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송파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 속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강남 부럽지 않은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했던 곳이 또 한번 변했다. 아니 순식간에 마을이 뒤집혔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길이 언제 꺼질지 몰라 불안해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차량을 운전할 때 속도를 내지도 못하는 불안한 마을. 바로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 일대 마을들의 이야기다.
사실 석촌호수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서울 송파구 석촌·방이·잠실·송파동 등 4곳은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롯데호텔 정면 송파대로 건너편 대지에 지상 123층, 높이 550m 규모로 짓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송파구의 제2전성기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다른 지역이 부러워할 만큼 교통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데다 추가로 지하철 9호선까지 건설되고 있다. 현재 석촌호수 일대 마을들에는 2호선 잠실역, 8호선 잠실·석촌·송파·몽촌토성역, 5호선 방이역 등의 지하철 노선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개발이 이뤄진 탓일까. 최근 3개월 사이 석촌호수 인근 마을에 대형 싱크홀 6곳과 동공(洞空·빈 공간) 7개가 발생했다. 더욱이 싱크홀 발생 초기에는 석촌호수 인근에서만 발견됐지만 지금은 점차 싱크홀 발견 범위가 넓어지는 등 시민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사고가 없었지만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나 건물 등의 기반시설 아래서 싱크홀이 발생하면 끔찍한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조용했던 이곳에 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됐는지, 석촌호수 일대 마을이 간직한 역사를 통해 알아봤다.
◆ '섬'이었던 잠실, '강'이었던 석촌호수
우선 지금의 송파지역은 잠실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실은 원래 지금의 광진구 자양동 쪽에 붙어있는 반도형의 땅이었지만, 조선시대 때 큰 비가 내려 섬이 됐다. < 동국여지비고 > 산천조의 기록을 보면 '한강물이 넘쳐서 지류가 생겼는데 이 샛강을 신천(新川)이라고 한다. 가물면 걸어서 건널 수 있고 물이 불면 두 줄기 강물이 되어 저자도 아래에서 한 줄기로 합쳐진다'는 기록이 나온다.
잠실이 다시 육지가 된 건 1971년 잠실 공유수면 매립사업 이후부터다. 60년대 후반부터 반포지구, 구의동지구 등 한강 주변이 매립돼 엄청난 교환가치를 가진 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마지막이자 가장 큰 매립지가 잠실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잠실의 북쪽 모래사장과 새내마을 일부를 침수시켜 샛강인 신천강의 너비를 확장하고, 본류인 송파강을 땅으로 메우기로 했다. 공사 당시 광진교 쪽에서 흘러오는 한강을 신천강으로만 흐르게 하기 위해 잠실섬의 동북부지역을 깎아 물이 흐르게 하고, 송파강 초입부를 막아 물길을 끊었다.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의 흔적으로 남은 게 지금의 석촌호수다.
◆ 'IN 서울'로 취급 받지 못하던 변두리 송파의 변신
이 같은 개발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송파일대는 변두리 이미지가 강했다. 송파구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까지 경기 광주군 중대면과 구천면에 속했고, 1963년 일부지역이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됐다. 이후 강남구, 강동구로 이리저리 옮겨 속하다 1988년에 이르러서야 잠실, 신천지역 등을 흡수하고 18개 행정동을 갖춘 자치구로 승격된 그저 그런 꼬마 동네에 불과했다.
1980년까지만 해도 홍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송파 대다수 지역이 침수되고 이재민이 발생했음에도 서울시의 관리와 통제가 미치지 않는, 다소 불행한 '사각지대'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면서부터 송파는 바뀌기 시작했다. 올림픽주경기장, 잠실실내체육관 등 각종 스포츠시설과 올림픽공원, 롯데월드 등 대형 문화·위락시설 및 종합유통시설 등이 연이어 들어서고, 주거지역과 교통을 포함한 대대적인 도시정비가 시행되면서 송파구는 급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서 비롯된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주거인구는 물론 송파구를 지나는 유동인구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에 상권도 큰 폭으로 확장됐다. 아울러 사회·문화간접자본 확충, 부동산가격 상승 등으로 점차 축적된 지역의 부(富)는 안정화 단계로 접어든 지역민들의 정서와 잘 어우러져 지금의 송파를 만들었다. 서울의 문화, 경제, 복지, 교육 전반을 주도하는 으뜸 지역구로 탈바꿈한 것이다.
◆ 모래·자갈로 만들어진 약한 송파… 무리한 개발에 '그만'
하지만 너무 과했던 것일까.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최근 3개월 사이 송파구 일대에서 발견된 싱크홀 6곳과 동공 7개가 이를 증명한다. 싱크홀과 동공이 발견된 지점은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과는 500m, 초고층 빌딩인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과는 2km 이내에 위치한 곳이다. 또한 국내 어디에서도 이곳처럼 집중적으로 싱크홀이 나타난 경우가 없었다는 점에서 개발과의 연계성을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송파구 석촌호수 일대는 한강을 개발하며, 모래톱을 정리하고 매립한 곳으로 처음부터 연약한 지반이 문제라는 것이다. 때문에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 인근과 석촌동 석촌지하차도에서 발견된 싱크홀 및 동공은 흙, 자갈, 모래 등으로 구성된 연약지반에서 대형 굴착공사를 진행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싱크홀은 시공사 측에서 실드공법(원통형 기계를 회전시켜 지반을 수평방향으로 부수면서 터널을 만드는 공법)을 진행하면서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강작업(틈새 메우기)을 했어야 했는데 그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토목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강암과 편마암 등 단단한 암석이 아닌 흙, 모래 등으로 이뤄진 연약한 지반과 강을 매립한 석촌호수 인근에 너무 많은 공사와 개발이 이뤄져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사실 석촌호수 일대가 이만큼 개발되면서도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운이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반이 약한 석촌·방이·잠실·송파동 일대는 더 이상 무리한 공사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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