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의 노인 폭행 논란이 불거진 지도 어느새 3개월이 흘렀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깊은 산속에서 칩거 중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가만히 듣는 쪽을 택했다. 그는 1시간 30여 분 동안 그동안 꾹꾹 담아놨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지난 4월 21일,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최민수(46)가 70대 노인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민수가 서울 이태원동에서 70대 노인 유 모씨를 폭행하고 자동차 앞 보닛에 매단 채 몇 십 미터를 질주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최민수는 '천하의 못된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40대의 건장한 남성이 70대 노인을 폭행했다는 것은,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용서받지 못할 일이 분명했다.
사건 발생 3일 뒤인 4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의 뜻을 밝히며 무릎을 꿇은 최민수. 그는 "저 때문에 마음 다치신 어르신의 마음이 풀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최민수는 이날 기자회견 중, 자신과 유 모씨 사이의 폭행 논란의 핵심 쟁점인 '폭행' '도주' '흉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흉기라든지 도주, 폭행… 이런 부분들은 어차피 차후에 밝혀지겠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런 인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라도 이런 인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뒤 최민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흐른 지난 6월 27일, 서울서부지검은 최민수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죄가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 사이 최민수는 딱 두 차례, 서울 시내와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을 뿐, 계속 산속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죄가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최민수는 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산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산속에서 석 달 가까이 칩거 중
지난 7월 11일, 자동차를 타고 서울에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경기도 남양주의 어느 산속. 최민수가 머무는 곳은 인근에 자연휴양림이 있을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요즘같이 통신이 잘 발달한 시대에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곳이 얼마나 깊은 산속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집 몇 채를 지나 오르막길로 계속 갔다. 최민수가 머무는 집으로 향하는 길은 장애물로 막혀 있었고, 그 옆에는 '출입 금지 구역'이라는 푯말이 놓여 있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려는 순간,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는 최민수가 사는 집의 주인이라고 했다. 영화 매니지먼트 사업 등을 한 그의 남편과 최민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했다.
"(최)민수씨는 그림 그리고, 가죽 공예 하면서 지내요. 가끔 시장 보러 갈 때 같이 가기도 해요. 간혹 주은씨(최민수 아내)나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민수씨는 여기서 생활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것 같아요."
기자에게 최민수의 근황을 전해준 그는 "여기 찾아온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매일 오는 기자도 있어요. 그래도 인터뷰 안 하더라고요.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돌아가는 편이 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만 듣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씌인 푯말을 지나 오르막길로 가보니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 나타났다. 마당 한쪽에는 최민수의 지프차가 주차돼 있었다. 이 집은 9년 전까지 무당이 살았던 곳으로, 최민수가 들어와 살기 전까지는 창고로 사용됐다고 한다.
내부로 통하는 문 앞쪽에서 최민수를 불렀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서너 차례 불렀지만 역시 아무런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삼분이 흘렀을까. 문을 열고 나오는 최민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그의 요즘 생활을 대변하고 있었다. 기자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불쑥 들이닥친 낯선 방문객, 지인도 아닌 기자가 반가울 리 없을 터였다.
최민수는 기자를 마당 한쪽에 있는 의자로 안내했다. "잠깐 앉으세요"라고 말한 그는 담배를 꺼내 물며 의자에 앉았다. 의자 옆 작은 테이블 위에는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듯한 다기와 법정 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그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공간인 듯싶었다.
나는 지금 침묵으로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노인 폭행 논란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니 그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짐을 벗었을 듯싶었다. 그에게 제일 먼저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도 되지 않느냐"고 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난 은둔하거나 도피한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 받았으니까 내려갈게요'하는 건 아닌 거죠. 계속 이렇게 지낼 거예요. 그저 이곳에 있고 싶어서, 자연 속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뿐이니까요. 요즘 연기자들, 특히 드라마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이들은 한 작품 끝내고 6개월 안에 다시 컴백하고 그러잖아요. 나는 원래 한 작품 하고 나면 2년도 쉬고 그랬어요. 나는 지금 자신과의 약속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에요. 나는 지금 침묵으로 나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무혐의임이 밝혀졌지만 그는 노인과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이 벌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세상의 많은 아이들과 내 아이들 말이에요. 왜 그때 아이들 생각이 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들이 나를 괴물로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 생각이 드니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무릎을 꿇은 건 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 속에는 죄가 있었으면 무릎을 꿇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사실, 그날 기자회견 끝내고 자살할 생각이었어요. 그 일로 내 삶의 모든 게 무너졌으니까요. 나의 모든 걸 잃었어요. '배우 최민수'도 더 이상 없고요."
그 뒤 한동안 최민수는 말이 없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물끄러미 먼 산을 응시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을 꽤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날, 차에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견인차가 식당 손님의 차를 끌고 가려고 하다가 식당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진 것 같았어요. 그 식당 주인이 바로 그 노인 분이세요. 차에서 내려 뭔 일인가 지켜보다 한마디 했는데, 그 노인 분이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하면서 다가오더니 내 멱살을 잡았어요. 그래서 나는 양손을 이렇게 벌리고 있었고요(최민수는 자신의 양팔을 옆으로 벌리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다 그 노인 분을 민 거고, 그래서 내 옷이 찢어진 거예요. 그 노인 분의 주장대로 내가 그 노인 분의 멱살을 잡았다면 내 옷이 찢어졌겠어요? 내가 그분의 멱살을 잡았으면 내 팔을 오므렸을 텐데, 그러면 그 노인 분이 나한테 끌려왔겠죠. 나는 젊고 그분은 노인인데, 내가 힘이 더 센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노인의 병실을 찾아갔던 이야기도 했다.
"나는 합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내가 잘못한 게 있어야 합의를 하죠. 그날 영화사 대표에게 연락이 왔는데, 노인 분 측에서 '합의를 하자'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표에게 '잘못한 게 있어야 합의를 하지 않느냐, 나는 안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대표가 '합의는 그만두고 문병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문병을 갔는데 병실 안에 기자들이 잔뜩 있더라고요. 그날 동영상을 봤으면 알겠지만 그때 내 표정이 참 씁쓸했을 거예요."
최민수는 경찰 조사를 받던 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라 '이럴 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되물었더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어떻게 지내겠다'는 말을 한다더군요. 난 오히려 '내 폭력 전과가 몇 번이냐?'고 물었어요. '여덟 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덟 번이 아니라 더 많을 거다. 합의금으로 준 돈만 해도 4억원이다. 난 여자 때리는 남자 그냥 못 지나친 것밖에는 없다. 앞으로도 그런 경우를 보면 또 때릴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안 그러겠다는 말은 못하겠다'고요."
이어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어쩌겠어요. 남들과 다른 피를 갖고 태어났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죄가 없다면, 세상을 용서하지 않겠다
다행히 사건 발생 장소의 CCTV와 6명의 목격자가 모든 정황을 잘 밝혀줘 최민수는 폭행 및 협박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사건 관할 지구대인 이태원 지구대에서도 그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후 초지일관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던 그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사건 발생 뒤 최민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9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고 잠도 못 잤다. 4일째에는 죽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한다. 9일 동안 체중이 6kg이나 빠졌다니 그의 맘고생이 어느 정도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고 나서 정말 쿨하게 '믿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기자회견을 하려고도 했어요. 그랬으면 사람들은 '최민수답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상황에서는 침묵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인터뷰도 안 한 거예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그는 이번 사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 참 재밌다(?)고 했다.
"난 언론을 향해 내 창자까지 다 보여줬는데도 믿지 않더라고요. 참 그런 게… 언론이 오보를 했으면 바로잡아야 하잖아요. 언론은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걸요. 1년 아니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최민수는 노인 때린 놈'으로 기억될 거예요. 분명히. 기자회견 중에 '내가 만약에 죄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은 '내가 만약에 죄가 없다면 여러분들을, 세상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해요."
단호한 어투로 말을 마친 그는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느껴졌다.
영화 촬영 재개? 어떻게 해요. 못하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 니로와 공동 주연을 맡은 4백억원대 한·미·일 합작 영화 '스트리트 오브 드림스(Street of Dreams)'에 캐스팅된 최민수는 올겨울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영화는 19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활동한 최초의 동양계 마피아 몬타나 조(최민수)를 중심으로 뉴욕 뒷골목 마피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중 로버트 드 니로가 이탈리아 마피아 대부 역으로, 최민수가 동양계 마피아 몬타나 조, 앤디 가르시아가 몬타나 조의 라이벌 마피아 역으로 캐스팅돼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최민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안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어요. 작품은 피가 다시 끓는다면, 아마 그때 하게 되겠죠"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입장이다.
그는 "영화 촬영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로버트 드 니로가 안 됐죠 뭐"라며 웃어 보였다. 곧이어 그는 "앞으로 나 뭐 하고 살죠?"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연히 연기 해야죠"라는 기자의 대답에 그는 "어떻게 해요. 못하지…"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유성 엄마(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그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기자회견 때도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주은아, 내 사랑하는 아내. 미안하다. 이건 아니잖아, 내가. 그지?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기에 그의 심경을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한참 뒤 "산속 생활이 심심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원시적인 게 가장 풍요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최민수가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집 안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를 따라 들어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최민수가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켜자 그제야 좀 밝아졌다. 나무와 풀, 장작이 어우러져 있던 밖과는 달리 실내는 독특한 멋을 풍겼다. 마치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은 느낌이었다. 벽에는 최민수가 직접 만들었다는 가죽 공예 제품들이 걸려 있었다. 가죽 공예 도구들이 널려 있는 책상 또한 그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책상 옆의 작은 테이블에는 그가 그렸다는 그림이 쌓여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보니 엉망이었어요. 바닥에는 물이 이만큼 차 있고, 곰팡이 천지고…. 정말이지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주워 온 소파와 테이블 등으로 이렇게 꾸민 거예요. 이태원의 작업실(가방 만드는 곳)에 있던 짐을 다 여기로 옮겨놨죠 뭐(웃음)."
'위험한 기회'이거나 '위대한 기회'이거나
최민수의 폭행 사건은 발생 3개월이 지난 지금, 이미 잊혀진 일이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일 아닐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그에게는 다르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기회'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가만히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참 별일이 다 있어요. 남들은 한 번도 겪지 않고 지나갈 일을 나는 여러 번 겪었거든요. 지난 인생을 생각하면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인터뷰 말미, 그는 요즘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털어놓았다. 왼쪽 어깨부터 척추까지 통증이 있어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뜬다고.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최민수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오늘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 정답이 들어 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가 아닌 '위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가 지금의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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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3일 뒤인 4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의 뜻을 밝히며 무릎을 꿇은 최민수. 그는 "저 때문에 마음 다치신 어르신의 마음이 풀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최민수는 이날 기자회견 중, 자신과 유 모씨 사이의 폭행 논란의 핵심 쟁점인 '폭행' '도주' '흉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흉기라든지 도주, 폭행… 이런 부분들은 어차피 차후에 밝혀지겠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실로 밝혀진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런 인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라도 이런 인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뒤 최민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흐른 지난 6월 27일, 서울서부지검은 최민수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죄가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 사이 최민수는 딱 두 차례, 서울 시내와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을 뿐, 계속 산속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죄가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최민수는 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산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산속에서 석 달 가까이 칩거 중
지난 7월 11일, 자동차를 타고 서울에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경기도 남양주의 어느 산속. 최민수가 머무는 곳은 인근에 자연휴양림이 있을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요즘같이 통신이 잘 발달한 시대에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곳이 얼마나 깊은 산속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집 몇 채를 지나 오르막길로 계속 갔다. 최민수가 머무는 집으로 향하는 길은 장애물로 막혀 있었고, 그 옆에는 '출입 금지 구역'이라는 푯말이 놓여 있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려는 순간,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는 최민수가 사는 집의 주인이라고 했다. 영화 매니지먼트 사업 등을 한 그의 남편과 최민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했다.
"(최)민수씨는 그림 그리고, 가죽 공예 하면서 지내요. 가끔 시장 보러 갈 때 같이 가기도 해요. 간혹 주은씨(최민수 아내)나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민수씨는 여기서 생활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것 같아요."
기자에게 최민수의 근황을 전해준 그는 "여기 찾아온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매일 오는 기자도 있어요. 그래도 인터뷰 안 하더라고요.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돌아가는 편이 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만 듣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씌인 푯말을 지나 오르막길로 가보니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 나타났다. 마당 한쪽에는 최민수의 지프차가 주차돼 있었다. 이 집은 9년 전까지 무당이 살았던 곳으로, 최민수가 들어와 살기 전까지는 창고로 사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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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그의 요즘 생활을 대변하고 있었다. 기자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불쑥 들이닥친 낯선 방문객, 지인도 아닌 기자가 반가울 리 없을 터였다.
최민수는 기자를 마당 한쪽에 있는 의자로 안내했다. "잠깐 앉으세요"라고 말한 그는 담배를 꺼내 물며 의자에 앉았다. 의자 옆 작은 테이블 위에는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듯한 다기와 법정 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그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공간인 듯싶었다.
나는 지금 침묵으로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노인 폭행 논란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니 그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짐을 벗었을 듯싶었다. 그에게 제일 먼저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도 되지 않느냐"고 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난 은둔하거나 도피한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 받았으니까 내려갈게요'하는 건 아닌 거죠. 계속 이렇게 지낼 거예요. 그저 이곳에 있고 싶어서, 자연 속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뿐이니까요. 요즘 연기자들, 특히 드라마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이들은 한 작품 끝내고 6개월 안에 다시 컴백하고 그러잖아요. 나는 원래 한 작품 하고 나면 2년도 쉬고 그랬어요. 나는 지금 자신과의 약속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에요. 나는 지금 침묵으로 나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무혐의임이 밝혀졌지만 그는 노인과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이 벌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세상의 많은 아이들과 내 아이들 말이에요. 왜 그때 아이들 생각이 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들이 나를 괴물로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 생각이 드니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무릎을 꿇은 건 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 속에는 죄가 있었으면 무릎을 꿇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사실, 그날 기자회견 끝내고 자살할 생각이었어요. 그 일로 내 삶의 모든 게 무너졌으니까요. 나의 모든 걸 잃었어요. '배우 최민수'도 더 이상 없고요."
그 뒤 한동안 최민수는 말이 없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물끄러미 먼 산을 응시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을 꽤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날, 차에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견인차가 식당 손님의 차를 끌고 가려고 하다가 식당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진 것 같았어요. 그 식당 주인이 바로 그 노인 분이세요. 차에서 내려 뭔 일인가 지켜보다 한마디 했는데, 그 노인 분이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하면서 다가오더니 내 멱살을 잡았어요. 그래서 나는 양손을 이렇게 벌리고 있었고요(최민수는 자신의 양팔을 옆으로 벌리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다 그 노인 분을 민 거고, 그래서 내 옷이 찢어진 거예요. 그 노인 분의 주장대로 내가 그 노인 분의 멱살을 잡았다면 내 옷이 찢어졌겠어요? 내가 그분의 멱살을 잡았으면 내 팔을 오므렸을 텐데, 그러면 그 노인 분이 나한테 끌려왔겠죠. 나는 젊고 그분은 노인인데, 내가 힘이 더 센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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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합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내가 잘못한 게 있어야 합의를 하죠. 그날 영화사 대표에게 연락이 왔는데, 노인 분 측에서 '합의를 하자'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표에게 '잘못한 게 있어야 합의를 하지 않느냐, 나는 안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대표가 '합의는 그만두고 문병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문병을 갔는데 병실 안에 기자들이 잔뜩 있더라고요. 그날 동영상을 봤으면 알겠지만 그때 내 표정이 참 씁쓸했을 거예요."
최민수는 경찰 조사를 받던 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라 '이럴 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되물었더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어떻게 지내겠다'는 말을 한다더군요. 난 오히려 '내 폭력 전과가 몇 번이냐?'고 물었어요. '여덟 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덟 번이 아니라 더 많을 거다. 합의금으로 준 돈만 해도 4억원이다. 난 여자 때리는 남자 그냥 못 지나친 것밖에는 없다. 앞으로도 그런 경우를 보면 또 때릴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안 그러겠다는 말은 못하겠다'고요."
이어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어쩌겠어요. 남들과 다른 피를 갖고 태어났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죄가 없다면, 세상을 용서하지 않겠다
다행히 사건 발생 장소의 CCTV와 6명의 목격자가 모든 정황을 잘 밝혀줘 최민수는 폭행 및 협박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사건 관할 지구대인 이태원 지구대에서도 그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후 초지일관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던 그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사건 발생 뒤 최민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9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고 잠도 못 잤다. 4일째에는 죽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한다. 9일 동안 체중이 6kg이나 빠졌다니 그의 맘고생이 어느 정도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고 나서 정말 쿨하게 '믿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기자회견을 하려고도 했어요. 그랬으면 사람들은 '최민수답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상황에서는 침묵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인터뷰도 안 한 거예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그는 이번 사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 참 재밌다(?)고 했다.
"난 언론을 향해 내 창자까지 다 보여줬는데도 믿지 않더라고요. 참 그런 게… 언론이 오보를 했으면 바로잡아야 하잖아요. 언론은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걸요. 1년 아니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최민수는 노인 때린 놈'으로 기억될 거예요. 분명히. 기자회견 중에 '내가 만약에 죄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은 '내가 만약에 죄가 없다면 여러분들을, 세상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해요."
단호한 어투로 말을 마친 그는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느껴졌다.
영화 촬영 재개? 어떻게 해요. 못하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드 니로와 공동 주연을 맡은 4백억원대 한·미·일 합작 영화 '스트리트 오브 드림스(Street of Dreams)'에 캐스팅된 최민수는 올겨울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영화는 19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활동한 최초의 동양계 마피아 몬타나 조(최민수)를 중심으로 뉴욕 뒷골목 마피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중 로버트 드 니로가 이탈리아 마피아 대부 역으로, 최민수가 동양계 마피아 몬타나 조, 앤디 가르시아가 몬타나 조의 라이벌 마피아 역으로 캐스팅돼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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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촬영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로버트 드 니로가 안 됐죠 뭐"라며 웃어 보였다. 곧이어 그는 "앞으로 나 뭐 하고 살죠?"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연히 연기 해야죠"라는 기자의 대답에 그는 "어떻게 해요. 못하지…"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유성 엄마(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그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기자회견 때도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주은아, 내 사랑하는 아내. 미안하다. 이건 아니잖아, 내가. 그지?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기에 그의 심경을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한참 뒤 "산속 생활이 심심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원시적인 게 가장 풍요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최민수가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집 안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를 따라 들어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최민수가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켜자 그제야 좀 밝아졌다. 나무와 풀, 장작이 어우러져 있던 밖과는 달리 실내는 독특한 멋을 풍겼다. 마치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은 느낌이었다. 벽에는 최민수가 직접 만들었다는 가죽 공예 제품들이 걸려 있었다. 가죽 공예 도구들이 널려 있는 책상 또한 그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책상 옆의 작은 테이블에는 그가 그렸다는 그림이 쌓여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보니 엉망이었어요. 바닥에는 물이 이만큼 차 있고, 곰팡이 천지고…. 정말이지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주워 온 소파와 테이블 등으로 이렇게 꾸민 거예요. 이태원의 작업실(가방 만드는 곳)에 있던 짐을 다 여기로 옮겨놨죠 뭐(웃음)."
'위험한 기회'이거나 '위대한 기회'이거나
최민수의 폭행 사건은 발생 3개월이 지난 지금, 이미 잊혀진 일이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일 아닐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그에게는 다르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기회'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가만히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참 별일이 다 있어요. 남들은 한 번도 겪지 않고 지나갈 일을 나는 여러 번 겪었거든요. 지난 인생을 생각하면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인터뷰 말미, 그는 요즘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털어놓았다. 왼쪽 어깨부터 척추까지 통증이 있어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뜬다고.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최민수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오늘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 정답이 들어 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가 아닌 '위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가 지금의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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