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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허리띠 졸라매기' 백태‥버스로 출장

여행가/허기성 2015. 12. 21. 08:26

택시 대신 버스로 가는 출장, 컬러복사기 사라진 사무실

대기업들 '허리띠 졸라매기' 백태‥

송년회 없애거나 1차로 마무리, 비용절감 위해 연말 장기휴가 권장도

 

 

. 서울의 한 대기업 영업 간부직원 A씨는 거래처 미팅을 위해 이동할 때 택시를 주로 이용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엔 버스를 탄다. 회사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대중교통 사용을 지시해서다. 여기에 출퇴근 때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라는 권고까지 있었다. 난방비 절약을 위해서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죠. 그래도 어차피 서울 시내에선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니 택시와 도착시간도 비슷합니다. 허허." A씨는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2. 대형건설업체에 다니는 입사 11년차 B 과장(38). 올해 주택시장 경기호조로 회사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됐는데도 마음이 편치않다. 2013년부터 실적이 좋지 않아 급여가 동결됐는데, 실적이 개선된 올해에도 성과급 지급은 물론 급여인상도 없을 것이란 소문이 돌아서다.

B 과장은 "회사는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내년 실적 불확실성 때문에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며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꺾였지만 구조조정까지 진행하는 경쟁사를 보면 안 잘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택시 대신 버스로 가는 출장, 복사기 사라진 사무실

올 연말 직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체감온도가 내려가 있다. 잘나가던 대기업들에서 대규모 '희망퇴직'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마다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대기업과 금융권 본사가 몰려있는 광화문·여의도 일대는 연말 임에도 거리에 흥청대는 직장인 무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예 송년회를 열지 않거나 1차에서 간단하게 식사로 마무리하고 헤어지는 게 보편화 돼가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C씨는 "'제2의 IMF' 시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회사 안팎의 분위기도 안좋다 보니 조용한 연말을 맞고 있다"며 "게다가 회식 비용도 확 줄어서 이제 삼겹살 먹기도 부담되고 이러다 나중엔 떡볶이를 먹으며 '분식 회식'을 해야하는 건아닌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도심 거리가 썰렁한 데에는 많은 직장인들이 휴가를 떠난 점도 한몫한다. 주요 대기업들은 복지 차원이라기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들에게 휴가를 권장하는 분위기다. 월차 소진을 안하면 수당을 줘야 해서다.

굴지의 전자 대기업에 다니는 D 씨는 "이전엔 해외로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국내 휴양지에서 3~4일을 짧게 보내고 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직장인 E 씨는 "사실 IMF 이후로 연말 경기가 좋다고 한 적은 없지 않았냐"면서도 "그동안에도 점심시간에 소등을 했지만 올해에는 소등시간이 길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더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사실인 거같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F 과장은 요즘 회사 복도에서 불경기를 체감한다. 부서마다 보유했던 복사기·팩시밀리 등 사무기기를 복도에 마련한 공용 사무기기로 '통폐합'한 것이다. 최근 컬러프린터를 없애고 모두 흑백으로만 쓴다. F 과장은 "예전에도 이면지를 쓰라는 등 절약을 강조했지만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피했다고 해도 줄어든 성과급에 '울상'

상황이 안좋기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과 해운, 철강, 중장비 업체의 구조조정은 현재 진행형이고, 삼성그룹마저 최근 인사에서 임원 20%를 줄였다. 감원 폭풍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임직원들에게 주는 성과급이 아예 없거나 크게 줄어들 전망이어서 지갑 두둑한 연말·연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삼성그룹의 경우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갤럭시 S6시리즈가 예상보다 판매가 부진했고 TV도 시장이 위축돼 있어 대부분이 성과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대표적인 내수 업종인 이동통신 3사도 내년 경기 걱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수익 감소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최근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20%) 가입자 증가로 매출 성장이 어려워졌다.

한 이동통신사 임원은 "내년에는 매출을 어떻게든 올려야 하는데 요금제 부분은 올해 출시된 '데이터중심요금제'가 워낙 큰 변화라 그 이상 (파급력 있는) 상품 출시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나서면서 중견·중소 협력사들 역시 후폭풍을 맞고 있다. 삼성과 거래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올해 실적은 선방한 편이지만 최근 대기업 분위기를 보면 내년에는 투자 축소와 판가 인하 등 변수가 많을 것으로 예상돼 회사 안에서 긴장감이 감돈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느끼는 한파의 강도도 크다. 올해 소폭 성장을 이룬 게임산업이 대표적이다. 일부 대형 게임사의 선전으로 전체 시장을 커졌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개발사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한 중소 게임개발사 대표는 "최근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소개발사는 게임배급사들이 제시하는 불리한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다"며 "중소개발사들이 전체적인 경쟁력 확보에 실패해 추가 게임을 개발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국내 게임업계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실적 좋아진 기업도 내년 경기 곳곳에 '지뢰'

건설업체들은 주택경기 호조에 힘입어 실적이 지난해보다 개선됐지만 체감경기는 별로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다. 저유가, 미국 금리인상 등 해외건설 수주에도 악재가 많고, 내년 국내 주택경기 회복세가 유지될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 대형건설업체는 올 연말까지 본사 인력을 종전의 30%까지 줄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부 직원들에 대해선 이미 구조조정을 통보했고 희망퇴직도 동시에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시장 상황이 언제 꺾일지 몰라 인력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부장급 이상 직원들 사이에서도 잘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건설업체는 130여명에 달하는 임원을 20% 가량 줄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저성과자와 승진누락자에 대한 권고사직도 진행 중이다.

중견건설업체 임직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중견건설기업 대표는 "올해 최대 실적을 냈지만 성과급은 없다"며 "앞으론 사업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한 경영위험 개선 차원에서라도 장기적인 먹거리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