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하객 사는 신랑신부.. 그 심정 알 것 같아요
결혼식 '하객 대행' 알바 체험... 축하해주고 긍정에너지는 '덤'으로
'하객 대행 알바'란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 친구, 직장 동료인 척 연기를 하며 결혼식을 축하해 주는 일이다. 심지어는 부모, 친인척까지도 하객 대행 업체에서 조달하는 결혼식도 있다.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 결혼식에 참석했다. 어떤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 하객석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같은 '업체'에서 조달해 온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하객대행'이라고 검색을 하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업체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가끔 활동하고 있는 하객대행 업체의 경우, 성수기 주말에 많게는 500명까지도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인력이 동원된다고 하니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건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백수처럼 놀고 있을 때였다. 마냥 놀기도 뭐하고 해서 '주말 아르바이트나 좀 알아볼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카페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회원들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어 놀랐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카페에 가입을 하고 가입인사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아무래도 일반 동호회가 아닌 실제 오프라인 아르바이트 모임이다 보니 가입 승인절차가 다른 카페보다는 까다로웠다. 본인 얼굴이 나온 사진도 필수로 등록해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부르는 고객들이 자신의 예식에 참석할 사람들을 사진을 보고 고르기도 한단다. 이런 아르바이트 세계에서도 일단 잘생기고 예쁘면 잘 팔린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가입 인사를 하고 얼마 안 돼 카페를 구경하고 있는데 쪽지가 날아왔다.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데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냐며 아르바이트 하러 나올 수 있냐는 쪽지였다. 그 쪽지가 나의 하객 대행 알바의 시작이었다.
결혼식 하객 알바, 밥도 안 주는 경우 있어
때는 2014년 1월경 추운 겨울이었다. 약속한 예식장 앞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뒤 정장을 입은 또 한 명의 남자가 눈치를 보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카페 회칙에 '절대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인 걸 티내면 안 된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섣불리 하객 알바를 하러 온 사람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쭈뼛거리며 망설이다 용기내서 말을 걸었는데 역시나 나와 같은 하객 알바를 하러 온 사람이었고 그 사람도 오늘 처음 나온 모양이었다. '동지'가 생겼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게 10분여 지났을 무렵 딱 봐도 베테랑으로 보이는 '팀장'이 왔다.
알바 팀장이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봉투를 준다. 그 봉투에는 내 이름이 써 있었고 3만 원씩 들어 있었다. 친구 결혼식에 간 것처럼 축의금 봉투를 내고 식권을 받아 식장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하객 아르바이트를 부르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비싼 식권은 안 주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자신의 예식에 참석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준다. 간혹 밥도 안 주고 요구만 많이 하는 고객들도 있다. 그런 고객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가끔 회자되기도 한다.
고객이 신랑일 경우에는 요구사항이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이 예식장에 들어갈 때 친구인 척 동료인 척 인사해 주고 예식이 끝나면 함께 사진촬영을 해주는 것으로 끝난다. 어쩌다 가끔 축가 이벤트 때 폭죽이나 환호성을 질러 달라거나 좀 더 나가면 장미꽃을 한 송이씩 주고 축가 부를 때 신부에게 전달하는 이벤트에 동참해 달라는 정도다.
하지만 고객이 신부일 경우에는 조금 더 해야 할 일이 많다. 보통 신부가 고객일 경우에는 여성 알바들을 부르는 게 대부분인데 간혹 남녀가 함께 불려 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신부 친구 역할로 예식에 참석해 신부 대기실에서 사진촬영을 했는데 뻘쭘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돈 벌기 위해 알바, 하지만 지금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엔 '왜 본인 예식에 아르바이트생을 부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결혼식을 다니면서 조금씩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이 갈수록 개인시간을 뺏기기 싫어한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아직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남의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이 부부의 연이 되는 것을 축하받는 자리가 아니라 평생 남들 앞에서 한 번은 해야 하는 '쇼'가 돼 버렸다. 이런 현실이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라는 신종 아르바이트를 양성한 것은 아닐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카페 회원들 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고, 동호회처럼 사람을 사귀는 게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좋은 날을 함께 축하해주는 일이 나에게도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난 주말마다 계속 정장을 꺼내 입는다.
내 사람들의 좋은 날, 진실된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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