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분쟁 급증 "10년 뒤를 내다보라"
오는 2020년에는 국내 상속 자산의 규모가 108조 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경제 1, 2세대에게 있어 상속 문제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족 간 분쟁 없는 상속을 위해서는 10년 뒤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상속 플랜을 짜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의 대부 격인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부자가 되는 것은 엄청난 대담성과 수많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막상 부자가 되고 나서 그것을 지키는 데는 10배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1834년에 남긴 그의 말은 현재도 은행의 고객용 브로슈어에 그대로 담겨져 전해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세대 간 부의 이동이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올해 1월 발표한 '상속 시장 분석 및 고객 세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상속 자산 규모는 2016년 89조 원, 2020년에는 108조 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또 미국의 경제 전문 방송 CNBC에 따르면 자산정보업체 웰스엑스(Wealth-X)와 자산운용 컨설팅업체 NFP가올해 1월에 낸 '가계 자산 이전' 보고서에서 초고액자산가들의 은퇴로 향후 30년 동안 최소 16조 달러(약 1경7552조 원)에 이르는 부(富)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야흐로 '상속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부(富)는 상속의 과정에서 진통을 앓곤 한다. 대법원의 사법연감(통계)에 따르면 상속과 관련된 재판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04년 2만1709건에서 2010년(3만301건)에 처음으로 3만 건의 벽을 뚫은 뒤 2013년 3만5030건(유언에 관한 사건 262건 불포함)을 기록하는 등 폭증세다. 2013년 사망자 수가 26만6257명(통계청 통계)이란 점을 고려하면 단순 수치상 8명 중 1명꼴로 상속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는 거다.
50억 원 이상 자산가 유언대용신탁 선호
KB금융연구소는 매년 부자보고서라는 것을 내는데 2014년 7월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한국 부자의 97.5%(복수응답 기준)가 자녀에게 상속·증여하겠다고 밝혔다. 상속 및 증여의 방법은 금융 자산의 경우 '생전 증여'의 형태로, 부동산은 '사후 상속'의 형태로 생각하는 부자들이 많았다.
조사에서는 보험을 활용한 상속 의향은 크게 감소한 반면 유언대용신탁(상속형 신탁)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50억 원 이상 부자들의 경우 유언대용신탁에 대해 높은 가입 의사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자녀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해주겠다는 의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자녀들의 도덕성과 우애를 믿고 법정상속을 택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50억 원대 자산가인 A(60)씨의 경우 40세가 넘어 느지막하게 낳은 두 남매가 걱정이다. 자신의 체력을 고려할 때 10년은 거뜬하게 현역 생활을 할 것 같은데 벌써 정년이 코앞이고 갑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상속 문제를 미리 고민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A씨가 상속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유언과 법정상속, 신탁이 있다. 유언은 법에 정해진 5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법이 있는데 그 요건이 엄격하다. 유언장의 작성 연·월·일과 유언자의 주소 또는 생활 근거지, 유언자의 이름, 도장 또는 지장이 꼭 포함돼 있어야 한다.
유언을 남기지 않을 경우에는 상속인들 간에 협의해서 상속 부채를 포함해 상속 재산을 분할하거나 민법상 법정상속지분에 의해 분할할 수 있다. 법정상속지분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1.5대1대1의 비율로 나누게 된다. 만약 A씨가 유언장을 통해 일부 자녀에게 한 푼도 안 남기겠다고 했더라도 법률로 보장된 '상속유류분'이라는 것이 있어 법정상속분 중 일정 비율을 취득할 수 있다.
작년 법 개정을 통해 배우자에게 반을 나눠주고 나머지를 동일하게 법정상속지분으로 나누도록 추진했으나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며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현재 법무부에서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당초 개정안에서 상당 부분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재산을 신탁한 뒤 사후에 자녀들에게 분할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2012년 7월 신탁법이 개정되며 유언대용신탁도 유언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
최수정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언이나 신탁은 사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한다"며 "유언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하나의 요소만 결핍해도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며, 위·변조나 이해관계자에 따라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신탁은 계약으로 보면 되며 피상속인이 원하는 바대로 자유롭게 계약 내용을 설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수료 등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은 단점"이라며 "피보다 진한 게 돈이 되는 현실에서 도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것이고 결국 재산을 남겨주는 사람이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민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상속 시 체크 사항으로 5가지를 들었다. 그는 "법률 요건에 맞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정기적으로 점검도 해야 하며 가업승계의 경우 준비된 후계자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절세를 위한 사전 상속 플랜은 있는지, 상속세 납입 자금에 대한 준비는 했는지, 차명 재산이 있다면 미리 회수하거나 확실한 회수 방안을 마련해 두었는지 사전에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도 재테크…절세 비법은
상속세는 복잡한 계산 방식 때문에 안 내도 될 세금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속 문제에 있어 절세의 중요성을 두세 번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강남의 자산가 B씨는 부동산 부자인데 상속 개시 전에 일부 재산을 자식들의 명의로 돌려놓으면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 급하게 일부 부동산을 정리했다가 세금 폭탄을 맞았다. B씨가 간과한 것은 바로 '상속추정'이라는 규정이다. 상속 개시 전에 피상속인이 재산을 처분해 과세 자료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현금으로 상속인에게 증여하거나 상속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재산 종류별(금융·부동산·기타 재산)로 계산해 2억 원 이상이거나,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계산해 5억 원 이상인 경우로 사용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 상속인들이 상속 받은 것으로 추정해 세금을 물리는 것을 말한다.
박상철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전문가는 "사망에 임박해 재산을 처분하거나 채무를 부담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속추정에 해당되지 않는 소액이라도 자금의 흐름을 파악해 상속인들에게 증여된 경우 증여세와 가산세를 추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인의 병원비나 생전 채무는 가급적 고인의 재산으로 납부할 것을 권유했다. 공과금이나 장례비용, 채무 등은 상속세 계산 시 총 상속 재산에서 빼도록 돼 있는데 자식들이 부모님을 위한답시고 병원비나 채무를 변제할 경우 그만큼 오히려 상속세를 더 추징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속 개시일 전후 6개월 이내에는 상속 재산을 처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일도 피해야 한다. 상속 재산의 평가는 시가를 원칙으로 하는데 사전에 처분할 경우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상속 재산이 평가돼 세금이 올라갈 수 있다.
박 세무전문가는 상속세를 절세하려면 최소 10년 전부터 사전증여 등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치가 상승할 수 있는 재산을 사전에 가족들에게 증여한 후 10년이 경과하면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설사 가족에게 증여해 10년이 경과하기 전에 증여인이 사망한다고 해도 증여 당시의 가액으로 상속 재산에 합산되기 때문에 그만큼 상속세를 절세할 수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이후에도 상속인들이 절세를 위해 꼭 지켜야 할 일들은 수두룩하다. 자산가 C씨가 사망한 뒤 배우자 D씨와 두 자녀가 남아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배우자 상속공제를 최대한 받도록 상속 재산을 분배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가 상속 받는 금액 등에 따라 배우자 상속공제 금액은 5억~30억 원내에서 변동하게 되는데 배우자가 상속공제 금액을 많이 받을수록 세금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속세 연대납세의무를 활용해도 좋다. 상속을 받은 배우자가 자녀들의 상속세를 대신 내줘도 증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점을 활용한 거다. 이 경우 자녀들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배우자가 추후 자녀들에게 상속을 할 때도 상속세를 대신 내준 만큼 상속 재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상속세의 부담도 덩달아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불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 중 하나가 상속세 납부 재원이 없어도 상속세 신고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속세 미신고 시 상속세 산출세액의 20%(부정행위 미신고 시 40%)를 신고불성실가산세로 내야 하는데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고 신고만 해도 신고세액공제를 통해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단기재상속세액공제(일정 재산을 상속 받은 자가 상속일로부터 10년 이내 사망 시 재상속재산에 대해 단기간 내에 상속세를 2번 내야 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 연부연납(당장 현금이 없어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할 경우 5년간 나눠 납부하도록 하는 것) 등도 적극 활용하면 좋다.
박 세무전문가는 "생전에 미리 철저한 상속 플랜을 짜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도 이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려 대비하도록 한다면 불필요한 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속과 관련된 합리적인 절세 방안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는 나눴어도 재산은 못 나눠?
상속 분쟁 백태
'돈 앞에서는 부모 형제도 없다'는 말이 있다지만 상속 재산을 놓고 피를 나눈 형제, 부모자식 간 분쟁은 일반적인 상식선을 넘어선 막장드라마 수준이다. 아무리 개인 간 상속 재산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라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그동안 국내 유수의 재벌가에서는 상속 재산을 놓고 부모·형제도 없는 잔인한 분쟁이 벌어지며 몸살을 앓았다. 범현대가의 경우 2001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할 무렵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간의 갈등이 벌어지며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생했고, 2003년 정몽헌 회장이 사망한 후에는 부인인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사이에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시숙의 난'이 일어났다. 여기에 더해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이끄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하며 '시동생의 난'을 겪기도 했다.
삼성가도 고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지 25년이 지난 2012년 상속 재산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였다.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이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94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혈육 간 막말이 오가며 큰 상처를 남겼다.
효성의 조현문 전 부사장은 자신의 형과 동생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 대표를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한 것을 비롯해 10여 건의 무차별 소송전을 벌여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형제간 분쟁은 종종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두산그룹 고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긴 뒤 검찰에 그룹의 경영 현황을 비방하는 투서를 제출하면서 형제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고, 가문에서 제명된 박용오 전 회장은 2009년 자살을 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우리나라 40대 재벌 가운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17곳에서 혈족 간의 분쟁이 벌어졌으며, 그중 상당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겨야 했다.
이 같은 상속 분쟁은 해외도 예외는 아니어서 명품 브랜드 구찌사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구찌는 훌륭한 경영을 통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도 거뜬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결국 이 회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상속 문제였다. 창립자인 구치오 구치가 사망한 뒤 자손들 간 지분 상속을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졌고, 장남인 마우리치오 구치에게 모든 것을 넘겼지만 방탕한 생활에 빠진 그는 파산 직전의 회사 지분을 다른 회사에 넘겨 버리게 된다. 이후 그는 은퇴 이후에도 가족들과 재산을 두고 엄청난 분쟁을 벌였는데 결국 그의 아내가 고용한 킬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같은 비극적인 실화는 2011년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구찌(Untitled Gucci Biopic)'라는 영화로 탄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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