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례로 옷이나 가방으로 몸을 꾸미듯 집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가꾸는 ‘홈퍼니싱’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자라홈’ ‘H&M홈’ ‘무지’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잇따라 한국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이에 질세라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 등 국내 유통업체들도 생활용품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건강과 여가생활, 자기계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일명 ‘포미(For-me)족’도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포미족은 건강(For health),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약자를 딴 신조어로 자신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인 20~30대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이를 즐거움으로 인식한다. 소득, 여가수준이 늘어난 이들은 뮤지컬, 콘서트 같은 공연을 즐기고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 에어텔 여행상품을 통해 취미생활을 누린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는 산업 트렌드도 바뀔 전망이다.
나만의 개성 넘치는 집을 꾸미기 위해 주택 리모델링 수요가 늘면서 건축자재 산업이 성장세를 타는 분위기다. 일본도 1992년 국민소득이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후 정원 가꾸기 용품이나 유럽식 인테리어 상품이 크게 유행했다.
LG하우시스는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에 직영점 ‘강남 지인스퀘어’를 개장해 각종 인테리어 자재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직영 온라인 쇼핑몰인 ‘지인몰’도 열었다. KCC도 인테리어 브랜드 ‘홈씨씨인테리어’를 내세우면서 인테리어 플래너를 통해 시공에서 사후관리까지 종합적인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화L&C도 ‘DIY(손수 제작) 인테리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DIY 바닥재 브랜드 ‘쉬:움’을 선보였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안락함을 누리고 싶은 ‘코쿠닝(Cocooning)족’, 자신에 대한 투자를 늘려온 고소득 전문직 독신남녀 ‘골드싱글(Gold single)족’이 늘면서 파생한 산업도 눈길을 끈다. 안마의자나 리클라이너(등받이, 발받침 각도가 조절되는 인체공학적 안락의자)가 인기인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에이스침대, 리바트 등 가구업체들은 좁은 공간에서 배치하기 좋은 1인 리클라이너 소파를 잇따라 선보이는 중이다.
이은철 대한상공회의소 유통산업팀 선임연구원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데다 여성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가족 중심 소비에서 개개인 선호를 중시하는 개인 중심 소비가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더라도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만큼 저가형 합리적 소비와 고급 소비가 공존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김숙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전망도 있었다.
넓게 보면 철강, 조선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이 지고 로봇, 나노공학, 바이오 산업 등이 떠오를 거란 관측이 많다. 스포츠 레저 관련 산업이나 유기농 식품, 실버 관련 산업이 인기를 끄는 한편 임신, 출산, 육아 토털 도우미 서비스를 하는 ‘베이비플래너’, 안락한 노후 생활을 돕는 ‘노년플래너’ 등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할 거란 예측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어서면 법률, 의료, 비즈니스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하고 여행, 스포츠 등 취미, 여가 관련 산업도 인기를 끌 것이다. 정신적으로 만족을 주는 사회 기부나 예술품 소비, 특정 분야의 프리미엄 교육 시장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 제조업이나 단순 생산 직종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경희 신세계미래정책연구소 팀장이 바라보는 미래 모습이다.
때문에 기업들마다 3만달러 시대에 대비한 경영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기존 공장에서 제품 생산에만 신경 썼던 제조업체들은 서둘러 온라인, 모바일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강남역, 홍대 등 핵심 입지만 보고 점포를 낼 게 아니라 유통(Retail)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 전략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인터뷰 |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 상품 아닌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 될 것
‘미래학 분야 최고의 석학’ ‘미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프레이가 숭실대 주최, 마이크임팩트가 주관한 숭실석좌강좌 강연 차 방한했다. 그는 미래학 싱크탱크 다빈치연구소장과 세계미래학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퓨처리스트(The Futurist)’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한국 소비 시장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Q 선진국 사례에 비춰볼 때 국민소득 3만달러 소비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나. A 사람들이 제품보다 좋은 경험을 사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풍족하게 하려는 데 쓰려고 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자아실현의 욕구에 가까운 소비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봉사를 테마로 한 여행, 3D프린터로 지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나만의 제품 개발 등에 돈을 쓰는 식이다. 이전까지는 무역 중심의 상품이 움직이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사람 중심의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를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고 정의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전통적인 백화점, 슈퍼마켓 체인이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신 유기농 치즈를 직접 만들어보고 요리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가미한 곳이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런 대세를 따르는 모습이다.
Q 한국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A한국인은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 전까지 2가지 부문에 집중적으로 돈을 써왔다. 사교육과 부동산이 그것이다. 이는 효과적인 부의 선순환 효과를 갖다줬다. 높은 교육열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주요 성장동력이 됐고, 부동산 가격 역시 계속 상승하면서 개별 가정의 부를 키워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만달러 시대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술 발전으로 무료 교육 콘텐츠가 늘어나고, 인구 감소로 부동산 가치는 떨어진다. 한국인이 그동안 주로 돈을 써왔던 분야에 대한 비용이 줄어드는 셈이다.
Q 앞으로 한국 소비 시장은 어떤 특징을 보일까. A교육, 부동산뿐 아니라 교통, 통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관련 비용이 줄어든다. 사람들은 여기서 아낀 돈, 즉 잉여의 부를 복지 증진, 환경, 우주 탐사 등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소비할 것이다. 또 달라진 인간관계 개념에 따른 산업에 돈이 몰릴 것이다. SNS가 특히 발달한 한국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평생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사람과 공감하는 데 돈을 쓰고 대면 접촉에서 오는 피곤함을 덜어줄 로봇, IT기기 등에 돈을 쓸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드론, 3D프린터가 대세가 되면서 그동안 선진국을 따라 하며 커왔던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에서 한국인 특유의 독창적인 제품, 콘텐츠를 생산, 전달하는 시장이 대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