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 강남서 강북行 자산가 A씨의 선택 왜?
광화문광장~덕수궁~서울역까지… 살아나는 도심 보행축, '역사도심' 매력 살린다
은퇴 후 강남에서 강북 도심으로 이사한 60대 자산가 A씨. 자녀들이 장성해 독립한 후 강남의 아파트를 팔고 서촌에 낡은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 단독주택을 지었다. 수도서울의 상징인 경복궁이 가까워 주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인왕산 자락을 밟을 수 있어 자연과도 가깝다.
A씨는 60대이지만 웬만한 거리는 모두 도보를 이용한다. 2020년 서울 도심은 이미 보행자 우선 지역으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대중교통과 도보,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대다수다. 뉴요커(New Yorker) 못지않게 서울라이트(Seoulite)도 걷는 일이 잦아졌다.
서촌 거리를 지나 경복궁, 다시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된 광화문광장을 걷다보면 젊은 열기가 느껴진다. 주말마다 펼쳐지는 문화장터에서 장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은 세종시에 사는 아들이 손주와 함께 온다고 한다. 서울역까지 마중 길도 역시 도보행이다.
옛 국세청 별관부지가 허물어지면서 모습을 들어낸 고풍스런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그 앞으로 조성된 문화광장엔 한-영 문화행사가 눈길을 잡는다. 영국문화원 부지로 끊겼던 덕수궁 돌담길 구간이 오픈된 뒤 덕수궁 수문장과 영국 근위병이 순회 경계를 서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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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1위, 비니마스의 '서울수목원' 조감도 |
다시 남대문을 거쳐 17개의 보행길로 재탄생한 서울역 공중정원을 걷는다. 어지럽고 산만했던 서울역일대는 밤이면 서울의 대표 야경조망지로 바뀐다. 벌써 애들이 도착했을 시간이다. 공중정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역사로 들어선다. 서울역사 옆에 들어선 컨벤션센터에선 글로벌 모터쇼가 한창이다. 저녁은 서울역 고가 밑에 들어선 분자요리(질감과 조직, 요리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과 질감을 개발한 요리) 레스토랑에서 모처럼 외식을 할까싶다. 가격은 좀 비싸도, 분위기 있는 가족모임엔 최상이다.
참, 아들 일가를 세종시로 배웅하는 길에는 손주에게 서울역고가 눈썰매를 태워줘야겠다. 서울광장 스케이트보다 요즘 서울 애들은 서울역고가 눈썰매를 더 선호한다. 가족나들이는 택시앱을 통해 고급형택시를 불러야지. 손주 때문에 평소 이용하는 전기자전거는 며칠간 접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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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거점으로 활용되는 도심 역사문화자원 |
◇2020년 서울, 도시재생으로 꽃피는 '역사도심'
서울시의 도시재생 및 도로 다이어트 계획에 따라 그려본 서울시민의 일상이다. 초기 논란이 거셌던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이 두 차례에 걸친 시민개방 행사 이후에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건축·조경 전문가 비니마스의 작품이 선정되면서 고가 상부계획은 상당 부분 윤곽이 그려졌다.
같은 날 박원순 시장은 영국대사관이 점유해 끊어졌던 덕수궁 돌담길 구간을 회복하는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보안'을 해치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 덕수궁 돌담길 1100m 전체 구간이 연결될 전망이다.
덕수궁을 내려다보던 또 다른 일재 잔재의 상징인 국세청 별관도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문화광장이 조성된다. 경찰의 교통 심의가 관건이긴 하나, 여기에 광화문광장까지 세종문화회관 방면 도로가 광장으로 대체되면 경복궁부터 덕수궁, 남대문, 서울역을 잇는 보행동선이 살아난다.
세운상가도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종로구와 중구 일대를 연결하는 임대산업공간 등 도심의 산업축으로 재생된다. 특히, 세운상가 보행녹지축을 조성해 종묘~청계천~세운상가~남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보행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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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울 시내 곳곳에 보행전용거리가 조성되고, 특히 서울 도심의 차선이 줄어든다. 사진은 우정국로 '도로 다이어트' 계획안. |
◇보행선 살리는데 '올인', 차선 줄이고 보도는 확장
서울 도심은 그간 노후화와 공동화 현상으로 주거공간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규모 개발 대신 기존 역사자원을 최대한 보존·활용하면서 도시의 활력을 살린다는 게 서울시의 밑그림이다. 도심의 활력을 살리는 주요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보행'이다.
조성일 도시안전본부장은 "보행중심 환경으로 개선돼 서울역이 남산, 남대문, 만리, 중림, 청파동과 연결되면 남대문 상권과 일대 소외됐던 지역에도 활력이 살아날 수 있다"며 "서울역고가를 비롯해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이 마무리되면 도심거주자들의 삶의 질이 지금보다 상당히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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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줄은 시대적 의미를 지닌 변형 옛 길, 붉은 점은 횡단보도 출가설치 검토지점/자료제공=서울시 |
시의 계획대로라면 서울도심은 수년 내 '역사도시'로서 역사적 특성을 살리면서 가로 보행환경이 우선 개선돼 남대문로, 종로, 우정국로 등 옛 길의 보도가 확장된다. 삼청동길, 명동길 등 주요장소의 중심길이 보행 중심으로 바뀐다.
도심 차량 진입은 더 엄격해진다. 주차상한제 및 주정차 단속이 강화되는 반면 중앙버스전용차로제는 확대된다. 시는 장기적으로 청계천 좌우의 차로도 보행 전용도로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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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내사산 안쪽의 도심 스카이라인을 관리하기 위해 건물높이를 내사산 높이인 90m 이내에서 구역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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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을 경계로 살아나는 도심 스카이라인
서울 도심은 남으로는 남산, 서로는 낙산, 북으로 백악마루, 동으로는 인왕산이 둘러싸고 있다. 전 세계 어느 수도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특성이지만 2004년 도심재개발 사업 시 높이기준을 90m에서 110m로 완화하면서 이들 내사산의 경관 부조화가 심화됐다. 도심 내 전체 높이 90m이상 건축물만 58개 동에 달하는 상황.
이에 따라 시는 향후 내사산과의 조화 및 한양도성에서의 부감을 고려해 스카이라인을 관리하기로 했다. 내사산 높이인 90m 이내에서 구역별로 세분화해 높이를 관리하기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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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일대 혜화동과 명륜동 성곽마을사업 예시/자료제공=서울시 |
이렇게 주거지역의 높이를 설정하면 구릉지를 따라 형성된 경관특성을 보호하면서도 내사산으로 시야가 개방될 수 있다. 구릉지 등 노후주거지는 역사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주거환경을 개선한다. 혜화동, 명륜동 등 한양도성 주변 성곽마을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상업지역에는 도심형 주거공급을 확대한다. 도심부 주거권장지역을 확대하고 신규 건축물에도 다양한 주거기능이 복합된다. 도심과 주거지로 이분화됐던 생활공간을 융합한다는 방침이다.
이제원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내사산 옛 길의 경관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공공공간을 만들되 근현대건축자산을 보호하고 보행중심 교통체계를 운영하는게 서울도심 공간에 대한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 도심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세대가 함께 할 소중한 곳"이라며 "그동안 도심의 관리 방향이 상업지역 위주인 4대문 안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역사, 주거, 교통, 산업이 모두 엮인 한양도성 전체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