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쇼핑 1번지' 명동…중국 이어 동남아 관광객 '북적'·구매력은 '한계'
중국인 브랜드 선호로 로드숍 '찬바람'호텔 많아져 밤 11시까지 '불야성'
서울 명동에 ‘글로벌 관광특구’란 수식어가 붙은 건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화장품 가게 내레이터 모델들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요즘에는 베트남어 등 동남아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미국·유럽 지역까지 다양한 관광객들이 명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제 명동은 단순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 상권의 성격을 넘어서고 있다. 명동은 이들이 한류 문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한류 쇼핑 상권’으로 진화하고 있다.
3.3㎡(1평)당 300만원. 국내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으로 악명이 높은 명동. 2015년 11월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발행한 글로벌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명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덟째로 임대료가 높은 상권으로 꼽힌다.
가장 높은 임대료를 자랑한 곳은 미국 뉴욕의 5번가(1㎡당 350만1937원)였고 파리 샹젤리제(3위, 137만2759원), 도쿄 긴자(7위, 88만2388원) 등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치명적인 임대료뿐이 아니다. 명동은 이미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상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국제적인 상권이 된 지 오래다.
◆ 내국인 방문객 비율 25% 불과
명동에서 한국인이 사라졌다. 2014년과 2015년 명동관광정보센터에서 파악한 국적별 방문객 현황을 살펴보면 중화권이 가장 많은 41.63%, 동남아가 23.95%다. 내국인의 비율은 24.96%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관광객이 빠르게 느는 추세다. 명동관광정보센터의 국적별 방문객 현황에 따르면 동남아권에서 온 관광객은 2014년 1만3708명에서 2015년 2만3344명으로 증가했다. 1년 사이에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동남아인들이 명동 상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한국 제품을 가방 한가득 쓸어 담는 ‘큰손’으로 유명한 중국인과 달리 동남아 관광객들은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명동 상권이 빠르게 ‘다국적화’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인 관광객 위주로 상권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철저하게 중국인 관광객에 맞춰 변화된 명동 상권의 가장 큰 특징은 로드숍의 약화다. 중국 관광객들은 기본적으로 로드숍 제품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 대신 면세점이나 백화점과 같은 대형 매장을 선호한다. 따라서 지금 유네스코길 등 명동의 메인 도로는 대기업 브랜드 외에는 진입 자체가 어려워졌다.
음식 업종도 중국인 관광객의 입맛에 따라 빠르게 교체됐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국물 음식점들이 중국인의 입맛에 띠라 양념갈빗집이나 삼겹살집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길거리 노점상들도 이런 변화에 편승하고 있다.
과거엔 중저가 의류나 잡화를 판매하는 곳이 다수였지만 지금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오징어튀김·스테이크·삼겹살김치말이 등 먹을거리가 노점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월세 1억원…매출 5억원 돼야 유지
명동 상권의 중심은 명동성당에서 눈스퀘어로 이어지는 유네스코길이다. 바로 이 길과 교차하는 명동8길(우리은행 명동역 지점~명동역까지)도 핵심 지역으로 분류된다.
유네스코길은 대부분이 165㎡(50평) 이상의 대기업 매장들이 포진해 있다. 1층에는 자라·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를 포함해 화장품 매장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대부분은 네이처리퍼블릭·더페이스샵·아리따움 같은 국내 대기업들의 뷰티 브랜드 매장이다.
이곳은 이미 개인 창업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상권’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 상권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들 핵심 지역의 임대 시세가 명동 상권 내의 임대료 흐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곳의 임대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66㎡(20평)를 기준으로 했을 때 월 임대료가 1억원을 넘는 곳이 대부분이다. 보증금은 20억원이고 월세가 높아 권리금은 없다. 이 일대의 3.3㎡당 건물 매매가만 하더라도 1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대기업 매장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임대료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브랜드들은 2~3개 점포가 있던 곳을 통째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매장 면적이 넓어진 만큼 건물주들이 한 번에 큰 액수를 부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대료를 끌어올린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명동 밀리오레 근처는 132㎡(40평) 기준으로 월세가 2억원을 호가한다”며 “대기업들은 명동 건물주들과 다 연결이 돼 있어 중개업소를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가격 흥정이 끝난 매장도 건물주와 직접 연락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이 나타나면 하루아침에 거래가 뒤집어진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2010년을 기점으로 임대료가 두 배 정도 뛰었다”며 “당시만 해도 월세가 1억원이 넘는 곳들이 많지 않았지만 요즘엔 1억원 미만을 찾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의 직영 매장을 관리 중인 관계자는 “월세 1억원을 감당하려면 매출이 월 5억 원 이상은 돼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길에 매장을 오픈하려는 대기업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상상도 못할’ 임대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명동에 들어오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4 서울 유동인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최다 유동인구 지점은 명동 눈스퀘어에 자리한 ‘CGV 명동’ 지점이었다.
1주일에 평균 9만9653명의 유동인구가 관측됐다. 명동 유네스코 하우스(3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4위), 엠플라자(5위) 등 유동인구 상위 10곳 중 7곳이 명동에 자리해 있다. 명동에 매장에 오픈하는 것 만으로도 브랜드 노출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명동 상권의 중심인 유네스코길의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외곽 상권도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 유네스코길을 기준으로 명동역 패션 상권은 1층엔 주로 의류나 잡화를 중심으로 한 패션 업종이 자리 잡고 있고 2층은 고깃집을 비롯한 음식점들이 띄엄띄엄 뒤섞여 있다.
유네스코길과 비교해 임대료는 절반 수준이다. 66㎡를 기준으로 월세 4000만~5000만원, 보증금은 8억~10억원 정도다. 권리금은 2억~3억원가량이다.
◆ 1일 유동인구 100만 ‘초대형 상권’
반대쪽인 을지로역 먹자상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고객이 거의 없는 명동역 패션 상권과 달리 인근의 오피스 직장인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이점이다.이곳의 임대 시세는 33㎡(10평)를 기준으로 월세 600만~1500만원, 보증금은 1억5000만~3억원 수준이다. 권리금은 2억~5억원 정도다.
숯불구이 전문점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2층에 고깃집을 내려면 5억원이면 충분했다”며 “지금은 면적에 상관없이 최소 자본금 10억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에 높은 임대료까지 감당해야하는 진입 장벽이 높은 상권이지만 전문가들이 명동을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차별화된 아이템과 서비스로 승부한다면 폭발적인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차원이 다른’ 규모의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빅 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 지오비전을 통해 2015년 10월을 기준으로 명동 상권 반경 250m를 조사한 결과 1일 평균 유동인구는 10만8694명으로 나타났다. 반경 250m의 비교적 좁은 면적을 기준으로 한 조사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밀집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도민숙 부동산플러스 대표는 “명동 상권 전체의 1일 유동인구를 대략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며 “유네스코길(명동성당~눈스퀘어)의 유동인구만 40만 명 정도”라고 말했다. 명동 내에 성공한 음식점의 경우 하루 매출만 500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곳들이 적지 않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내국인’ 손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1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7년 이후 10년째 안동찜닭 2호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화숙 사장은 “점심시간에는 을지로 인근의 직장인들이 찾긴 하지만 내국인들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매출의 50% 이상을 외국인들이 책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고깃집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4인을 기준으로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가 10만~20만원에 달한다”며 “중국인에 비해 객단가가 낮은 내국인 손님만으로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피크타임’이 사라진 명동
일반적으로는 66㎡의 가게를 유지하려면 한 달 매출이 1억원은 나와야 한다. 명동 내의 상인들은 하루 매출 3000만원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런 매출은 ‘피크타임’이 따로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영업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가능하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 호텔 등 숙박 업종이 급증하면서 이런 장점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명동 상권에 새로 들어선 호텔만 6군데다. 2011년 4군데였던 호텔이 2016년 현재 23개까지 늘어났다.
이 중에는 글로벌 호텔 체인 르와지르와 이비스 등의 비즈니스호텔이 포함돼 있다. 명동의 랜드마크랄 수 있는 밀리오레 건물에는 지난해 1월 ‘르와지르 서울 호텔 명동’이 문을 열었고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명동도 같은 해 3월 명동예술극장 인근에 자리 잡았다.
그 바로 맞은편 증권빌딩 역시 비즈니스호텔 오픈을 위해 3개 층의 증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반가운 것은 이에 따라 명동에서 쇼핑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명동상권은 저녁 8시만 되며 길거리가 한산해지는 특징이 강했다. 명동 인근에 숙박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밤늦게까지 쇼핑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매장들도 영업시간을 밤 11시까지 늘리는 추세다.
하루 유동인구 10만명 소매 매출 비중 50%
‘YG 습격’에 명동 초긴장
빅뱅·투애니원(2NE1) 등 유명 가수들을 포함한 ‘한류 군단’을 거느린 한류 콘텐츠 기업 YG엔터테인먼트가 최근 명동에 대형 고깃집 오픈을 준비 중이다. 이를 계기로 명동 상권의 주도권이 ‘대기업’에서 ‘한류 기업’으로 넘어가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지난해 6월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출신인 노희영 대표와 손잡고 YG푸즈를 설립했다. 바로 이 YG푸즈의 대표 브랜드인 ‘삼거리 푸줏간’의 입점을 위한 공사가 명동 한복판에 한창 진행되고 있다.
YG푸즈는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인 ‘삼거리 푸줏간’ 외에 펍과 커피 등을 결합한 이른바 ‘삼거리 리퍼블릭 프로젝트’다. 기존 커피빈 명동점이 있었던 증권빌딩 1, 2층에 오는 1월 말 입점 예정으로 그 면적만 대략 990㎡에 달한다.
명동 상권에 YG푸즈의 진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존 명동 상인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YG푸즈가 입점하게 될 증권빌딩은 향후 비즈니스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한류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최적의 입지라고 할 수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상인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았지만 YG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고깃집은 차원이 다른 위협”이라며 “대기업이 자본력을 무기로 삼고 있다면 YG엔터테인먼트는 자본력과 한류 스타라는 콘텐츠 경쟁력을 모두 갖춘 곳”이라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상인은 “지금까지 명동 상권의 성격이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앞으로는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는 상권으로의 변화가 더욱 급격해지지 않겠느냐”며 “한류 쇼핑 상권으로 명동의 위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개인 상인들의 입지는 더 작아지고 있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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