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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칫돈 생긴 기쁨도 잠시.. 자식들 욕심에 슬퍼지네요

여행가/허기성 2014. 10. 16. 20:20

뭉칫돈 생긴 기쁨도 잠시.. 자식들 욕심에 슬퍼지네요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달아난다고들 합니다.

현실적 고난 앞에서는 아무리 끈끈하던 애정과 신뢰도 휘발해버리기 십상이라는 뜻일 텐데요. 그러나 오늘 모실 손님 한 분은 행복에 관한 또 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계시네요.

궁핍한 세월을 용케 잘 건너온 한 가정에, 뜻밖의 횡재가 문을 두드린다면? 과연 우리 가정의 행복은 돈의 시험대 위를 무사히 통과할 만큼 굳건할까요? 홍 여사 드림

 

저희는 결혼한 지 40년이 넘은 육십대 부부입니다.

철없던 젊은 시절에는 남편에 대한 불만도 많았습니다. 근검절약하다 못해 자린고비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돈을 아끼는 사람이라 저도 손톱을 썰어가며 눈물겨운 살림살이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편 말마따나 노년에는 우리가 남들보다 좀 나으려니 하고 견뎠는데, 최근까지도 궁색한 살림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네요.

남들은 아파트다 상가다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볼 때 우리 집 양반은 그저 땅에다 묻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충청도 고향 인근의 대지를 사들였고, 그게 우리 부부에게는 두고두고 애물단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분도 쉽지 않고 임대료 한 푼 안 나오는 땅에다가 자산을 묻어두고는 한정된 저축을 곶감 빼먹듯 빼먹으며 버텨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몇 년 전쯤, 거짓말같이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시세가 급등하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더군요. 시세 차익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기대였습니다. 실로 몇 년 만에, 작자가 나서서 흥정이 오가기 시작하니, 저희 부부는 그야말로 꿈에 부풀었습니다. 자식들한테 끝까지 손 안 벌리고 노년을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꿈이었지요.

하지만 정작 거래가 성사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더군요. 매번 두 아들이 강력히 반대해서 파의가 되곤 했습니다. 저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설명을 하면서, 조금만 더 버티면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더군요. 자식들 말을 따르기는 했지만, 솔직히 서운한 생각도 들더군요. 아니할 말로 저희가 생활비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면서 늙은 부모한테 조금만 참고 버티라는 소리가 잘도 나오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마침내 거래가 성사되었고 저희 부부도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남편이 그 돈을 저한테 맡기더군요. 뭐든 장만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제라도 장만하라면서요. 참 감개무량했습니다. 70이 다 돼서야 남편 허락하에 당당히 큰돈(?)을 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고심 끝에 저는 고물이 다 된 가전제품들을 새것으로 들이고 평생 못 가져본 침대와 소파만큼은 이참에 장만하기로 작정했지요. 부부가 나란히 가구며 가전제품을 보러 다니자니, 나이가 부끄러울 정도로 가슴이 다 설레더군요.

저희 부부의 생활에도 드디어 숨구멍이 트인 것을 알고 형제들이나 친구들도 다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무조건 아끼지만 말고 부부가 여행도 다니고 좋은 음식, 좋은 옷도 입어가며 재미나게 지내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아들딸의 반응입니다. 한마디로, 목돈이 제 손에서 부서져 나갈까 봐 전전긍긍이네요. 딸은 저한테 성급하게 가구 들여놓지 말라는 소리부터 하더군요. 침대 안 써 본 사람은 도리어 허리 아프다고 하고, 소파는 지금 저희 집에 어울리지를 않는다고요. 그리고 냉장고도 저희 쓰던 것을 갖다 쓰며 조금 더 버텨보랍니다. 얼마 안 있으면 오빠네와 합칠지도 모른다고요. 정작 제 오빠 내외는 떡 줄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소리를 그렇게 하더군요.

그깟(?) 몇 백만원조차 못 쓰게 하려는 속셈은 물론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딸의 오래된 마음보가 괘씸했습니다. 엄마 아버지는 언제나 낡은 것, 오래된 것 고쳐 쓰며 하루하루 궁상맞게 버티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인 줄 아는 그 마음요. 우리 엄마도 좋은 거 한번 써보고, 아버지도 원 없이 기분 한번 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째서 안 드는 것일까요?

아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누군가한테 속아서 돈을 축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입니다. 목돈 부서뜨리지 말고 당장 인기 있는 아파트를 사서 세를 놓자고 하지를 않나, 저희하고 상의 없이는 아무것도 사지 말고, 아무 투자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네요. 늙은 부모가 미덥잖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이건 마치 저희 돈을 맡겨놓은 듯이 구니….

그뿐이 아니라, 그 돈이 저한테로 안 오고 다른 형제한테로 흘러들어 가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는 눈치입니다. 큰놈이 차를 바꾼다는 소리에도, 작은놈이 전세금 올려줘야 한다는 소리에도 전에 없이 제가 다 바늘방석입니다. 보태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혹시라도 내가 보태줬다고 다른 녀석이 오해하면 어쩌나도 싶네요. 겨우 이 정도 돈을 쥐고도 바늘방석 소리가 나오니, 수십 수백억 가진 사람들은 어쩌고들 사는지.

써본 적 없어서 돈 쓸 줄도 모르는 우리 부부, 결국 저희가 바랐던 건 호의호식이 아니라 마음 편한 노후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엄마 아버지 아무 걱정 마시고 세상 구경 잘 하시다 가시라는 자식들의 말. 그런 말을 들으며 살 수 있다면 여전히 헐벗어도 마음 편하겠는데, 어느 한 녀석 그런 말은 없네요.

돈을 조금 쥐어보니 더욱 쓸쓸해지니.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건가요, 아니면 제가 자식들을 잘못 가르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