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젊은 한인 리더들이 본 ‘통일’
“북한이 핵무기 위협해도… 평화통일 10년내 꼭 됩니다”
“한 중국인이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과 한국이 반반씩 갈라 가지면 되지 않느냐고요. 한민족이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수천 년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졌죠.”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무부의 한인 여검사 정한나 씨(34)는 2일 ‘어떤 계기로 한반도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어 “우리가 인권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통일을 달성할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옆에 앉아 있던 벨기에의 유현채 변호사(32·여)도 자신이 민족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2012년 인턴 변호사로 일하던 법률사무소에 벨기에로 망명하려는 탈북자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프랑스어나 네덜란드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못 하는 그들은 오직 한국어를 쓴다는 이유 하나로 저를 찾아오게 됐습니다. 그들 부부를 만나면서 조국 한국의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됐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두 여성 법조인을 만난 것은 1∼3일 중동 아랍에미리트의 제2도시 두바이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민주평통) ‘2016년 해외 청년콘퍼런스’에서였다. 모국(母國)의 문제를 모른 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시작된 제17기 해외 자문위원직을 받아들였고 이번에 대표단으로 파견됐다.
이번 행사는 1981년 출범한 민주평통이 세계 117개 나라, 43개 협의회 소속 자문위원 3278명 가운데 27개 나라, 33개 협의회에서 만 45세 이하 청년 리더 67명을 선별해 이뤄졌다.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참석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법조인이 3분의 1을 차지했고 교수, 의사, 공무원, 기업체 사장 등 ‘글로벌 영리더’들이었다. 정 검사처럼 지난해 처음 위원직을 맡은 ‘새내기’ 자문위원들은 의욕에 차 있었다.
중국 선양(瀋陽)에서 온 장문기 선양농업대 교수(45)는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뒤 ‘조국 통일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마음이 급했다. 중국 동북부의 한글학교들을 찾아가 중국 동포 자녀들에게 통일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온 김명호 플로리다 주정부 교통국장(44)은 5월 7일 중고교 동포 학생들의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도모하는 ‘주니어 리더십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일로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감상문을 쓰게 하고 우수 학생들에게는 수백 달러의 상금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엄기웅 변호사(42)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평화협정 대화 공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협정 논의가 이뤄진다면 한국과 미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유엔에서 권리와 의무를 넘겨받아 중국 북한의 상대방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한반도 통일에 기대가 많았다. 동아일보가 현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0명의 절반인 25명이 1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본보가 5년 전인 2011년 주로 중장년층인 세계 평통 해외자문위원 23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119명·51.7%)와 비슷했다.
이어 20년 이내에 이뤄질 것이라는 응답이 15명(30%), 30년 이내와 30년 이상이 각각 5명(10%)으로 뒤를 이었다. 불가능하다는 대답은 없었다. 5년 전에는 16명(7%)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젊은이들이 통일에 보다 긍정적인 편이다.
‘민족공동체 수립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통일 방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32명(64%)이 남북한 합의에 의한 통일이라고 응답했다. 북한의 붕괴에 의한 통일과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 각각 8명(16%)이었다.
5년 전 조사에서는 합의통일이 45%,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 28.4%, 붕괴에 의한 통일이 24.5%였다. 전쟁을 겪은 중장년층 위원들에 비해 전쟁을 겪지 않은 청년층은 독일 통일과 같이 남북한 주민들의 합리적 대화와 동의에 의한 평화적이고 이상적인 형태의 통일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이내에 남북이 합의하는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경험이 많은 위원들은 각국의 사정과 환경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통일 준비 활동을 하고 있었다. 3일 오전까지 이어진 강의와 토론 과정은 선배 위원이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하는 시간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민주평통 본부와 중동협의회는 3일 일정 가운데 세 차례의 분임토의와 발표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위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향후 활동 방안을 스스로 마련했다. 마지막 날인 3일 오전 분임토의 결과 발표 시간에서는 각국 참석자들이 다양한 노하우를 소개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브라질에서는 자체 월간지를 만들어 동포와 현지에서 태어난 2, 3세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나병현 위원)
“인도네시아협의회는 지난해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쇼핑몰 내 전시장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영화 ‘크로싱’을 관람한 뒤 인권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이어 이들이 그린 그림 전시회도 열었습니다.”(황미리 위원)
“파라과이에서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일에 대한 퀴즈를 내고 청취자들이 답을 맞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알리고 상품도 준비해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유도했죠.”(김미라 위원)
젊은 위원들은 현지 외국인들을 상대로 남북관계 상황을 설명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해내고 있었다. 파라과이의 김 위원(변호사)이 운영하는 라디오방송은 현지 언어로도 방송된다. 한반도 상황이 궁금한 현지인들이 이 방송을 듣는다고 김 위원은 전했다. 멕시코 정관계에 인맥이 있는 엄 변호사는 올해 4차 핵실험 이후 멕시코 정부가 대북 규탄 성명을 내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10년 넘게 패션사업을 하고 있는 김지연 위원(여)은 ‘관시(關係)’가 있는 현지의 유력 인사들과 사업이나 사교로 대화를 할 때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번 4차 핵실험 직후에도 중국 측 지인들이 “남북이 사이가 안 좋아지겠군. 남쪽의 손해가 클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손해를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린 한핏줄이고 언젠가는 하나가 돼야 하는 사이랍니다.”
:: 민주평통 청년콘퍼런스 ::
민주평통 중동협의회(회장 박정길)가 주관한 ‘2016년 해외 청년콘퍼런스’는 통일에 대한 해외 동포 젊은이의 생각을 듣고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기 위해 기획됐다. 민주평통이 주최하는 해외 자문위원 행사에는 보통 중장년층 기성 위원들이 참석하지만 이번 행사는 해외 ‘젊은 피’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만 45세 이하로 연령이 제한됐다.
민주평통은 7월 미국 시카고에 세계 여성 자문위원 대표를 모아 이번 행사와 유사한 형태의
‘2016년 해외 여성콘퍼런스’를 연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와 해외 자문위원들이 함께하는 ‘평화통일포럼’을 베트남(4월), 중국(7월), 미국(11월), 일본(12월)에서 모두 네 차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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