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좀 길지만 한번 읽어보세요.가슴이 찡합니다.
13세의 탈북소년이 피를 흘리며 쓴 수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선 보인 그 비극보다 더 처절한 비극을
연출한 21세기 현대판 지옥에서의 탈출 드라머.
이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동포에게 감사 드립니다. 잊지 않으리라...
(틀린 글자 -오자 - 가 많으니 양해 바랍니다.)
남조선분들에게 드립니다.
북조선에서 도망쳐서 여기지금 중국에서 이글을 씁니다
저의 고향은 평양입니다,아버지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학부 선생이였고
어머니는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외국어학부 선생이였습니다,
누나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기악을 배우는 학생이였습니다,
저의가족은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살았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인차 아버지,어머니.
누나와함께 정치범 관리소에 가게되였습니다,
평양에살때 우리는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마시다가 술에취해 로동당에
어긋나는 정치적 발언을하여 반당,반혁명분자로 되여
우리집식구들은 함경북도 명천군인가하는곳에 정치범관리소에 잡혀가게 되였습니다,
밤에자는데 갑자기 문을 쾅쾅 두드리며 사람들이 밖에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가 나가서 문을 열었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4명이 시꺼먼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아버지 가슴을 쎄게 때리더니 량쪽에서 팔을 비틀어 뒤로하여
족쇄를채우고 두사람은 아버지를 끌고나가고 두사람은 우리집을 수색하엿습니다.
집안이 전부 마사지고 부억에 내려가 사발까지 다 깨버리더니 어머니와 누나.
나를 방바닥에 앉으라고하더니 아버지가 집에서 반혁명적소리들을
하지않았는가,나쁜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는가.록음기로 라지오를 듣지않았는가,
하면서 여러가지를 자꾸 물어보앗습니다
아버지 당증을 찾아서 그것은 자기네들이 건사한다고 하면서 주머니에 넣었고
아버지가 전국지식인대회에서 와 사로청대회,그리고 군대때 대회에 참가하여
찍은 기념사진4개를 몽땅 벗겨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자기비판을 할준비를 잘하고
있으라고 하더니 밖에 나오지 못하게 밖으로 열쇠를 채우고 가는것이엿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건강하지 못한데 그때 사람들이 나가자 마자
기절하면서 쓰러졋습니다,누나와 나는 울면서 어머니를 흔들엇지만
새벽에 날이 밝아서야 어머니는 깨나더니 누나와 나를 안고 계속 울엇습니다
아침에 9시되여서 까마즈차가 오더니 (러시아제 화물트럭) 우리집 물건을
다 실어가고 어머니와 누나,나는 갱생에 (68년 북한산 찦차) 타라고 하더니
평양시보위부에 싣고가 거기서 2일밤 감방안에 있으면서
나는 그냥 있고 어머니와 누나가 계속 불리워나가 조사를 받앗습니다
손도장이랑 여러번 찍더니 3일되는 아침에 랭동차에 타라고
(북한에서 자체로 철판으로 차적재함에 철집만들어쒸운차인데 호송이나 포약 ,탄약,등
중요물건 나를때 이런차를 쓴다)하엿습니다
그안에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고 군대 4명이 총을메고 앉아있다가 우리를 끌어올려 놓앗습니다
그때 우리가족 뿐아니라 젊은남자 3명,녀자2명도 함께 갓습니다
그사람들은 손과 발에 족쇄를 다 채우고 우리가족은 그냥갓습니다
쉬지않고 게속 가다가 모를곳에서 밖에나가 변소보라고 (소변)하면서
우리가족은 차에서 내리게하여 길옆에서 변소를보고 족쇄에 묶이운사람들은
차에 물넣을때쓰는 바게쯔를 올려보내 거기다 오줌을 누게 하엿습니다,
우리식구를 타라고하더니 문은 하나만 닫고 하나는 열어놓고 군대4명과 운전수(운전기사),
별을 단사람2명이 밥싸온걸 펼쳐놓고 밥을 먹으면서
<먹고싶지?그러게 왜 당을 반대하나? 당을 배반하면 너희들은 짐승보다 못해!>하면서
쌍욕을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더니 별을단 사람 한명이 나를보고
<야!거기새끼반동!이리와!>하더니 <네애비,에미반동이여서 너두 고생하는거야>하면서
밀빵두개와 절군오이반찬 한젖가락 크게 집어서 내손바닥에 주면서
다먹은다음 올라가라고 햇습니다, 저는 오이만 씹어먹고 빵은 먹는것처럼 하면서
춤(침)을 발라 꽉 쥐여 쪼꼬마게 덩어리 두개를 만들어쥐고 <잘먹엇습니다>인사하고
차에 올라가자마자 한덩어리는 엄마입에 넣고 다른 한덩어리는 누니입에 쑤셔 넣엇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말도 못하고 내손을 꽉잡고 빵덩이를 입에문채 나를보면서 눈물흘렷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벽 2시쯤해서 관리소에 도착햇는데 정문앞에 사람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잇엇습니다,
(이 아이가 들어간 수용소는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16호 관리소인데
원래는 중요범죄자들만 취급하던곳이다 반당반혁명분자,반당반혁명 종파분자,들로써
관모봉기슭에 잇던 정치범 관리소를 없애게 되면서 거기에 있던 김창봉 ,허봉학 등도 여기에
있다가 화성관리소로 왓다고한다
관모봉 관리소를 없애게 된근원은 6군단을 해산하면서 9군단사령부를 관모봉기슭에 건설하면서
그안의 정치범 관리소를 없애게 되엿다 또한 온성군 종성구의 정치범수용소도 그안에 인민군
담배농장을 건설하면서 인원을 각 정치범 관리소들에 분활 배치햇는데
여기인원중에서 엄중범죄자들이 화성 관리소로 가게 되엿다
6군단 사건마무리하면서 체포된 사건관게자들도 모두 화성으로 옮겨졋는데
당시 그인원들 을 실어나른 사람 이 본인과 혈연관계이다
이때부터 화성의 정치범 관리소는 부피가 커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엿다)
꿱꿱 소래기치며 우리를 보고 머리를 들지말고 손을 올려 머리뒤에 붙이라 하면서 초대소에
들어가더니 족쇄에 묶이운사람들은 그냥 그길로 차에 싣고 들어가고 우리가족은 방바닥에
무릅끓고 앉으라고하더니 이것저것 물어보며 책에다 쓰는것이였습니다
사람4명이오더니 어머니와 누나를 먼저 데려내가고 우리를 데려온 사람들에게
이젠 다 됏다 돌아가도 된다고하자 그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말하면서 나갓습니다
사무실바닥에 혼자앉아잇는데 어떤 보안원이 오더니 나를 데리고 가더니 감방에 가두엇습니다
들어가기전에 입고온 옷들을 다벗기고 거기서 죄수복을 주엇는데 너무커서 마대처럼
너덜거리고 너무 낡아서 다 구멍이 뚫리고 때가 너무껴서 옷처럼 보이지 않앗습니다
그안에는 20살부터 10살까지 남자아이들만 30명잇엇는데 그런반이 6개엿습니다
나는 4반이엿습니다
내가 잇는데는 3구역이라고 햇습니다
새벽에 반장이 기상하고 소리쳐서 다 깨여나 밖에나가 줄을 섯습니다
그때 밖을 보니 량옆이 다 벼랑인데 벼랑에다 동굴을 파고 거기에 기관총을 걸고 군대들이
보초를 섯습니다 내가 거기 잇을 때 벼랑초소를 세여보니 12개가 3구역을 지키고 잇엇습니다
그날부터 가구 만드는 조에서 목수일을 배워주기 시작햇습니다
우리가족은 다갈라져서 아버지는 1구역 ,어머니와 누나는 2구역에 갓는데
1구역 아버지방은 손과발에 족쇄를 차고 잇어야하는 엄중한 죄수구역이고
2구역은 허리굽히고 들어가는 콩크리트 창고인데 계단으로 해서
땅속으로 내려가면서 방들이 잇엇습니다
천정은 살창을 치고 그우에 보초병이 총을메고 보초를 섭니다
2구역은 강제로동을 시키는곳인데 남자들은 벌목과 제재일을하고
(통나무를 판자로 만드느곳)
녀자들은 농사일을 하엿습니다, 3구역은 나이많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 .
그리고 1.2구역의 가족들이엿는데 죄수들을 치료하는진료소도 잇엇습니다
밥은하루 두끼주엇는데 한끼는 감자1개와소금몇알을주고 다른한끼는 통강냉이
삶은것을 한줌주거나 벼겨,강냉이겨를 가루내여 범벅을 만들어서 한덩지씩 주기도 햇고
통밀을 삶은것을 한줌주기도 햇습니다.나는 일을 잘하지못한다고하면서
반장이 자꾸만 절반씩 빼앗아갓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안되엿습니다,
감옥주변에는 풀도 제대로 나지못하게 약을쳐서 배가고파도 풀뜿을데가 없엇습니다,
어쩌다가 빽빽이풀과 고마리풀,도꼬마리풀과 강태나무풀을보면 선생들에게
들키지않게 뿌리까지 다 뽑아서 먹고 나머지는 씹어서 덩지 만들어 숨겻다가
밤에 잘때 몰래 먹엇습니다. 3구역안에사는사람들중에는 산에서 도토리를 잘줏거나
송이버섯을 잘따는사람들은 그래도 산에서 일하면서 칡뿌리,머루,다래,돌배도 먹는데
우리처럼 평양에서 살던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관리소안에서 시키는일만 햇습니다
작년에 관리소에 들어왓을때 몇달동안은 우리가족이 모두 검토기간여서
남들보다 고생을 숱해햇습니다, 일주일에 2번아니면 3번씩 아버지와
우리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하고 여러가지를 물어보앗으며 감시원선생들이
아버지가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하면서 우리가족이보는앞에서
각자몽둥이로 아버지를 때리엿으며 메고잇는총에서 소제대를 뽑아서 때렷습니다
또 어떤때는 전동기에 끼우는 피대를 잘라서 만든 채찍으로 때렷습니다
아버지가 맞아댈때마다 어머니는 기절하엿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하면
선생들은 물한바게쯔를 떠다가 나에게 주면서 엄마에게 부으라고 하기에
나는 무서워서 떨면서 엄마의몸에 물을 부엇습니다,
아버지가 그때마다 소리치면 선생들은 <이새끼. 아직 정신 덜 들엇다>면서
량옆에서 달려들어 아버지의 관절사이에 각자나무를 끼우고 무릅을 밟아대엿습니다,
어떨때는 아버지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여기자료가 다잇다,돈 얼마를 받앗어.안기부요원대라,너희단체를 대라>하면서
때렷습니다,너무 맞아대여 아버지는 이발이 남은것이 없고 입이 터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못하엿습니다,
머리를 다 깍아놧는데 머리가 너무 맞아대여 성성한데가 없엇습니다.
온몸이 상처가 가뜩햇고 제대로 걷지못하니까 선생들이 량옆에서 끌고 다녓습니다
선생들도 때리고 조사나온 양복차림의 사람들도 때렷습니다,
자꾸만 대라고하면 아버지는 그런일이 없다고하면서 선생들에게 대들고
그러면 여러명이 달려들어 거의죽게 때렷습니다
작년겨울 12월 설날며칠앞두고 우리가족을 모두 불러내여
<설전에 네새끼일 끝내야 한다,골아프다,야 이새끼야! 시원히 확 불어버리믄
너두 편안하구 나두 편안할거 아니냐>면서
1구역안에잇는 작업장창고앞 돌배나무에 묶어놓앗습니다,
양복입은 사람이 동복(외투)큰거 걸치구 나와서 앉아잇고 다른 선생들은 옆에
서잇엇는데 양복입은 사람이 다른선생에게 가서 각자 6개를 가져오라구 시켯습니다
그선생이 한쪽에 메고잇던총을 목에다 걸어 가로메더니
(인민군에서 지어총!자세를보고 하는말) 가서 제재소에서 켜둔 각자나무를 가져왓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나에게 하나씩 쥐라고하더니
<이제부터 한마디 물어봐서 말안하면 한사람이 3대씩 힘껏 때리라> 고 하엿습니다
저도 3번이나 9대를 아버지를 때렷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는 그런걸 모른다.나는 당에 떳떳하다> 하면서 겨우겨우 말햇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들은 < 이새끼 이래서는 안되겟다> 하면서 어머니와 누나를 발가벗기더니
마당에 광산에서 쓰는 광차가 4개 잇엇는데 거기에 물을 꼴뚝 ( 가득)채워둔것이 얼어서
곡괭이로 깨더니 (까더니)그안에 들어가라고 하엿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울면서 발악하니까
선생들이 얼음속에다 엄마와누나를 넣고 나오지못하게 꼭대기에서 발로 누르고 잇엇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앞에 다시세우고 아버지의 죄를불게하면
<너희는 집에 갈수잇다> 하면서 시켯습니다, 제대로 말을하지않는다고
꽁꽁언 어머니와 누나의 온몸을 군관혁띠로 때렷습니다
또다른 선생한명은 우리어머니의 두 다리사이를 벌리게하고
<이년 까치둥지 멋잇다>하면서 엄마의 아래도리 털을 당기면서뽑앗습니다,
다른선생은 누나에게 < 야,너 대학다닐때 아새끼들과 (청년들)몇판햇나?>하고물으니까
누나가 울면서 <한번도 그런일이 없습니다>하니까 거짓말한다면서
<벌려라 보자,검열하겟다>하면서 맨땅바닥에 눕게하더니 다리를 하늘공중에 벌리라고하더니
신발신은채로 누나의 아래도리를 후벼대며 그리고는 각자몽둥이로 비비면서
<쌍년 .많이 놀아봣구만 .그래도 거짓말이야>하더니
<거짓말한대가다,너 처벌이다> 하더니 가스라이타를 크게 올리더니
<움직이면 밟아죽인다>하면서 소리치며 누나의밑에 불을 달아놓앗습니다
누나가 악!소리치며 비트니까 선생들은 와하고 재밋다고 하면서 고아댓습니다
그날 우리가족은 모두 죽는줄 알앗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한후 정신을 차리지못하자 그때에야 조사가 끝낫습니다,
그후 10일이지나서 또 가족이모여 조사를 받앗는데 저녁때까지 하다가 생활총화한다면서
(북한에서는 한주일에한번씩 당생활총화,청년동맹생활총화.지맹원총화등 을한다)
다른선생들은 다 가고 두명이 남아서 아버지는 기둥에 묶어놓고
어머니는 나무무지에다가 바줄로 두손을 묶어놓은다음 나는 어머니와함께
묶어놓더니 누나를 보면서 <이년은 이안에 온지 1년 돼 오는데두 아직
고기 좀 붙어잇구나 ,뭘 도적질해 먹구 고기 안빠졋나?>하더니 누나에게
<네년 이상하다.왜 고기가 안빠지는지 검열해봐야겟다>하면서 억지로 옷을 벗겻습니다
아버지가 묶이운곳에 가마니와갈대로 만든 나래가 잇엇는데
(갈대를 엮어서 두루마리처럼 한것임)선생들이 그걸끌어다가 누나에게
그우에 누으라고 하더니 한 선생이 <이간나 .때 호미루 긁을 지경이다.
더러워서 못보겟다>하더니 지하족을 벗고 발사개하나를주면서 광차속에 잇는물에
적셔서 밑을 깨끗이 닦으라고 햇습니다 (자기는 새 발사개를 품에서 꺼내 갈아신엇다고함)
누나가 발사개를 적셔서 닦고 또 닦자 시뻘겋게 되엿습니다
누나가 접어드는 두선생에게 반항하자 누나를 몇대 때리더니
다른 한 선생은 말아피우던 독초꽁초를 (북한군은 권연이 없어 잎담배를 신문지로 말아피움 )
누나의 젖꼭지에 비벼대며 죽여버린다고 하면서 누나를 땅바닥에 쓸어뜨리고
누나의 얼굴우에 엉뎅이를 대고 눌러앉아 두손을 발로 눌럿습니다,
그래도 누나가 발버둥치자 손과발을 따로따로 묶엇습니다
발하나는 아버지가 묶인 기둥에 묶고 다른발하나는 어머니의 몸과 나무무지에 묶고
두손은 기둥과 광차손잡이에 묶어 놓더니 <네간나 ,오늘 걸레 만들겟다>하면서 강간햇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와나에게 다른선생들에게 말하면 너희는 그시간부터 이세상에 없을줄 알라고
윽박질럿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이래도 불지않느냐하면서 이런 독종새끼니까
안기부 밀정한다면서 아버지를풀어 얼음물에 잠그려고 하엿습니다
그때순간에 아버지는 최대의; 힘을 다하여 한 선생의 옆구리에 매달려잇는
총창을 비틀어잡고 자기배에 힘껏 찔러 자살햇습니다,군대들 자동보총에 칼꽃는것을
혁띠에 매달아서 옆구리에 달고다닙니다
칼집채로 박히다보니 아버지주변에 피가 숱해 흘럿습니다
(북한군 AK자동소총에는 육박전을 위한 총창이 있는데 혁띠에 차게끔 되여잇다)
선생들이 급해서 연락해서 의사들이 와서 담가에 싣고 가는데
그때까지는 아버지가 숨이붙어잇다가 가는도중에 사망햇습니다 그때 엄마가
또 기절하면서 신경이돌아 다음날 정신병자병동에 들어가 있다가
어느날 변소칸에서 인분을 세사발되게 먹고 죽었습니다
(그사건으로하여 처녀를강간햇던 군인 두명은 강직처벌되여 다른부대로 갓다고함
그문제로 하여 우에서 검열까지 내려왓으며 관리소내 군인들 사상투쟁회의도 잇엇다고함 )
누나도 잡병이 많이와서 계속 앓앗는데 아버지,엄마가죽은후 머리가돌아 정신이 들락날락햇습니다,
나는 하나남은 누나를 살려보려고 내게 나오는 음식을 몰래몰래숨겨 제재소에 심부름갈때마다
누나의 호실에 던져넣엇습니다 매일저녁 사상개조회의를 햇는데 남자들따로,
녀자들따로 앉히고 공부시키다보니 누나와 나는 마주보며 소리도 내지못하고 울기만햇습니다
누나는 점점 약해져서 정말 귀신처럼 되엿습니다
머리도 뜿어먹개처럼 (마구헝클어짐)깍아놔서 어떨때는 누나를찾기도 힘들엇습니다
평양에 잇을때 우리누나는 너무 고와서 (예뻐서) 화보에도 (잡지)나고
청년문학에도 나고 하엿습니다, 아빠트사람들이 정말 영화배우감이라고
(북한에서는 예쁜여성들 을 영화배우감으로 비유하여 표현한다)
하면서 성격도 조용하고 말이적고 례절이(예의)밝아서
대학에서랑 누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칭찬햇습니다 ,
그러나 감옥에 온후 별의별고생을 다당하고 별의별일을 다 당하면서
누나는 병신이되고 페짝이 (페인,식물인간이름)되엿습니다
그러면서 8월달이 되엿는데 그때부터는 관리소에서는 먹을것이 없어 감자밭에서
감자를캐서 죄수들에게 주엇습니다 ,감자캐는건 녀자들이 호미로 감자를 캐놓으면
남자들이 삼태기에 담아 선생이 지키는곳에 가져다 모아놓으면 소달구지가 와서 실어갓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여 선생들이 모여앉아 감자구워먹는다고 경비서던선생가지 불더미에 간사이
남자죄수 3명이 누나에게 달려들어 강간하는데 누나가 저혼자 죽엇습니다
계속 앓는데다가 며칠동안 먹지못하고 있다보니 감자캐러 나와서 경비선생의
눈을피해 생감자를 정신없이 먹엇는데 그게탈이 난데다가 남자들이 달려드니
너무 혼이나가 정신발작까지 일으킨것입니다,선생들이달려와서는 뻔히 기색을 알면서도
<도적질해 먹으니까 죄만나 죽지>하면서 감자캔줄기로 덮으라고 햇습니다
그리고 남자죄수 3명은 호송선생들이 데려갓습니다
그때나는 감자캐는데 없고 산나물 다듬는조에서 일하다보니 누나가죽은줄 몰랏습니다
계속 안보이기에 선생들에게 누나를 찾아달라고 하면 머리를 때리면서 모른다고만 햇습니다
나와친한 영수가 알려주어서야 나는 누나가죽은줄 알앗습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잇엇는데 사람이 없어지면 관리소가 야단칠텐데 조용하기만햇습니다
며칠동안 비가게속오니 밖에 내보내지않고
감방안에 가둬두기만 하다보니 소식을 알수가없엇습니다,
그게 8월 10일전인데 20일이 다 되여서야 다시감자캐기가 시작되면서 나도 감자캐는데
나갓습니다,밭에먼저 들어간사람들이 밭정리하면서 누나의 시체를 찾앗습니다
관리소에서는 10일그때 죽은걸 처리해야겟으나 그사이 비가 계속오니까
다시 감자캐기할때가서 날라다 처리하려 한것이엿는데 우리담당선생이 그
걸모르고 나를 그만 감자캐기에 내보낸것입니다, 나는 울면서 선생들에게
우리누나 묻어달라고 햇지만 선생들은 가마니에 둘둘 말아 죄수들보고 들라하더니
나를 따라오지못하게하고 그날 화장터에 갓다가 화장해 버렷습니다
관리소안에 화장터가 잇는데 한달에 10명이넘게 화장햇습니다
누나의시체를보니 한손에는 감자줄기가 썩어잇엇고 다른손에는 흙이 잇엇습니다
입안에는 감자썩은것이 흙과 함께 잇엇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입안의 흙과 썩은감자를 파내면서 누나를 안고
우는데 선생들이 달려와 나를 때리면서 반장에게 소리쳐 나를 데려가라하더니
가마니에 말아서 누나를 가져갓습니다
나는 며칠을 몰래울며 보냇습니다
우는것이 선생들에게 들키면 반혁명분자를 동정한다하면서
사상투쟁무대에 세우기때문에 우는것이 들키지 말아야햇습니다
나와제일친한애가 영수인데 내보다 두살 더 먹엇는데
<남자새끼.그만한건 참고 견뎌내라.그리구 잊어버려라.어떻게하나 살아야한다,
통일되면 무슨일이오겟지> 하면서 나를 생각햇습니다
영수네는 할아버지가 전쟁때 악질치안대로 사람들을 많이죽엿는데 월남한것이들켜
가족이모두 중국에가서 숨어잇엇는데 3년만에 잡혀서 여기온지 4년되엿고
아버지는 그때 인차 죽고 어머니는 2년전에 죽엇다고함니다.
형과누나는 소식을 모른다고 햇습니다,
누나가 중국에 잇다고 하면서 자기네가 중국에 잇을때
못먹어 본것이 없다하면서 중국자랑을 많이햇습니다
9월부터 버섯뜿는조를 만들엇는데 나도 거기에 뽑히게 되엿습니다
아직 버섯이 나지않아 먼저 산나물을 뜾기 시작햇는데
한사람이 하루에 두배낭을 꽈 채워야햇습니다, 영수도 함께 다니게 되엿는데
그애는 자꾸만 도망가자고햇습니다
무섭기도하고 길도모르고 선생들이 총을들고 지키는데 어떻게 도망치겟는가고 하자 고사리
뜿는체하면서 저산만 넘으면 된다고 햇습니다, 자기가 3년넘게 여기를 다녀서 잘아는데 어디에
철조망잇고 어디에 구뎅이가잇고 어디에 지뢰묻은것까지 다 안다고햇습니다
산나물 뜾으러 8일다녓는데 풀이라도 실큰먹으니 힘이좀 낫습니다
우리가 도망치기전날인데 그날 영수는 큰 뱀을 잡앗습니다
대가리만 뜿어버리고 절반을 돌로 끊어버리더니 손가락을 배에넣고 밸을 쏟아버리고
껍질채로 우리는 풀뜾는흉내내면서 씹어 먹엇는데 가죽이 너무질겨 잘 넘어가지 않앗습니다
나는 할수없이 가죽을 버리고 몸뚱이만 꿀꺽꿀꺽 넘기엿습니다
영수는 래일은 꼭 뛰자고 햇습니다, 다음날 보슬비가 많이내렷습니다
선생들은 비옷을쓰고 사회사람들이 물건들을 들고와 산나물과 바꾸는데 술과 바꾸어서
저희들끼리 몰켜서서 마시엿습니다 , 감시조장들이 사방에서 보고잇지만 우리는대담하게
봐둔곳으로 기여나갓습니다, 때마침 저쪽에서 지키던 감시조장 한명이 나무꼭대기 올라가
지키다가 비에 나무가젖어 미끄러지면서 떨어졋는데 그바람에 선생들이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못하고 거기로 몰켜갓습니다.
그사이 영수와나는 철조망을 나무가지로 벋치고 그밑으로 넘어가 반대켠
산꼭대기로 정신없이 뛰엿습니다, 영수가 미리한말이 몇사람이 이렇게 도망치면서
아래로 뛰는바람에 잡혀 총에 맞앗다고 하면서 산꼭대기에는 관리소 보초들이
보이기때문에 거기로 도망갈 생각을 못한다고하면서 우리는쪼꼬만하기때문에
잘보이지도 않고 보슬비가 내리면서 안개가껴 쌍안경으로도 잘안보일거라하면서
등잔밑이어둡다면서 거기로 가자고 햇습니다
산꼭대기 거의올라 갓는데 총소리가 여러번 낫습니다
우리가없어진걸 알고 찾기시작한거 같습니다
영수와나는 죽을힘을 다하여 뛰고또 뛰여 산2개를 넘엇습니다
골짜기에 물이흘럿는데 영수는 개들이 혹시 냄새 맡을수 잇으니 물속에 숨자면서
물에서 우리 둘은 저녁 어두어 질때까지 잇엇습니다,
그런데 군대들이나 개들이 오지않앗습니다
영수는 저산만 넘어가면 화성 역전이보인다고 햇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여기가 함경북도 화성군인걸 알앗습니다
관리소에서 칠보산이 가깝다는 소리는들엇지만 살고잇는데가 어데인지 모르고 잇엇습니다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면서 산나물 뜿는사람들이나 소토지(산에 일군 땅에서 부업일하는사람들)
일하는사람들 을 보면 멀리피해서 마을 까지 와서 밤이된다음 영수와나는 유치원을 습격햇습니다,
거기서 속도전가루 한중태기와 강냉이쌀 3키로되게 훔쳐가지고 나와서 한집을
또 털어 옷을 갈아입엇습니다 그집에는 먹을것이 없고 배를삶아서 식장안에 둔것이 잇엇는데
우린 영수와 둘이서 다 먹어버렷습니다, 영수는 기차타면 안된다고하면서 길로가지말고
철길을 따라가자고 햇습니다. 세상에나서 함경북도에는 처음왓는데
청진까지 오는데 정말무섭구 힘들엇습니다
걸어서 생기령이라는곳에까지 왓다가 화물방통타고 청진수성에 갓는데
거기서 철이형을 만나게 되엿습니다(중국에 같이온 청진내기아이18살)
철이형은 자기혼자서 중국에 7번이나갓다왓고 중국에 친척이랑 아는
사람이랑 많다고하면서 자기가 데려다주겟다고햇습니다. 장마당에서 영수와 싸웟는데
영수가 이겻고 또 영수가 먼저 철이형에게 친구하자고 하는바람에 우리는 3명이 친구가 되엿습니다
철이형이 남양교두에서 기다리다가 중국들어가는 석탄방통에붙자고 햇습니다
나와영수는 수영을 할줄 모르기때문에 두만강물이 깊은데 빠지면 죽는다고하면서
정광이(광석 1차가공 분말가루 ,무산광산에서 캔쇠돌 가루내여 청진제철소에서 철생산하는원료임)
중국에 많이 들어가는데 이제 정광방통이 남양역에 들어오면 거기에
동굴을 파고 숨으면 된다고햇습니다,먼저온성에 갓다오자고햇습니다,
돈을 만들자면 장마당큰데가서 한탕해야 되는데
철이와 영수는 그런 도적질에 펄펄 날앗습니다
온성 주원 장마당옆 다리밑에서 자면서 3일동안 장마당에서 쓰리(소매치기)한돈이 3만원이나
되엿습니다 이제 정광방통 들어오면 검사원에게 돈을주고 우리가 파고들어간 데는 쇠꼬쟁이로
찌르지않게끔 약속한답니다. 먼저 남양군당학교 뒤산에올라 중국쪽을 보앗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결핵병원인지 간염병원인지 잇엇는데 거기로 사람들이 많이다녀서
우리는위험해도 벼랑끝에다가 나무로 벋치고 그날밤 거기서 잣는데 영수가 태질하면서
그기둥을 차는바람에 아래로 떨어졋습니다. 그아래에는 철길이지나가고 군대들의
잠복초소도 잇엇는데 악! 소리치며 영수가떨어지자 사방에서
전지불 (후래시)들이 달려오더니 왁작왁작 햇습니다
철이형은 내입을 틀어막으며 빨리 빠져나가야한다면서 나를끌고 반대켠산으로 도망쳣습니다
나는울면서 영수를 찾지못한채 도망쳐야 햇습니다
깊은산속에서 나는 영수를 부르고 또부르며 울엇습니다
억울하게 아버지,어머니.누나를 관리소에서 빼앗기고 죽으려고 할때도 영수가 없엇으면
나도 죽엇을것인데 지금까지 영수때문에 살아남앗는데
이제는 내 친형이고 형제인 영수마저 죽엇으니 어떻게 합니까
불쌍한 영수는 이렇게 두만강을 앞에놓고 죽엇습니다
그다음날부터 영수가죽은 주변의 불룩한 웅뎅이와 묘지는
다뚜져보앗지만 끝내 영수의 시체를차지못햇습니다
그렇게 4일이지나서 철이형과나는 중국들어오는정광방통에 숨어서
10월5일날 중국안도라는곳에 도착햇습니다, 안도에 잇는철이형 친척은
돈 350원주더니 집에들여놓지않앗습니다
거기서 뻐스를 태워줫는데 목단강나가는차라고햇습니다
철이형과나는 목단강에 7일날도착햇다가 다시버스를타고 철이형이
아는사람의 도움으로 천진에 오게되엿습니다.북경에서는위험하기때문에 천진에서
기차를타던지버스를타라고 그래서 먼데 안쪽으로들어가라면서
철이형이아는사람이 알려주엇습니다
조선사람식당에서 밥먹고 나오는데 이렇게 한국에서온 기자삼춘을 만나게되엿습니다
지금도 눈앞에서 아버지,어머니,누나,영수의모습이 사라지지않습니다
저는지금 이팝에 고기를 배불리 먹고잇습니다,먹으면서 항상 생가합니다
나는크면 꼭 복수하고야말겟습니다
아직은내가 어려서 잘모르지만 중국에와서
남조선영화도 많이보앗고 남조선사람도 보앗습니다
기자삼춘이랑 여기고마운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알게 되엿습니다
저는크면 꼭 죽은 아버지,어머니,누나,영수의 복수를 할것입니다
기자삼춘이 편지를쓰라고해서 지금 쓰는 이편지가 남조선사람들에게
전달된다고 하니 아버지.엄마.누나생각이 더 나면서 울음뿐에 나오지않습니다
= 받은 글 =
'친구님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성산 (0) | 2008.10.13 |
---|---|
순한 마음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세요 (0) | 2008.10.13 |
사람이 향기나는 시간 (0) | 2008.10.10 |
그리우면,달려가야겠지.. (0) | 2008.10.08 |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 (0) | 2008.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