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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임성기 약국’서 글로벌제약사로 우뚝선 한미약품의 고집

여행가/허기성 2015. 11. 7. 05:33

 

‘종로 임성기 약국’서 글로벌제약사로 우뚝선 한미약품의 고집

국내 제약사에게 ‘한여름밤의 꿈’만 같았던 글로벌 신약에 대한 소원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 첫발을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75)이 내딛었다. 5일 글로벌제약사 사노피와 총 39억유로(약 4조 8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초대형 ‘잭팟’을 터트렸다.

평소 “글로벌 신약개발은 내 목숨과도 같다.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 하나 만들어내는 게 평생의 꿈”라고 말한 오랜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그에게 대박을 안겨준 제품은 바이오 의약품의 약효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기술을 적용한 지속형 당뇨 신약 ‘퀀텀 프로젝트’다.

2015년은 임 회장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난 3월 글로벌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면역질환 치료제 ‘HM71224’를 6억 9000만달러에 수출한데 이어 7월 항암제 후보물질(HM61713)의 기술을 베링거인겔하임에 7억 3000만달러에 팔았다.

임 회장은 제약업계에 발을 담근지 48년만에 한국 제약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임 회장은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서울 종로 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었다. 당시 임 회장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약국 영업에 나섰고, 남들이 꺼려하는 성병 환자들을 적극 치료해주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 당시 베트남전 직후여서 성병환자들이 아주 많았죠. 임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내가 꺼릴 게 뭐 있겠냐’며 매독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해줬습니다.” 한 주변인사가 들려준 일화다.

한미약품의 모태가 된 임성기약국은 웬만큼 돈이 모이자 1973년 임성기제약을 설립했고, 같은 해 동료 약사들과 함께 상호를 한미약품으로 변경하면서 재창업을 선언했다. 약국을 직접 경험해본 임성기 회장의 경험이 녹아든 한미약품은 일선 약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약업체로도 유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업력 하나만큼은 최강’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약국에 특화된 제품과 마케팅, 친절한 영업사원으로 입소문이 난 덕분이다.

한미약품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약업계 10위권을 맴돌던 작은 회사였다. 그러나 2010년 R&D 대표주자로 탈바꿈하며 업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 씨앗은 임 회장의 남다른 경영철학 덕분이었다. 임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약은 복제약이든, 합성신약이든 반드시 자체개발해 팔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 번 돈은 한눈 팔지 않고 신약개발에 쏟아부었다. 이는 결국 기술축적으로 이어져 글로벌제약사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임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남들보다 한발 먼저 가야한다’고 얘기한다. 2004년 암로디핀의 개량신약 ‘아모디핀’을 내놓을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량신약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 이후 개량신약이 붐을 일으키자 임 회장은 2009년 국내 최초로 복합신약 ‘아모잘탄’을 내놓고 미국 머크와 아시아 6개국의 판권계약을 체결했다.

임 회장이 신약개발에 ‘올인’하는 이유는 영업을 아무리 잘해도 복제약만 만들면 언젠가는 위기를 맞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2010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을때 “투자를 줄이고 일단 수익을 내자”는 안팎의 거센 요구를 묵묵히 버텨내며 임 회장은 신약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했다.

한미약품의 R&D 비용 규모와 비중은 단연 1위를 달린다. 지난 10년간 누적 R&D투자액이 8000억원대이다. 최근 5년간 신약 개발에 쏟아부은 돈만 5000억원 규모다. 지난해에만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1525억원을 R&D에 투자했다. 한미약품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출원한 특허 수만 300여건에 달한다.

그 동안 한미약품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행보를 보였다. 국내 제약업계에 개량·복합신약 붐을 일으키고, 압도적인 R&D를 통해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의약품 유통혁명을 주도한 것이 그렇다. 제약업계의 역사를 새로 써가는 한미약품의 행보를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