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찍기 직전 1000만원 올리는 '집주인'
#서울 양천구 목동 소재 아파트를 전세로 사는 김모씨(45)는 계약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아예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같은 단지에 시세보다 1500만원 정도 싸게 나온 급매물을 찾았다. 김씨는 조금 무리하더라도 대출을 통해 매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계약금을 들고 집주인과 마주앉은 김씨는 어이 없는 얘길 들었다. 도장찍기 직전 집주인이 갑자기 10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한 것. 지금도 무리해 대출을 받기로 했는데 1000만원을 더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를 세놓던 전모씨(53)는 아예 집을 처분하기 위해 시세보다 2000만원 가량 싸게 내놨다. 얼마되지 않아 산다는 수요자가 나타나자 전씨는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1000만원 더 올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날 매수자 측에서 추가비용을 부담한다는 답변이 왔고 "지금은 팔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지인의 말을 들은 전씨는 500만원을 더 올려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밝힌 후 매물을 거둬들였다.
정부의 '9·1 부동산대책' 등으로 인한 집값 상승 기대감과 가을 이사철까지 맞물리면서 집주인들의 호가 올리기가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매수자가 나타나면 당초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때에 따라선 아예 매물을 거둬들이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
23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12% 상승했다. 수도권(0.14%)은 9주 연속 호가가 뛰었다. 서울(0.15%)도 6주 연속 가격이 올랐다.
서울 양천구 목동 D공인중개소 대표는 "불과 1~2개월 전엔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간간히 이뤄졌지만 지금은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거나 아예 매물을 회수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부동산연구팀장은 "정부가 강력한 규제완화 방침을 밝히는 만큼 앞으로 집값이 뛰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올린 호가대로 거래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L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요즘 시장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여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린다"며 "하지만 정작 매수자들은 부담을 느끼면서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KB국민은행 시세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시세가 5억8250만~6억2750만원이던 양천구 목동7단지 66㎡(이하 전용면적)의 경우 이달 들어 호가가 6억4000만원에 형성됐다.
현장에선 동일 면적을 집주인이 7억5000만원까지 부르기도 한다는 게 지역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서초구 반포동 한신3차 108㎡의 평균 호가도 지난 7월 10억8000만원에서 이달 현재 11억3500만원으로 두 달새 5500만원이나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가을 이사철이 지나면 이 같은 호가 상승세도 꺾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임희열 KB국민은행 부동산정보팀장은 "현재의 호가 상승 추세는 정부의 규제완화와 가을이사철이 맞물리면서 반등하는 현상일 뿐, 세계경제를 비롯한 경기 자체가 되살아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오를 순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