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 집 사라는 정부 가계부채 빵 터질라
금융위기란 기업-금융기관-가계를 오가던 돈의 흐름이 갑자기 끊어지는 상황이다. 빌리고 빌려주는 네트워크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후유증이 크고 경제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금융위기는, 각 경제 주체들이 과다한 돈을 빌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해 자산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려놓았을 때(자산 버블) 발생한다. 자산 버블이 폭발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 상당히 오랜 기간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면서 경기침체가 지속된다. 예컨대 4억원을 빌려 5억원짜리 주택을 샀는데 집값이 2억원으로 크게 떨어진 경우다. 집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 해도 2억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 경제 주체들은 자신의 소득으로 빚을 갚느라 한동안 투자하거나 소비할 엄두를 낼 수 없다(<시사IN> 제401호기사 참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겪고 있는 사태다.
↑ ⓒ연합뉴스 : 3월25일 한 은행의 안심전환대출 전용 창구 모습. 1·2차에 걸쳐 34만5000여 명이 33조9000억원 규모의 대출 조건 전환을 신청했다.
ⓒ연합뉴스 3월25일 한 은행의 안심전환대출 전용 창구 모습. 1·2차에 걸쳐 34만5000여 명이 33조9000억원 규모의 대출 조건 전환을 신청했다.
안심전환대출은 자산 버블의 폭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비상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90% 이상이 변동금리 조건이다. 더욱이 75%는 거치 기간에 '이자만 내다가' 원금은 한꺼번에 갚도록(일시상환) 계약되어 있다. 금리가 인상되거나 은행권이 유동성 부족으로 '대출 만기의 연장(롤오버)'을 거부하는 돌발사태가 닥치면 곧바로 가계부도 상태에 이르게 될 시한폭탄 같은 가계가 널려 있다는 의미다. 안심전환대출의 목표는 이 같은 '변동금리-원금 일시상환' 조건의 주택담보대출을 2.5~2.7%대의 고정금리이면서 원금을 분할 상환하는 계약으로 바꿔 가계의 재무구조를 안정시켜주는 것이다. 다만 거치기간 없이 원금도 함께 갚아나가야 하므로 '이자만 내는 경우'에 비해서는 당장의 부담이 늘어난다.
금융 당국은 지난 3월24일부터 안심전환대출 신청을 받았다. 당초 목표는 20조원의 대출 조건을 '변동금리-일시상환'에서 '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전환해주는 것이었다. 은행마다 신청자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고작 4일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역대 정책금융 중 최고 히트작이었다. 그래서 20조원의 대출을 추가 전환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4월6일까지 이어진 2차 신청은 12조원 규모로 마무리되었다. 금융위원회가 이번 달 중순 발표한 '안심전환대출 미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모두 34만5000여 명이 33조9000억원 규모의 대출조건 전환을 신청했다. 금액 기준 목표가 40조원이었으니, 6조원 정도 미달된 것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5년 4월 현재 시중은행권의 가계대출(제2금융권은 제외) 잔액은 모두 579조원에 달한다. 그중 주택담보대출이 426조원이다. 금융 당국은 주택담보대출(426조원) 가운데 112조원(112만 가구)을 안심전환대출의 과녁으로 상정했다. 자격 요건을 보면, 5억원 이하의 대출로 9억원 이하의 주택을 매입했으며 '최근 6개월간 연체 기록'이 없어야 한다. 그런대로 상환 여력이 있는 계층이다. 30만~40만 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는 당초부터 안심전환대출의 대상이 아니었다.
77만 가구는 왜 안심전환대출 신청 안 했을까
그런데 2차에 걸친 안심전환대출의 신청자가 34만5000가구에 머문 까닭은 무엇일까? 당초 목표였던 112만 가구 가운데 나머지 77만5000가구는 왜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지 않았을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상당수의 가구가 이자와 함께 원금까지 함께 납부할(분할상환) 때 늘어나는 원리금 부담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당장의 원리금 부담은 이자만 내던 시기에 비해 2배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더욱이 신청자 중에서도 원리금 부담 때문에 안심전환대출을 철회하는 경우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안심전환대출 신청자 수는 지난 4월6일 마감 이후 한 달 동안 34만5000명에서 32만7000명(31조7000억원)으로 1만8000가구나 줄었다. 그나마 경제 사정이 비교적 양호하고 상환 여력이 있어서 안심전환대출 대상자로 선정된 가구 중에서도 상당수가 '이자만 낼 수 있는 형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더욱이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시중은행 대출에는 접근조차 어려워 저축은행·신용금고 등 제2 금융권에서 훨씬 비싼 이자를 내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자도 110만 가구에 달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 조치로 보였던 안심전환대출로도 '가계부채발(發) 금융위기'의 뇌관을 제거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의 구조가 이토록 위험하게 관행화되어버린 이유는, 한국 경제 발전기인 1970년대 이후 부동산 시세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이자만 갚다가 원금을 일시 상환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빌려도, 그 돈으로 산 주택 값이 오르면 문제가 없었다. 집을 팔아서 원금을 상환하면 된다. 한국과 금융 환경이 크게 다른 미국에서도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이자만 갚는(interest-only)' 주택담보대출이 성행한 바 있다. 그러나 집값 상승이 중단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기관과 고객들이 기존의 대출 관행을 지속한 결과가 현재처럼 시한폭탄 같은 빚더미로 이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안심전환대출을 도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초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오는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가처분소득 대비)을 5%포인트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134.2%였던 가계부채 비율을 2017년까지 129.2%로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해 '돈 빌려 집 사기'를 사실상 선동해왔다. 지난해 말의 가계부채 비율은 오히려 138%로 늘어났다. 가계부채는 올해 들어서도 급격히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한국은행의 <4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규모는 전달 대비 8조5000억원(주택담보대출 증가가 8조원)이나 증가한 579조1000억원이었다. 건국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한편 안심전환대출로 인해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MBS 때문이다. 일반적인 주택담보대출에서는 '빌려주는 자'가 은행이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에서 '빌려주는 자'는 공공기관인 주택금융공사다. 이처럼 '빌려주는 자'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MBS가 발행된다.
어떤 은행이 변동금리로 빌려줬던 원금 1억원의 상환 조건을 '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바꿨다고 치자. 해당 은행이 차입자로부터 예컨대 향후 10년 동안 원금 1억원과 고정금리 이자 3000만원 등 모두 1억3000만원을 꾸준히 받아낼 '권리(대출채권)'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안심전환대출에서 은행은 이 권리를 주택금융공사에 팔아야 한다.
↑ ⓒReuter : 2008년 미국은 가계부채 급증, 집값 폭락, 금융위기가 이어졌다. 위는 당시 빚 때문에 내쫓기는 모습.
ⓒReuter 2008년 미국은 가계부채 급증, 집값 폭락, 금융위기가 이어졌다. 위는 당시 빚 때문에 내쫓기는 모습.
이로써 주택금융공사는 향후 10년 동안 차입자로부터 1억3000만원을 수령할 권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1억3000만원이라는 돈이 10년 동안 공사와 차입자 사이에 묶여 있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이 돈을 '해방'시킬 수 있다. 주택금융공사가 10년 뒤에 1억3000만원을 준다는 내용의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서 1억원에 팔면 어떨까? 판매하는 데 성공하면 주택금융공사는 목돈 1억원을 쥐게 된다. 오랜 세월 묶여 있었을 돈을 '흐르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이 같은 작업을 '유동화'라고 한다. 유동화에 사용된 '새로운 채권'의 이름이 MBS다.
금리 올라 MBS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그런데 안심전환대출에서는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MBS 중 대부분을 은행이 사도록 되어 있다. 은행으로서는 약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차입자로부터 '원금과 이자 받을 권리'를 주택금융공사에 팔고 받은 대가가 현금이 아니라 채권인 MBS인 것이다. 더욱이 은행은 이 MBS를 매입한 시점에서 1년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는 은행이 MBS를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새로운 대출을 재개해서 가계부채를 증가시키지 못하도록 한 장치다.
그런데 은행 처지에서는 이 MBS를 1년 동안 갖고 있는 것이 매우 불안하다. MBS는 채권의 일종이고,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비례한다. 만약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가 올해 말쯤 금리를 올려버린다면, 은행이 주택금융공사로부터 1억원에 산 MBS가 가령 8000만~9000만원으로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 무조건 손해다. 더욱이 MBS의 물량이 너무 많다. 지난해 발행된 MBS 규모가 모두 14조원 정도다. 그런데 주택금융공사는 5~6월 두 달간 안심전환대출 규모인 32조원에 상당하는 MBS를 발행할 계획이다. 다른 MBS까지 합치면 올해 공급 물량이 거의 5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MBS는 사실상 국가의 보증을 받는 채권이다.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런 MBS의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국채를 비롯한 채권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금리가 오른다. 박근혜 정부가 안심전환대출을 도입한 이유는 금리 인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 때문에 금리가 인상될 수도 있다. 만약 주택금융공사가 앞으로 판매할 MBS가 대량 유찰된다거나, 주택담보대출자들이 늘어난 원리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MBS 가격은 폭락하고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채권시장과 금리를 강타할 것이다.
'부동산 대폭락'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자산 버블이 폭발하는 경우,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심전환대출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전향적 가계부채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면서 이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곡예를 부리는 모습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MBS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제2금융권 등의 훨씬 더 위험한 대출에 대해서도 사실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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