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빌리신 다고요? 주민번호 알려주세요"
[주민번호 수집 금지 이후 3개월]일선 현장 혼선 계속… 마이핀 이용률도 저조
#지난 주말 영화관 웹사이트를 통해 표를 예매하던 직장인 이민화씨(30·가명)는 '휴대전화 결제' 방식을 선택한 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결제하려면 통신사를 선택하고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함께 주민등록번호 열세자리를 모두 입력해야 했던 것. 신용카드사가 이메일로 보낸 카드사용 내역을 볼 때도 이제는 주민번호 앞자리(생년월일)만 넣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올 가을 가족여행을 위해 지방에서 렌터카를 이용한 최동희씨(51·가명). 예전에도 종종 여행지에서 렌터카를 이용했던 터라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넣어 이용계약서를 작성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바뀐 법 때문에 주민번호를 적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최씨는 렌터카 직원에게 문의를 했지만 직원은 "꼭 안적어도 되지만 당분간은 (주민번호를) 적어주셔야 서로 편하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지난 8월7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전면 금지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선 현장에서는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주민번호 수집이 곳곳에서 이뤄지는가 하면, 수집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 마련이 늦어져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쭉 그렇게 해왔는데…"… 근거없는 주민번호 수집 어쩌나
6일 안전행정부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주민번호 수집과 제공을 해서는 안된다. 주민번호 수집이 가능한 경우는 병원·약국(의료법), 학교(초·중등교육법), 세금납부(소득세법), 부동산거래(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보험(보험업법), 금융거래(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자격증 취득(국가기술자격법), 근로계약(근로기준법) 등이다.
이에 따라 각 부처 등은 계도기간(2015년2월7일까지)에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을 명확히 해 세부 법령과 조항을 만드는 등 추후 조치를 진행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3개 표준약관 주민번호 수집조항을 일괄 개정했고,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경우 주민번호 보존 근거를 아예 삭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곳도 있다. 이씨 사례처럼 휴대전화 소액결제업체(통신과금사업자)가 대표적이다. 휴대폰 소액결제업체들은 법에 따르면 주민번호를 수집, 활용해서는 안되지만 사용자에게 주민번호 수집 동의를 받고 전체 번호로 본인인증을 해야 결제할 수 있는 예전 시스템을 그대로 운용 중이다.
휴대폰 소액결제업체들은 지난해 2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라 주민번호 수집에 제한을 받게 됐지만, 당시 방송통신위원회가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라 주민번호를 수집가능토록 했다. 문제는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상 법적 근거가 없는 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들 업체가 계속 수집을 하려면 별도의 법을 만들어야한다는 것.
정무위원회 소속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휴대폰 소액결제 업체들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데 정부 부처가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체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한국전화결제산업협회 관계자는 "전화결제산업 특성상 사기결제 피해 등을 고려하면 주민번호 수집이 필수"라며 "정부는 계도기간 내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는데, 주민번호를 기존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방통위와 금융위에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한편 다른 대책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수집 기준 탓에 실제 주민번호 수집이 합법인데도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있다. 병원에서는 전화와 인터넷 예약이 아닌 대면 접수의 경우 보험 등의 문제로 주민번호 전체를 수집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들 중에는 이를 따져 물으며 주민번호 제공을 거부하는 등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보인다.
◇마이핀 이용률 2%…사업장 36곳만 도입
정부가 오프라인 매장 등에서 주민번호 대체 수단으로 본인을 식별할 수 있도록 마련한 13자리 무작위 번호 '마이핀' 이용률도 저조하다.
법 시행 3개월이 지난 지금 마이핀 발급 건수는 111만건. 이 중 실제 한번이라도 이용한 적이 있는 이용률은 2~3% 수준이다. 마이핀 시스템을 도입한 사업장은 마트, 항공사, 콜센터 등 36곳에 불과하다. 마이핀을 이용자가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사업장에서 관련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부 관계자는 "마이핀은 휴대폰 번호, 생년월일 등 다양한 본인 인증 수단 중에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만든 것으로 주민번호 대체 수단 중에 하나"라며 "이용의 편의성이 알려지면 이용이 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안행부, 방통위, 금융위, 복지부, 경찰 등 관련 부처 및 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개인정보보호 합동점검단을 통해 주민번호 수집 금지 여부를 관리 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점검단 14명이 돌아가면서 산업 및 업종별로 나눠 점검하는 수준에 불과해 380만개가 넘는 개인정보처리사업자를 들여다보니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계도기간이기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없고, 기획검사 형태로 분야별로 점검을 나가면서 위반 시에는 설명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있다"며 "계도기간 홍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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