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지원금+α 토해내라" 탈출구 막힌 영세 편의점
장사안돼 폐점하려도 수천만원 위약금 폭탄…불투명한 계약정보에 속앓이 더 깊어져
서울 강서구에서 대기업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운영하는 윤모씨(47)는 얼마 전 가맹본부로부터 받은 내용증명서를 보면서 두통약을 집어삼켰다. 윤씨는 오랜 기간 식당을 해오다 주변 권유로 2년여 전 편의점을 차렸다. 하지만 수입은 예상의 절반도 안됐고 비수기 때는 적자까지 봤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윤씨는 편의점을 접기로 마음 먹었지만 계약기간(5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해지'할 경우 위약금과 손해배상금을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지금 당장 그만둔다면 윤씨는 5년 계약기간 중 절반을 채우지 못한다. 그 대가로 본부가 전액 투자한 인테리어 비용 일부와 폐점에 따른 장비 철거 비용으로 2200만원, 남은 계약기간 동안 편의점 본부가 가져갈 수 있는 '미래이익'에 해당 되는 영업위약금 1800만원을 내야 한다. 이밖에 그동안 본부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을 토해내야 하고, 권리금도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윤씨는 "그동안 죽어라 일하면서 편의점을 지켜왔지만 제대로 수익도 올리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이런 삶을 벗어나려면 또다시 수천만 원이 든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올 겨울 비수기를 끝까지 버틸 자신이 없다"며 "대출이 얼마나 가능할지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씨유(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계약 기간 내 중도해지 시 과도한 위약금에 시달리는 문제는 꾸준히 지적됐다. 하지만 여전히 윤 씨처럼 '위약금 공포'에 시달리는 영세 점주들이 많다. 편의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본부의 무리한 출점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윤씨 역시 점포를 오픈한 직후 인근에 다른 브랜드 편의점과 개인 슈퍼마켓이 들어서 수익이 악화 됐다.
지난해 3000만원의 중도해지 배상금을 내고 폐점한 전직 편의점주 안모씨(51)는 "장사가 안 되는 점포를 소개해 준 것은 가맹본부인데 정작 폐점 책임은 점주만 떠안아 한다"며 "점주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본부의 미래 수익인 영업위약금까지 챙겨줘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고 털어놨다.
남은 계약기간의 가맹수수료 일부를 점주가 본부에 물어내야 하는 영업위약금은 커피, 피자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업종 가운데 편의점에만 존재한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업체들에 권장하고 있는 표준 금액은 5년 계약의 경우 3년 미만 운영시 월평균 이익배분금의 6개월치, 3~4년은 4개월치, 4년 이상은 2개월치다.
상세히 공개되지 않는 시설·인테리어 비용과 불투명한 위약금 정산서 내역은 점주들의 속앓이를 더욱 깊게 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시설·인테리어 공사비를 개점 1개월 안에 점주에게 제공하도록 본부에 권고했지만 점주들은 구체적인 내역이 없어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폐점을 고민해 본 점주들은 중도해지 요청 시 본부가 여러 항목에 걸쳐 과도한 위약금을 통보하며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막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편의점 피해자 모임 대표는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통해 위약금이 경감되는 경우도 있지만 고통이 따르는 그런 가시밭길을 택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며 "손실을 안고 남은 계약기간을 채우거나 빚을 내 위약금을 물고 편의점 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편의점 업체들은 업종 특성상 중도해지 위약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부가 점주들의 영업을 위해 인적 비용과 금융 비용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도 계약해지 시 남은 기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점주들의 '단순 변심'을 제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도 주장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편의점 업계는 공정위가 권고한 위약금 관련 표준을 이미 2014년부터 자발적으로 시행해 왔다"면서 "편의점 오픈시 위약금을 내지 않는 모델도 제시하며 점주들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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