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캠핑버스테마여행

♣오늘"헤드라인"♣

`22만 공시족` 10대서 50대까지…꿈을 저당잡힌 한국인

여행가/허기성 2016. 3. 12. 06:25

봄을 반납한 청춘들…'노량진별곡' 들어보니

 `22만 공시족` 10대서 50대까지…꿈을 저당잡힌 한국인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잠시 스쳐가는 공간

 올해 9급 공무원 사상최대 인원 몰려…경쟁률 405대1

서울 지하철 노량진역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한 건물에는 출입구에서 인도까지 줄이 10m가량 길게 늘어져 있었다. 10층이 넘는 한 건물에 여러 개의 학원이 모여 있는데 100여 명의 공시족이 두 대에 불과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노량진 학원가는 한 학원이 단독으로 건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여러 학원이 층별로 나눠서 건물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대로 보이는 한 학생에게 "○○학원 본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라고 말을 건네니 짧은 답변만이 돌아왔다.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휴학 중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위치는 저를 따라오시면 되고 더는 묻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오전 9시. 한 학원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침묵이 온몸을 압도했다. 공무원시험 역사상 최대 규모인 22만1853명이 지원한 시험(4월 9일·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한 달 앞둔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간과 사투를 벌이는 그들은 그곳이 강의실이든 도로든 상관없이 강의노트와 책을 펼쳤다. 정적의 위압감이 노량진 일대를 점령하는 듯 했다.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20대 공시족은 물론이고 30~50대 다양한 연령대의 공시족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과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공무원시험 준비생 강 모씨·28)  3월의 첫 근무일이자 대학의 새 학기를 시작하는 지난 2일 오전 7시 서울 노량진역. 꽃샘추위가 한풀 꺾여 포근한 날씨가 예상된다는 기상청 예보는 아침부터 빗나갔다. 오전 강의를 듣기 위해 노량진 전철역(1·9호선) 출입구 9곳에서 물밀듯이 빠져나온 공시족(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수천 명이 내뱉는 입김 속에서 추위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한때 노량진 명물이었던 육교는 지난해 10월 철거됐다. 하지만 지상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는 도중에도 공시족들의 시선은 한 손에 쥔 강의 자료나 프린트물을 향해 있었다. 학원 수업이 본격 시작하기 전인 오전 8시. 한 대형 공무원시험 학원 옆에 있는 패스드푸드점에는 3~5명씩 무리를 지어 스터디를 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나 진지했다. 오전 8시 30분쯤 스터디를 마치자마자 300~400석 강의실의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30만~40만명으로 추정되는 공시족 중 상당수는 다음달 9일 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번 시험에는 22만1853명이 신청해 지원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불과 5년 전인 2011년(14만2732명)에 비교하면 응시자 수가 55%나 늘었다.

'2016 노량진별곡'의 주인공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로 사실상 전 세대를 아우른다. 바야흐로 공무원시험은 '국민 시험'이 됐다. 일찌감치 공시족이 된 10대(18~19세)도 3156명(1.4%), 은퇴 후 노후생활을 염두에 둔 50세 이상은 957명(0.4%)이 참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혹은 대학졸업장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학 재학생들도 공시족에 합류했다.

  • 노량진의 청춘(靑春)들에게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고시촌의 원조 격인 신림동 고시촌이 외무고시에 이어 사법고시 폐지 결정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가운데 노량진은 국내 최대 고시촌으로 부상했다. 공무원시험을 비롯해 임용고시 등 모든 시험 준비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청춘의 꿈도 함께 영글고 있는 노량진, '2016년 노량진별곡'을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