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로디시나 AT커니 명예회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 수요는 매우 다양하다”며 “중국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라고 밝혔다.
90년 역사의 세계적인 컨설팅기업 AT커니를 2006년부터 7년간 이끌었던 로디시나 명예회장은 지금 당장은 중국 정부가 내놓는 조치에 의구심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정부의 경제 개혁은 성공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톈진(天津) 폭발사고 대응과 주식시장 개입, 기습적인 통화정책 등 최근 중국 정부의 결정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금융시장 불안과 장기적인 인구문제 등 앞으로 중국 경제에 도전요인이 많지만 중국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 중국 경제의 미래는 굉장히 낙관적”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8월 중국 인민은행이 전격적으로 위안화 절하 조치를 발표하며 세계 경제는 ‘차이나 쇼크’에 직면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를 지탱하던 중국마저 극약처방을 내릴 만큼 세계 경제 전체가 저성장 병을 앓고 있다는 자각이 이뤄진 것이다.
당장 중국을 등에 업고 성장해온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던 중국 경제가 오히려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로디시나 명예회장은 “중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국가인 것을 고려하면 중국은 앞으로도 투자 가치가 있는 국가 포지션(위치)을 지킬 것”이라며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시장이라고 말했다.
로디시나 명예회장이 중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경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중국만큼 정부 정책이 경제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없다”며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신감 있게 정책을 추진해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국 정부가 전승절을 앞두고 올 8월 주식을 대거 매입해 주가 부양에 나선 것과 같은 단기적인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단기적인 부양책은 ‘마약 중독’과 같아서 반복되면 결국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로디시나 회장은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는 상황은 오히려 세계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통화완화 정책은 단기처방, 새로운 국제통화정책 기준 필요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방식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며 ‘환율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로운 국제 통화정책 기준이 필요하다. 자국 경제만 고려한 이런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계속 유지될 수 없다. 경기 부양을 위해 한두 번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가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탄탄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상하이종합지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단기적인 시장 개입 역시 한 두 번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마약 중독과 같은 이런 정책이 여러 번 반복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양적완화 정책도 비슷한 사례다. 미 연준이 통화정책을 조금만 달리해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인다. 단기적인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4~5년 주기의 정권 교체와 분기별 사업 보고 때문에 국가들은 단기적인 정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 ‘펀더멘털’이란 무엇인가. “국가 펀더멘털이란 인프라와 인구구조, 기술 발전과 이에 대한 관심, 유연한 노동시장 등 많은 것을 포괄한다. 펀더멘털은 단기적인 통화정책으로 이룰 수 없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매년 발표되는 외국인직접투자 신뢰지수(FDI Confidence index)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글로벌 회사 최고경영자(CEO) 1000명 중 가장 많은 CEO들이 투자 종착역으로 꼽은 국가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이 지수의 1위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상위권 국가들의 변화를 봐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위 25개 국가 중 대부분은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인건비가 싸고 공장이 많은 신흥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 유럽, 한국 등 선진국이 대부분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값싼 인건비만으로는 장기적인 투자를 끌어오기 어렵다. 세계 투자 자금은 저가(低價) 제조업 국가에서 첨단기술을 가진 산업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지향해야 할 펀더멘털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한국의 펀더멘털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평가하나. “외국인직접투자 신뢰지수에서 한국은 최근 16위까지 올라왔다. 상위 25개국까지는 좋은 성적을 내는 국가로 보고 있다. 한국은 값싼 인건비를 중심으로 수익을 내는 제조업 중심에서 첨단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발전 방향을 유지하면 한국의 지수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고령화에 고용 33%가 단기계약직, 국가경제에 큰 부담될 것
한국은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국가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가 펀더멘털에 영향을 미칠까. “한국 경제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은퇴자들은 늘어날 텐데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인력은 부족하다. 국가 차원에서 큰 부담이다. 2025년쯤 고령화 문제는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부모님을 부양하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노년을 보낼 충분한 부(富)를 축적하지 못했다. 젊은 세대 역시 노동에 대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부모를 부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연금 시스템이 이런 간극을 보완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저출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의 20~30대가 출산을 미루는 것은 주거비와 육아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
해외 인력 활용이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의 해법이 될 수 있나. “노동력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유럽에서는 이미 본격적으로 해외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해외 인력을 활용해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임시직 비율이 높은 국가는 내국인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임시직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자국민의 노동력조차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실업률이 3% 수준이지만, 고용 구조를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체 근로자 중 단기계약직이 33%로, OECD 국가 중 이 비율이 가장 높다. 샐러리맨들이 본인들이 받아야 하는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일한다는 의미다.”
임시직 비율이 높은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정부가 기업이 원하는 기술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독일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운영하는데, 이곳이 청년 고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아일랜드의 사례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당시 아일랜드는 실업률이 높아 청년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때 정부가 기업들에 질문했다. ‘아일랜드가 컴퓨터 부품을 만들어 유럽 주요국에 팔 수 있을까.’ 많은 기업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컴퓨터 부품을 만들 인력과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가 말했다. ‘정부가 기술을 가진 인력을 양성해 제공하면 기업들이 100% 채용할 의사가 있느냐.’ 이를 시작으로 현재 아일랜드가 만들어졌다. 노동문제 해결에는 정부와 민간의 협동이 중요한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