능한 공영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매장 곳곳엔 할인율이 20~30%는 기본이고 최대 80%까지 세일 표시가 붙어 있었다.

스포츠웨어 전문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금선씨는 "전통적으로 여름휴가 전후가 비수기이긴 해도 예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 정도 뚝 줄었다"고 했다. 골프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이모(52)씨도 "지금 상황은 주말과 평일이 분간이 안 된다"며 "전통적으로 골프 의류는 4~6월이 대목인데, 올해는 그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 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장사를 한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숙녀복 의류업체 매장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여기는 전통적으로 임대료가 비싼데 가게를 내놓으면 권리금도 제대로 못 받을 형편이기 때문에, 문은 열어 놓고 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사인 조구성(63)씨는 "올 초부터 거래량이 20~30% 줄어 마지막 거래를 성사시킨 게 두 달 전"이라며 "매물이 나와 임자가 나타나도 권리금 때문에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다"고 했다.

소비 양극화로 중저가시장 크게 위축
이런 와중에도 고가(高價) 수입품이 많은 대형 백화점들은 올 들어서도 10%에 가까운 신장률을 기록하며 준(準)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반면 중저가 의류를 취급하는 동대문시장 상권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기가 가라앉고 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송병렬 사무국장은 "지방에서 전세 버스를 이용해 올라오는 소매상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인근의 대형 쇼핑타운도 공실률(空室率)이 10~20%가 돼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동대문 시장을 찾는 국내 소매상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의 구매 물량도 크게 줄었다. 동대문 외국인 구매 안내소의 고동철 소장은 "전체 물량의 60~70% 이상을 사가던 일본 바이어들이 납품 단가가 훨씬 싼 중국 , 베트남 , 인도 등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