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선 위험자산 선호"…주식·부동산 거래량 증가
금리 낮아지면 가계 이자소득 줄고 연금수령액도 축소
당분간 저금리 기조 지속…연말 이후 금리 상승할 수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4년 만에 최저(2.25%)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도 속속 인하되고 있어 예금을 해도 물가상승률을 빼면 사실상 남는 이자가 없는 ‘실질금리 제로(0)’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만약 한은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리면 은행 예금의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예금 이자 등 금융소득에 의존하는 은퇴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다만 올해 남은 기간 경기회복세가 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중앙은행이 올 10월 양적완화를 끝낼 예정이어서 금리가 바닥을 찍고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가 부동산과 주식시장 부양에 나선 만큼 ‘실질금리 제로’ 국면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할 때 유동성이 추가로 풀리면 나중에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출구전략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저금리 시대 장기화…“주식·부동산 등 위험자산 선호도 높아져”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년 미만 정기예금금리는 2008년 초 6%에 달했지만 올 6월 기준 2.55%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시중은행들은 이달 14일 기준금리 인하분을 반영해 최근 두 달 사이 예금금리를 0.2~0.3%포인트 낮춘 상태라 현재는 예금금리가 2% 초반 수준이다. 반면 최근 4개월동안 월별 물가상승률은 1.5~1.7% 수준이어서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질금리는 제로에 가깝다.
예금으로 자산을 불리기 어려워지면 시중 자금은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으로 움직일 전망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달부터 감지되고 있다. 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주식 거래대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6.51%, 2.53% 줄었지만 지난달 유가증권·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137조8921억원으로 6월보다 36조원 늘었고 작년 12월보다는 46조원 증가했다.
아파트 거래량도 최근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아파트 거래량(신고일)은 5677건으로 6월보다 484건 많았고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거래량은 1086건으로 작년 7월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하 효과까지 더해지면 주식과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더 커질 전망이다. 김현욱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보다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저금리 리스크’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장 경기 회복세가 미약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지 않지만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한은이 시의적절한 출구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노무라증권은 "시장에 저금리 장기화 기대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유형의 신용 버블을 만드는 일"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 연금 가입자, 금리 낮아지면 수입감소 불가피
기준금리가 낮아지면서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자부담은 줄게 됐지만 이자를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나 연금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은 수입이 줄어들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의 은행 예금자산은 올 6월말 기준 524조1791억원이어서 예금금리가 0.25%포인트 내려간다고 가정하면 가계의 이자소득은 연간 1조3105억원 감소하게 된다.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은행이나 보험사 등이 연금상품 가입자에게 주는 금액도 적어질 수 있다. 이들 금융사는 가입자가 매달 내는 돈을 운용해 나중에 되돌려 주는데 시장금리가 낮아지면 자산운용 수익률도 대체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와 함께 저축성보험상품의 공시이율(금리연동형 보험상품에 적용하는 이율)도 하락 추세다. 삼성생명(032830) (107,000원▲ 500 0.47%)은 저축성보험 공시이율을 올 6월 3.95%에서 이달 초 3.9%로 내렸고 한화생명도 이 기간에 공시이율을 3.92%에서3.87%로 인하했다. 공시이율이 줄면 보험 가입자에게 주는 보험금도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기조에서 은퇴자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려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연구부장은 “현행 퇴직급여 체계가 퇴직금 제도와 퇴직연금 제도로 이원화 돼 있어 퇴직연금 가입률이 저조하다”며 “퇴직금제도를 단계적으로 퇴직연금제로 일원화하고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완화하는 등 자산운용상 규제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 양적완화 10월 종료…연말 이후 금리 오를듯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가 최소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연말 이후에는 금리가 바닥을 찍고 올라갈 것이란 의견이 많다.
박혁수 대신경제연구소 팀장은 “2분기 경제지표가 안 좋았던 것은 소프트패치(경기 회복기의 일시적 둔화)로 보는데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안을 고려하면 3분기 경제 지표는 회복될 것으로 본다”며 “세월호 사고 충격도 회복되면 현재 금리 수준은 바닥이기 때문에 연말에는 금리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10월에 양적완화를 종료하면 금리인상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한국의 기준금리도 덩달아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소영 한양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우리 시장금리는 미국 금리와 디커플링(비동조화)이 나타났는데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향후 시장금리는 세계적인 흐름과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금리가 양적완화 이후 오르면 우리나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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