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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주공 1단지를 잡아라'

여행가/허기성 2017. 9. 25. 02:12

현대건설 VS GS건설 '반포주공 1단지를 잡아라' 빅매치 현장

'10조짜리 재건축' 수주전 후끈…조합원용 홍보물엔 더티플레이 '눈살'


지난 4일 있었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시공사 최종 입찰에는 현대건설과 GS건설 두 곳이 참여했다. 반포주공1단지는 재건축 공사비만 2조 6000억 원이 넘는다. 기타 관련 비용을 더하면 총 사업비는 8조~10조 원에 달해 강남권 재건축 최대어로 꼽힌다.

재건축사업과 관련해 보통 사업비가 1조 원이 넘으면 '매머드급'이라고 표현한다. 이전까지 강남 재건축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는 평가된 가락시영 재건축사업의 사업비가 3조 원가량으로 평가된 것에 비춰보면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사업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 가능하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반포주공1단지.


건설업계 관계자는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사업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랜드마크 사업이 될 수 있다"며 "강남의 가장 노른자땅을 우선선점한다는 효과와 함께 한강을 끼고 5500세대 건축사업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하면 국내외 사업에서 엄청난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히 최대 규모의 시공비 때문이 아니라 1970년대 강남개발이 시작됐던 반포, 그것도 첫 개발단지인 반포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것이기에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며 “(수주에 성공한 업체는) 향후 진행될 강남권 재건축사업에서 사업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 7월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참여한 건설업체는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SK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9곳이다. 하지만 현대건설과 GS건설을 제외한 7개 업체는 입찰을 포기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자신이 없고 재건축에 투입되는 비용이나 1500억 원의 입찰보증금도 만만치 않아 입찰을 포기했다”며 “요즘 건설사들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선정이 어려울 것 같으면 무리하지 않고 처음부터 빠진다”고 전했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의 대결로 압축되면서 사업을 따내기 위한 두 건설사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아파트 단지 이름을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라고 짓고 홍보에 나섰다. 현대건설이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고급 디자인이다. 현대건설은 “세계적인 건축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설계사들과 협업해 입주 고객을 위한 맞춤형 상품을 내놨다”며 “특히 한강 조망권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설계에 각별히 신경을 쏟았다”고 전했다. 이밖에 주민들에게 이사비 7000만 원과 현재 거주 아파트의 감정평가액 60%에 해당하는 금액의 이주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사비는 무상지원이며 이주비는 대출 형식이다. 

단지 이름을 ‘자이 프레지던스’라고 지은 GS건설은 ‘중앙공급 공기정화 시스템’, ‘카카오와 협업한 인공지능(AI) 시스템’ 도입을 약속했다. 이사비를 지원하겠다는 현대건설과 달리 GS건설은 이주비만 일정 금액을 무이자로 제공한다. 재건축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살 수 있는 '전세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GS건설은 “KB국민은행과 8조 7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조달 협약을 맺었다”며 “수주도 하기 전에 건설사가 자금조달 계획을 마무리 지은 것은 국내 재건축 수주에서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포주공1단지 인근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에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의 홍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포주공1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에는 대부분 현대건설이나 GS건설의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심지어 일반 카페나 상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에서도 광고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각 건설사 직원이 음료수를 들고 찾아와 하루만 포스터를 붙여달라고 부탁해 들어줬는데 다음날 포스터를 떼니까 다시 와서 하루만 더 붙여달라고 사정했다”며 “윗사람들이 와서 각 직원들 담당 구역에 포스터가 붙어 있나 확인하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에 포스터 부착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다른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건설사 직원들이 매일같이 방문해 홍보물을 돌린다”며 “손님들이 부동산 업주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겨 문의가 자주 오는데 그럴 땐 홍보물을 참고하라는 식으로 답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인중개사는 “민감한 문제라 답하기 어렵다”며 관련 답변을 피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사무소 관계자는 “한 공인중개사가 방송사에 현 상황을 얘기했더니 사전 설명도 없이 녹취해 방송을 내보냈다”며 “이후 인근 주민들이 항의해 대부분 공인중개사는 말을 아끼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나 상가 등에 붙은 포스터는 평범했지만 실제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 홍보자료는 달랐다. 상대 건설사를 비방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 건설사들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다. 

GS건설에서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홍보자료 중에는 "반포 1·2·4주구를 서민아파트로 만드는 현대"라며 현대건설을 비난한 것이 있다. 재건축 조합이 중소형 아파트 3304세대, 펜트하우스 43세대를 제안했지만 현대건설은 중소형 아파트 3414세대, 펜트하우스 38세대를 제안했다는 것. GS건설은 중소형 아파트 3303세대, 펜트하우스 51세대를 제안했다. 이 자료에는 "중소형 아파트 110세대가 증가한 현대건설의 제안은 단지 가치를 하락시킨다"고 돼 있다.

현대건설도 다를 바 없다. 현대건설의 한 홍보자료에는 현대건설을 ‘단 하나의 가치’, GS건설을 ‘또 다른 GS’라고 표현해 놨다. 인근 지역에 위치한 자이아파트와 비교해 차별화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의 무상특화금액, 사업비, 이사비 등 주요 조건을 비교해 현대건설이 대부분 지표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자료에는 "압도적인 조건 차이는 명확, 말로만 준비한 것도 명확"이라고 적혀 있다.
 

건설사들이 공개된 자리에 내보내는 광고는 평범했지만 실제 조합원들에게 돌리는 설명자료에는 상대 건설사를 비방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재건축사업 수주전은 원래 진흙탕 싸움 그 자체"라며 "예전에 수주전에 참여해 전단지를 만드는 일을 한 적 있는데, 며칠 밤을 새 만들어도 '문구가 이렇게 얌전해서 어떡하냐'며 상대 경쟁사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문구와 전략을 지도받았다"고 털어놨다. 

인근 카페는 각 건설사 영업직원들의 ‘전략회의실’로 사용된다. 한 카페에서는 GS건설 직원이 다른 직원들에게 “이 지역 사람들은 70세가 넘어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기에 현대건설의 7000만 원 이사비 지원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직원들 옆에는 선물 박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카페에서는 현대건설 직원들이 조합원들에게 “사업에 대해 설명드리고 인사도 드리고 싶다”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취재를 요청했지만 양사 직원 모두 보안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홍보와 관련해) 구체적인 명령을 내린 건 아니다”라며 “밖에선 과열된 양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부정행위는 없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GS건설 관계자는 “각 현장별로 여러 특성이 있어 현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며 “적정한 경쟁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전했다.


양사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한 쪽이 수주전에서 우위에 있다고 하기 어렵다. 조합 관계자는 “오는 21일 합동설명회를 열어 조합원들이 본격적으로 양사를 비교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중요하게 보는 것이나 비교우위에 대해서는 형평성에 문제가 될 수 있어 설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조합원은 “건설사가 포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직원처럼 특정 건설사를 홍보하는 조합원도 몇몇 보인다”며 “아직 마음을 정하진 못했고 합동설명회에서 본격적으로 비교해볼 것”이라고 전했다.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 시공사를 놓고 벌이는 GS건설과 현대건설의 치열한 경쟁은 오는 27일 조합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