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만든 상권 오래 못가…뜨는 상권엔 문화와 개성 녹아
#피팅모델 엄새아(28) 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에서 온라인 의류 쇼핑몰 사진을 촬영했다. 이곳에서만 벌써 2번째다. 엄씨는 “골목길이나 한옥마을, 아기자기한 가게 같은 배경이 필요한데 최근 서촌이나 삼청동, 북촌 쪽에는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생겨나는 등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 촬영지를 바꿨다”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에 기존 상권이 가졌던 성격이 바뀌고, 독특한 개성과 문화를 가진 곳이 새로운 상권으로 뜨기도 한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해진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서대문구 연남동과 연희동이 인기 상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독특한 개성 덕분이었다.
높아진 임대료를 피하려는 상인들이나, 프랜차이즈 상점이 더 많아진 기존 상권을 벗어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은 문화와 개성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 낮은 임대료, 문화와 개성 2마리 토끼 잡으려는 상인들
- ▲ 서순라길에는 최근 젊은 공예가들이 작은 점포를 여는 경우가 늘었다. 사진은 서순라길의 보석매장이 오래된 점포들 사이에 자리 잡은 모습.
가로수길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강모(40) 씨는 최근 가게를 옮기려고 다른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기존에 운영하던 식당의 임대료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2배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과도한 임대료 상승에 몸살을 앓던 강씨는 종로구 익선동과 서순라길에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강씨는 “월 임대료 부담이 가로수길보다 적은 곳들을 중심으로 가게 자리를 찾고 있다”며 “익선동은 새롭게 주목받는 한옥마을이라 괜찮을 것 같고, 서순라길은 귀금속 공방과 돌담길 등이 최근 입소문을 타고 뜨고 있어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익선동 같은 경우 대지 99㎡ 한옥이 보증금 3000만원 정도에 월세는 250만원 정도다. 서순라길은 3.3㎡당 20만원 정도가 임대료 시세인데, 점포 면적이 20㎡ 이하인 곳이 많아 실제 월 임대료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서순라길은 종로 귀금속 거리와 닿아있어 보석세공 공방이 많이 자리를 잡았고 종묘 공원이 개방되며 유동인구가 늘어난 곳이다. 서울시가 이곳을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 주얼리 지원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 ▲ 원래는 정미소였지만, 최근에는 패션쇼와 전시회 등이 열리고 있는 성동구 성수동2가 대림창고.
서순라길처럼 기존에 있던 특징이 뚜렷해지고 젊은 감각들이 만나면서 변화한 곳이 또 있다. 성동구 성수동 구두거리와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 거리다.
성수동은 구두공방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지원하면서 거리가 활성화됐다. 옛날엔 정미소였으나 최근에는 패션쇼와 전시가 열리는 대림창고도 지역 명소로 떴다.
경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성수동으로 점포를 옮기려고 준비 중인 이진성(32) 씨는 “최근 성수동에 구두공방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카페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경리단길보다 임대료가 낮아 점포를 옮기려는 것”이라며 “천정부지로 치솟은 경리단길 임대료를 피하려고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 개성 있고 새로운 문화 찾는 사람들
독특한 문화와 개성을 가진 곳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데는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 때문만은 아니다.기존 상권에 만족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늘 새롭고 개성있는 대체지를 찾기 때문에 상권도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 취미인 직장인 이혁수(35) 씨는 “서촌이나 북촌은 얼마 전만 해도 조용한 동네라 사진이 취미인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주말이면 사람이 북적거려 피하게 된다”며 “사진 촬영이 취미인 사람들 사이에선 인근 익선동이나 옥인동, 서순라길과 같이 조용한 곳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 ▲ 익선동 한옥마을에는 최근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카페와 술집, 식당 등이 늘고 있다.
서순라길에서 카페 ‘예’를 운영 중인 신성은 씨는 “종묘 공원이 개방되면서 한 번, 방송이 서순라길을 보도한 이후 또 한 번 이렇게 유동인구가 늘어났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실제 매출도 전보다 3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문래동은 홍대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공연장이 생기거나 전시공간이 생긴 경우가 많다. 공연기획자인 이진성(35) 씨는 “인디밴드들 사이에서는 문래동의 스튜디오와 공연장 등이 유명해진 지 몇 년 됐다”며 “서울시나 문화재단 등도 문래동을 많이 지원하면서 최근 이 동네에는 카페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상권을 형성하고 활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지역만의 문화와 특색을 갖추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대학로나 홍대 상권이 오랜 기간 유지된 것은 확실한 특색이 살아있기 때문이고,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곳도 이런 특색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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