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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한 어리굴젓, 고소한 굴구이, 달달한 굴회 .. 먹어도 먹어도 안 질려요

여행가/허기성 2016. 1. 22. 08:02

얼얼한 어리굴젓, 고소한 굴구이, 달달한 굴회 .. 먹어도 먹어도 안 질려요

서산 간월도, 보령 천북 굴 맛 산책

서해안에는 지천에 굴이 널렸다. 강화도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모두 굴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해안 중에서 굴이 가장 유명한 지역이라면 충남 천수만 일대를 꼽는다. 천수만은 안면도가 감싼 내해(內海)로, 굴을 비롯한 온갖 수산물의 보고다. 굴 채취량은 많지 않지만 굴로 만든 음식의 전통은 여전하다. 서산 간월도의 어리굴젓과 보령 천북의 굴 구이가 그 주인공이다. 맛과 향이 진한 갯굴을 먹고 나니 비로소 겨울에 든 것 같았다.

충남 보령 천북 굴단지는 굴구이의 원조다. 석화를 살짝 구워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부드럽고 고소하다.
충남 보령 천북 굴단지는 굴구이의 원조다. 석화를 살짝 구워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부드럽고 고소하다.
불을 쬐며 굴을 구워먹는 관광객의 모습.
불을 쬐며 굴을 구워먹는 관광객의 모습.
천북에서도 해종일 아낙들이 굴을 깐다.
천북에서도 해종일 아낙들이 굴을 깐다.
천북 장은리에서는 굴도 많이 나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타 지역 굴도 판다.
천북 장은리에서는 굴도 많이 나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타 지역 굴도 판다.
보령 천북면 굴 단지에는 굴 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보령 천북면 굴 단지에는 굴 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간월도 굴로 담가야 제맛이 난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간월도 굴로 담가야 제맛이 난다.
간월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영양굴밥.
간월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영양굴밥.
자잘한 서해 굴을 듬뿍 넣어 부친 굴전.
자잘한 서해 굴을 듬뿍 넣어 부친 굴전.
올 겨울 천수만에서는 새조개도 풍년이다.
올 겨울 천수만에서는 새조개도 풍년이다.
바구니 한 가득 굴을 채우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바구니 한 가득 굴을 채우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굴 물회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담가 먹는다.
굴 물회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담가 먹는다.

입 한가득 어리어리한 젓갈의 맛 - 서산 간월도

간월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1984년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국토 확장에 열을 올리던 당시, 갯벌은 하찮은 것이었다. 쌀 한 톨이라도 나는 옥토가 더 중요했다.

다행히 서쪽 바다는 살아남았다. 간척 전보다 양은 현저히 줄었지만 굴은 여전히 갯벌 위에 피어났다. 자연산 굴도 났지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갯벌에 돌을 깔았다. 이른바 투석식(投石式) 굴이다. 남해 수하식처럼 굴을 번식하는 것이 아니기에 간월도에서는 양식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지난 5일 오후 굴 캐는 아낙들을 따라 갯벌로 나섰다. 간월도 어촌계에는 굴 캐는 아낙이 60여 명 있는데 갯벌이 많이 나는 물때가 아니어서 6명만 나왔다. 바닷바람이 사나웠다. 아낙들도 꽁꽁 싸맨 모습이었다. 볏짚으로 만든 재래식 바람막이를 등에 걸고 나온 할머니도 있었다. 모두 T자 모양의 쇠꼬챙이 ‘조새’를 바쁘게 놀렸다. 돌에 붙은 굴을 떼어내고, 굴 껍질을 벗기고, 알만 발라내 바구니에 담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무 굴이나 캐는 게 아니었다. 젓갈용으로 좋은 3년생 굴만 캐낸다고 했다. “간월도 굴 얼매나 맛난지 먹어보라구.” 아낙이 조새에 걸린 굴을 건넸다. 바닷물이 입 안으로 딸려들어와 짰지만 씹을수록 달고 고소했다.

간월도에서 굴 캐는 여성 대부분은 60∼80대다. 갯벌에서 부대낀 세월이 40년은 족히 넘는다. 이성순(85)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굴을 땄단다. 할머니 이야기는 동요 ‘섬집아기’ 가사 그대로였다. 간월도가 섬이었을 때, 간월도 앞바다의 더 작은 섬에 들어가 종일 굴을 따다가 해질 녘 바구니를 이고 왔단다. 노두연(80) 할머니가 방조제 너머를 손으로 가리켰다. “한 달에 두어 번 저어기 있던 띠섬이랑 서당섬에 들어가서 굴을 많이 땄지. 지금은 죄다 논이 돼부렀지.”

굴 캐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고되다. 갯벌에서 굴 캐는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판매 경로만 달라졌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아낙들이 나룻배를 타고 서산 시내로 나가 굴을 팔았다. 지금은 어촌계에서 전량을 수매해 젓갈을 담근다. 이날은 작업 시간이 짧아 5~6㎏밖에 캐지 못했다. 그래도 바구니 하나가 그득했다. 할머니들은 사리 때면 보통 하루에 10~15㎏을 수확한다. 물때를 맞춰 한 달에 보름 정도 바다에 나온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간월도 앞바다 굴로만 담근다. 간월도 굴은 가장자리에 지느러미가 발달했다. 충청도 말로 ‘날감지’라고 하는데 이게 6개 이상 있어 사이사이에 양념이 잘 벤단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천일염에 절인 굴을 상온 15도에서 15일간 발효한다. 그리고 태양초 고춧가루를 물에 개 발효된 굴에 버무린 뒤 석 달간 숙성시킨다. 이게 간월도 어리굴젓의 레시피 전부다.

김덕신(50) 무학표 어리굴젓 대표에게 간월도 굴로 담근 어리굴젓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물었다. “간월도 굴은 발효가 돼도 흐무러지지 않고 단단허지유. 많이 짜지 않아서 쌀밥 한 숟갈에 딱 한 점 올려서 먹으면 제일루 맛있지유.” 잘 숙성된 어리굴젓을 한 점 집어 먹었다. 얼얼하고 고소한 맛이 묘하게 교차했다. 이제껏 먹어봤던 굴젓과 식감이 확실히 달랐다.

구워 먹으니 더 꼬숩네 - 보령 천북

보령 천북면 장은리 굴 단지는 간월도에서 멀지 않다.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로 20~30분만 내려오면 된다. 남당항을 지나 홍성방조제를 넘으면 굴집 간판을 내건 집이 줄지어 선 굴 단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연초에 굴 축제가 열렸다. 하루 최대 1만5000명 가량이 방문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박상원(63) 천북수산 사장이 충청도 특유의 농담을 곁들여 설명했다.

“뭐 특별한 거 있겄슈? 사람 마음이 그렇잔유. 대하는 남당항 가서 먹어야 맛있는 것 같구, 한우는 홍성 가서 먹어야 맛있는 것 같구. 그런 것처럼 굴구이는 천북 가서 먹어야 제 맛이라구 하는 거지유.”

천북 굴구이의 시작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굴을 채취하던 아낙들이 모닥불에 손을 녹이다 굴을 껍질째 구워먹었다. 처음에는 변변찮은 식당도 없었다. 몇 채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번개탄에 굴을 구워먹었다. 굴구이가 천북의 명물이 된 지금은 제법 번듯해졌다. 보령 천북면 장은리 포구에 모두 71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굴과 각종 어패류를 팔고 다양한 굴 요리를 선보인다.

지난 6일, 평일인데도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굴 단지로 모여들었다. 굴구이 집 내부는 영하의 기온이 무색할 정도로 후끈거렸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펑 소리를 내며 굴이 터지기도 했다. 한 손에는 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굴을 까먹어봤다. 살짝 익은 굴이 탐스럽게 통통해졌다. 불 맛이 더해져 생굴보다 훨씬 고소했다. 아니 충청도 말로 ‘꼬숩다’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맛이었다.

경기도 여주에서 온 김덕임(66)씨는 부녀회원들과 겨울마다 천북을 찾는단다. “어제 밤에 굴 구이를 사먹고, 아침에는 숙소에서 굴국을 끓여 먹었어요. 아무리 먹어도 굴은 질리지 않잖아요.”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식당 주인이 피조개와 가리비, 백합 한 움큼을 덤으로 챙겨줬다. “10년 넘는 단골 고객이어유.” 사람들이 굳이 천북까지 내려와 굴을 구워먹는 이유를 알 만했다.

굴구이를 먹고 난 뒤에는 굴칼국수나 굴밥을 먹는다. 굴칼국수는 개운하고 굴밥은 든든하다. 솜씨 좋은 맛집은 배추김치·석박지·동치미 등을 내주는데 이 맛도 각별하다. 김치를 바닷물에 절이는 게 천북의 전통이란다. 묘하게 시원한 맛에 동치미를 세 그릇이나 비웠다. 굴물회도 놓치면 후회할 맛이다. 동치미 국물에 무·오이·당근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푼 뒤 굴 한 줌을 넣는다. 술 좋아하는 천북 어민은 꼭 굴물회로 해장을 한다고 한다.

천북 앞바다도 간척사업으로 갯벌을 많이 잃었다. 지금도 갯굴을 캐긴 하지만 양이 많지는 않다. 요즘에는 투석식과 함께 송지식(松枝式)으로 얻는 굴도 많다. 송지식은 갯벌에 소나무 기둥을 꽂아 굴을 키우는 방식이다. 투석식·송지식은 굴이 어느 정도 자라면 돌과 나무에서 떨어져 갯벌에 박혀 살기 때문에 자연산 갯굴로 친다고 한다. 그래도 양이 턱없이 모자라 통영이나 여수에서 굴을 들여온다. 천북 앞바다 굴을 구이용으로 쓰려면 3~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남해 굴은 1년산도 큼직해서이다. 솔직히 이번에도 천북 굴보다 남해 굴을 더 많이 먹었다.

● 여행정보= 서울시청에서 간월도까지는 약 150㎞ 거리다.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간월도에서 천북 굴단지까지는 약 18㎞, 자동차로 20∼30분 걸린다. 간월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무학표 어리굴젓은 1㎏에 2만2000원이다. 포구에 젓갈공장이 있고, 웹사이트(salegool.co.kr)에서도 살 수 있다. 041-662-4622. 간월도에서는 대추·밤 등을 넣고 찐 굴밥도 먹어봐야 한다. 별미영양굴밥(041-664-8875), 맛동산(041-669-1910) 등 유명한 굴밥 집이 많다. 가격은 1만2000원으로 같다. 간월도에는 굴 말고도 먹거리가 많다. 귀족 조개로 불리는 새조개가 올 겨울에는 풍년이란다. 새조개는 샤브샤브가 유명한데 전망좋은횟집(041-662-4464)에서 6만5000원에 판다(1㎏). 천북에서는 천북수산이 단골 손님이 많다. 굴구이는 한 대야에 3만원으로 보통 성인 4명이 먹는다. 굴밥 1만원, 굴칼국수 6000원. 041-641-7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