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20만 그릇 보시’ 착한 짜장면 만드는 스님 사연은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착한 스님 짜장'이라는 문구가 있는 조리복을 입은 한 남성이 2m에 가까운 주걱으로 대형 솥 안을 휘젓고 있다. 그 안에는 면이 가득 들어 있다. 까까머리에 당당한 체격, 한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풍모의 운천 스님(전북 남원 선원사 주지·52)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양보다 1.5배, 곱빼기로 준비해야 합니다. 별식이라 그런지 더 잘 드시는 것 같습니다."
전날 남원에서 이곳을 찾은 운천 스님은 오전 8시부터 취사반에서 일하는 교도소 수용자 10여명과 짜장면 2300명분을 내놓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지 수용자는 1000여명이지만 '바깥 음식', 특히 짜장면을 좋아하는 수용자들의 식성을 감안해 넉넉하게 준비했다. 옆에 있던 한 수용자는 "짜장면 생각만 해도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며 "아침부터 모두 들떠 있다"고 했다.
운천 스님은 입으로는 요리팀에게 지시하고, 손으로는 면을 뽑아내느라 바빴다. 이날 짜장면에 들어갈 재료는 20㎏ 밀가루 열다섯 부대에 양배추와 배추만 각각 40㎏에 이른다. 잠시 쉬는 틈과 준비를 마친 뒤 마침내 허리를 편 '짜장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엄청난 양이다.
"이골이 나서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30인분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주문만 있으면 1000명, 2000명분도 뚝딱 내놓을 수 있다."
-조리복에 착한 스님 짜장이라고 씌여 있다.
"짜장 보시(布施·널리 베품)를 하다 건강에 더 좋은 착한 짜장면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짜장면에 설탕과 소금,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표고버섯 멸치 북어 파뿌리 등을 섞어 국물을 우려낸다. 반죽도 하루 정도 숙성 시키고, 야채는 기름으로 볶지 않고 이 국물에 넣어 찌는 것처럼 해서 내놓는다."
-2009년 짜장 보시를 시작한 이후 20만 그릇을 넘어섰는데.
"지난 9월 20만 그릇을 넘겼다. 한해 사회복지시설과 교정시설 등 150여 곳을 돌다보니 짜장면 그릇이 어느새 그만큼 쌓였다."
-며칠 전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희생자를 위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수륙재(水陸齋)에도 참여했다.
"행사 일주일 전 해남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의 주문이 있었다. '점심에 짜장면 500그릇, 저녁에 떡국 300 그릇'. (웃음) 전화 받자마자 두말 않고 하겠다고 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한 행사라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거의 매일 '스님은 배달 중'인데 절집은 누가 지키나.
"하하, 다른 분이 잘 지키신다. 저를 찾는 분들이 대부분 소외되거나 어려운 분들이라 부탁을 외면하기 어렵다. 신도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잘 이해해 주시고 있다."
대형 솥에서 면이 엉키지 않게 큰 주걱을 연신 젓는 스님은 1월 제면기로 면을 뽑다 오른쪽 세 손가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찢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손에는 봉합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재료비만 해도 큰 비용이다. 돈을 받지 않고도 자장면 보시를 할 수 있나.
"돼지감자를 길러 차로 만든 국우차를 판매한 수익금과 친형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버티고 있다. 내게는 짜장면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화두이자 수행의 방편이다. 돈을 생각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톨릭 시설에도 보시한 기록이 있다.
"주문 오면 어디든 간다. 짜장면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데 종교의 차이가 무슨 벽이 되겠나.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베푼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제자로 그게 마땅한 도리다."
-어떻게 짜장 수행을 시작하게 됐나.
"중앙승가대 사회복지과와 파계사 율원을 졸업한 뒤 중국 저장성 사범대로 유학을 갔다. 거기에서 유학생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다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귀국해 선원사 주지를 맡은 뒤 산행길에 나섰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때 짜장면으로 봉사한 처사(處士·남성 불자)와의 만남도 한 계기가 됐다."
-앞으로 계획은.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왔다. 중국 소림사도 한번 가보고 싶고, 그래서 중국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짜장면 보시행을 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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