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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맞아야 애를 낳지

여행가/허기성 2015. 1. 23. 06:22

손발이 맞아야 애를 낳지

“엄마, 나 오늘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요?” 출근 채비를 하는 내게 여섯 살 큰아들이 물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짐짓 차분하게 물었다. “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사실 마음이 진짜 원하는 질문은 ‘왜? 너희 선생님이 때리니?’였다. “그냥, 집에서 파워레인저 보고 싶어서.” 태연한 아이의 표정까지 읽고 마음을 놓았지만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 보육시설에서의 아동 학대사건을 취재하면서 문제가 된 폐쇄회로TV(CCTV) 영상은 애써 외면했다. 온갖 미디어에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덩치 큰 교사가 뺨을 후려치자 나동그라지는 아이, 주먹으로 얼굴 한가운데를 얻어맞아 뒤로 넘어지고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이집에 있을 두 아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마가 되기 전엔 세상에 두려울 게 없었다. 잃을 게 없었으니까. 한데 엄마가 된 지금은 세상만사에 조마조마하다. 돌 된 아들을 두고 얼마 전 복직한 후배는 “가장 안전한 데 있어야 할 심장이 더운 김 모락모락 내며 길거리에 나와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영·유아 부모들은 보건복지부가 ‘안전하고 우수한 어린이집’에 준다는 평가인증을 철석같이 믿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 주변의 직장맘들은 “도대체 어디로 보내야 하느냐” “왜 국공립은 하늘의 별 따기냐”고 아우성이다.


 엄마들 세계에는 ‘어린이집 서열’이 있다. ‘직장>국공립>사회복지단체·법인>민간>가정’ 순서다. 이 가운데 민간·가정 어린이집을 뺀 소위 ‘부모들이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은 전체 4만3000여 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12.7%에 불과하다. 서열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해 보육시설에서 적발된 아동 학대 232건 가운데 대부분이 민간·가정 어린이집에서 벌어졌다. 정부가 2012년 전면 무상보육을 실시하자 가정에 있던 아이들이 줄지어 어린이집으로 나왔다. 폭증한 수요 때문에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실습 과목 하나 이수해 자격증을 딴 보육교사가 쏟아져 나왔다. 문제를 예견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묻혀 버렸다.

 기자는 여섯 살, 네 살 된 두 아들을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다. 억세게 운이 좋았다. 그런데 어린이집 학대사건 취재를 위해 만난 부모들에게 죄지은 기분이 들어 내 아이는 국공립에 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정부는 한 해 10조원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보육에 투자했지만 이를 적재적소에 쓰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9. 몇 년째 제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심하고 맡길 어린이집을 만들 테니 마음 놓고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심장 같은’ 내 아이의 운명을 운에 맡겨야 하는 처지다. 지금 이 나라에서 그 누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