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이 주로 입주하는 사무실 대여업체 입구. |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고용 시장의 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벌써 기업에선 인력감축,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실직자가 음식점 창업 등에 나섰듯이 내년엔 ‘1인 기업’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인 기업은 사장이 생산·관리·마케팅 등 모든 걸 책임지는 형태다. 1인 기업 창업은 비용이 적게 들어 망했을 때의 리스크(위험)를 줄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인터넷이 더 대중화됐고 장소 대여 업체 등 지원시설도 많이 보완이 됐다. 정부도 최저자본금 제도를 없애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1인 기업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상훈(45) 작은가게연구소장은 1999년 직원 7명으로 창업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직원들이 하나둘 나가면서 2004년 본의 아니게 1인 기업이 됐다. 1인 기업은 독립적인 수익 모델을 갖고 혼자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법인을 설립했는지 프리랜서로 일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심 소장 같은 경우는 지식 콘텐츠를 다루기 때문에 ‘1인 지식기업’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창업 컨설팅을 주로 하던 심 소장은 1년 전부터 서평을 인터넷으로 올리는 책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심 소장은 “조직이 정해준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게 1인 기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심 소장은 기존 자신의 수익 모델인 컨설팅, 강연에 책 칼럼 쓰기가 추가됐고 이에 더해 출판 컨설팅에도 도전하고 있다.
1인 지식기업 급성장… 연평균 4.5% 증가
내년부턴 온라인으로도 창업신청 가능
최근 심 소장과 같은 1인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현재 1인 기업은 128만1177개에 달한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1인 기업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2000년(115만8822개)보다 12만2955개(10.6%)가 늘어난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수(약 320만개)의 40%를 차지하지만 전체 고용 인력(약 2200만명)의 5.8%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1인 지식기업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의 1인 지식기업은 지난 2006년 기준 45만명으로 2003~2006년 연평균 4.5% 증가했다. 이는 1인 기업 중 제조업(2.6%)·전통서비스업(1.6%)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수치로는 같은 기간 39만개에서 45만개로 6만개가 늘었다.
정부는 2000년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처음 1인 기업 육성의 의지를 보였다. 이 법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발기인이 1명이어도 되고 자본금이 5000만원에 미치지 못해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최저자본금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상법상 주당 최저금액인 100원만 가지고도 1인 기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5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최저 자본금 폐지뿐만 아니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창업이 가능한 ‘재택창업시스템’을 내년 말부터 시범 도입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중기청 “5년간 1인 기업 18만개 육성할 것”
내년 예산 280억 신설하고 지원센터도 운영
1인 기업 육성의 실무를 맡은 곳은 중소기업청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11월 5일 서울 반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제1회 1인 지식서비스기업 성공 포럼’을 주최했다. 그 자리에서 오세헌 중소기업청 중소서비스기업과장은 “2013년까지 1인 지식기업 5만개, 프리랜서 일자리 13만개 등 18만개의 1인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에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창업할 수 있는 아이디어 상업화에 250억원, 1인 지식기업 창업 지원에 30억원을 새롭게 편성했다. 또 세무 신고, 법률계약서 작성 등에서 생기는 1인 기업의 애로를 줄이기 위해 ‘1인 기업 지원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1인 기업 창업 붐이 일어나면서 2000년 이후 4년 만에 실업률이 절반으로 줄기도 했다”며 “고학력 청년 실업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인 기업가들은 자신의 주요 업무를 빼고는 나머지는 외주를 주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1인 기업 1세대로 분류되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구본형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장 등이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있는 대표적 1인 기업가들이다. 이들은 저술 활동을 하면서 강연 등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
공병호 소장은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거쳐 지난 2001년 1인 기업인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세웠다. 공 소장이 들고 나온 ‘자기경영’이란 개념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대표적인 성공 키워드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공 소장은 2004년 발간한 ‘10년 후, 한국’이 발간 5개월 만에 30만부가 팔렸고, 2005년의 ‘공병호의 10년 후 세계’는 40만부가 팔리는 등 인기 저술가로 자리잡았다. 공 소장은 저술 활동 외에도 강연, 기고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구본형 소장은 ‘변화경영’이란 키워드를 만들어냈다. 구 소장은 한국IBM에서 20여년간 컨설턴트로 지내다 2000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를 차렸다. 당시 이미 ‘익숙한 것과의 이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등 10만~20만부가 팔렸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였다.
구 소장의 메시지는 ‘낡은 기득권이나 고정된 질서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변화를 추구하자’였다. 구 소장은 자신의 글을 실천하듯이 1인 기업을 차렸다.
컨설턴트·디자이너·쇼핑몰… 분야 확산
연령도 40~50대 중심서 20~30대로 낮아져
초기엔 이처럼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비즈니스가 1인 지식기업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2~2003년 즈음부터는 1인 출판사가 확산됐다. 출판사는 구청에 신고만 하면 될 정도로 창업 절차가 쉽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컨설턴트, 프로그래머, 저널리스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콘텐츠 제작자, 온라인쇼핑몰 등으로 1인 기업의 분야가 확산되고 있다. 1인 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1인 기업가를 보조할 수 있는 외주(아웃소싱) 시장의 시장이 필수적인데, 국내의 아웃소싱 시장은 2005년 98조원에서 작년 120조원으로 22% 성장했다. 또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혼자 일을 해도 은행일 등 잡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아도 되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한편 젊은층의 전문프리랜서 선호도도 높다. 올해 취업전문회사 리쿠르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문프리랜서가 31.9%로 대학생 선호도 1위 직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작년 ‘한국의 1인 주식회사’란 책을 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1인 기업가의 나이도 40~50대에서 20~30대로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연소득 3000만~5000만원이 주류
절반이 “만족한다”… 사회적 대우엔 “불만”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가 최근 1인 지식기업인 7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감이 있을 때 월 평균 수익은 약 530만원으로 일반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수익이 높았다. 작년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367만5000원이다. 하지만 일감이 없을 때를 고려하면 소득이 그다지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연소득은 3000만~5000만원이 38.5%로 가장 많았다.
또 활동 만족도는 ‘만족한다’가 48.8%, ‘불만족한다’가 12.6%로 압도적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대우 만족도는 ‘만족한다’가 12.6%, ‘불만족한다’가 52.8%로 불만이 많았다. 또한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비율은 51.1%, 산재보험 수혜자는 7.4%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는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실 임대 등 지원업체 시장도 확대
일거리 연결해주는 중개업체들도 성업
한편 1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업체들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1인 기업을 위해 사무실이나 회의 장소를 빌려주는 장소 대여업이 늘어나고 있다. 1인 기업 창업을 위해 처음부터 오피스텔 등을 사무실로 빌리면 월 100만~200만원의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1인 기업 전용 대여 사무실을 이용하면 공간은 적지만 1인당 월 20만~60만원에 해결된다. 여기엔 냉난방료, 전기료 등도 포함된다. 전화 응대, 비서 서비스 등을 신청하면 월 10만~20만원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르호봇이다. 르호봇은 1998년 설립돼 소규모 업체에 사무실 공간 등을 빌려주던 곳이다. 르호봇 관계자는 “최근 8~10개월 전부터 1인 기업이 확산되는 조짐이 보여 1인용 사무실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호봇은 강남·시청 등 수도권과 지방에 20개의 센터를 두고 680여개의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다. 오피스텔은 1~2년 단위로 월세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지만 공간 임대 업체는 하루 단위의 계약도 하고 있어 편리하다. 업계는 이같이 1인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센터가 서울 시내에만 200여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국계인 리저스코리아, 피벗포인트, TEC(더 이규제큐티브 센터) 등도 서울 중심가 빌딩의 1~2개 층을 통째로 빌려 개인 사무실 임대 서비스를 하고 있다.
민들레영토, 토즈와 같은 세미나실 대여 업체나 북카페 등도 1인 지식기업가들의 주 활동 무대다. 일정한 사무실이 없는 경우에 회의·프레젠테이션 등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1인 기업을 위한 이랜서() 등 업무중개기업도 성업 중이다. 업무중개기업을 이용하면 1인 기업가가 일감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랜서는 최근 몇 년 사이 회원 수와 중개 건수가 매년 2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랜서는 회원만 30만명 이상, 중개 건수가 4250여건에 이른다.
| 인터뷰 | 창업전문가 심상훈 작은가게연구소장
“초기에는 고정수입 없을 수도… 가족 동의 필수
하루 25시간 일만 생각하면서도 즐거워야 성공”
지난 11월 11일 창업 전문가 심상훈 작은가게연구소장을 만나 1인 기업을 설립·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심 소장은 “1인 기업은 매출을 올릴 자신만 있다면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으나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동의를 가장 먼저 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왜 1인 기업으로 시작해야 하나. “창업을 할 때 처음부터 직원을 두면 고정비용이 들어간다. 창업 초기엔 몸집을 가볍게 하는 게 중요하다.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구력을 가지고 마라톤 경기를 뛰듯이 일을 하려면 1인 기업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어떻게 시작하나. “우선 가족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게 가장 어렵다. 아내와 가족에게 최소 1~3년은 1원 한 푼 가져다 줄 수 없지만 믿고 따라와 준다면 그 이후에는 비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다니는 게 낫다.”
사업자 등록이나 법인 설립을 하는 게 좋나. “매출이 생긴 후에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게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돈으로 연결이 안 되면 1인 기업을 할 수 없다.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주지 않는 아이디어는 사업으로 연결될 수 없다.”
1인 기업이 가능한 사업 아이템은. “아웃소싱이 확실히 가능한 업종이 적합하다. 혼자 못하는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컨설팅·출판 등이 있다. 앞으로 지식 노동자는 1인 기업의 형태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지식이란 학벌과 관계없이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지식을 가리킨다.”
1인 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직원은 8시간 생각하지만 사장은 24시간 아니 25시간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하는 동시에 그 일을 즐겨야 한다. 처음엔 고정된 수입이 없으니 굶을 각오도 해야 한다. 때문에 가족들의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스스로를 통제·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1인 기업 중소기업청은 1인 기업을 프리랜서, 개인사업자, 주식회사(자본총액 5억원 미만) 또는 유한회사 형태의 법인으로 대표자를 포함해 종사자가 1명인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1983년 미국의 경영학자 톰 피터스가 ‘프로페셔널 서비스 기업(Professional Service Firm)’이란 명칭으로 1인 기업의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톰 피터스는 ‘브랜드 유(Brand U·당신을 브랜드화한다)’ ‘나 주식회사(Me Inc)’로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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