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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줄 갈아서 논밭이랑 아파트 샀쥬, 허허"

여행가/허기성 2017. 11. 22. 02:50

"시곗줄 갈아서 논밭이랑 아파트 샀쥬, 허허"

 시계할아버지 이희천씨.

지난 8일 충남 예산군 고덕장. 명색이 장날이라고, 한적했던 시골 장터가 무싯날보다는 살짝 생기가 돌았다. 생선 비린내도 풍기고, 두툼한 옷가지며 월동준비를 위한 생필품 파는 노점상들도 몇몇 전을 펼쳤다.

장터에서 장옥 쪽으로 몇 걸음 가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 시대를 넘나드는 각종 시계와 돋보기, 주머니칼, 선글라스 등 주섬주섬 담아도 한 보따리가 안 될 물건을 펼쳐놓고 있다. 그렇게 한 평도 안 되는 좌판이 가게다. 장꾼들은 그를 '시계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꼭 간판을 걸어야 가겐감. 내 얼굴이 간판이구 이 장터가 다 내 가게유…. 육이오 사변 터지던 해 서울서 피난 내려와서 시작했으니께 꼭 67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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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게 장돌뱅이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 할아버지는 삽교 두4리에 사는 이희천씨, 올해 나이 92세다.

"츰엔 라이타를 팔았는디, 말뚝라이타라고. 아마 물를 거유. 일회용라이터가 나오면서 읎어졌지. 그래서 시계를 주로 팔았는디 이것도 핸드폰 나오고 나서 소용 읎어졌어. 서울 청량리 시장서 경비일하다 피난 내려와 삽교서 머물렀는디, 그때 나이가 스물넷인가 다섯인가…. 먹고는 살어야 허고 배운 기술이 있나, 그래서 시장에 나가 보재기를 깔고 라이타를 팔었슈. 오늘은 고덕장 니알은 덕산장, 모레는 예산장, 글피는 홍성장 그리구 삽교장. 5장을 돈 지가 67년이라니께."

점심 때가 가까울 무렵이 돼서야 촌로 한 분이 시곗줄을 갈러 왔다. 마수걸이로 5000원을 벌었다. 좌판 위에 5000원 지폐를 펼쳐 연장으로 눌러 놓고 있자니 "여전하시네유. 워째 오늘은 날씨가 저녁 굶은 시어미 얼굴같이 생겼댜"하며 늘 들르는 듯한 말동무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막걸리라도 받아줘야 하는 거 아녀?"하고 대꾸하며 소년처럼 웃었다.

 오일장에 전을 펴면 으레 말동무도 오고 구경꾼도 끼고 그런 법이란다.
 오일장에 전을 펴면 으레 말동무도 오고 구경꾼도 끼고 그런 법이란다.




"하루 장사하면 벌이는 얼마나 되냐"고 묻자 "어르신 겁나게 벌었을 걸유. 라이터 팔고 시곗줄 갈고 안경다리 고쳐서 아파트도 사고, 논밭도 사고. 어때유, 맞쥬?"하고 말동무가 먼저 설레발을 쳤다.

그러자 "말도 마유. 오죽허믄 세무서 직원이 매일 와서 '오늘은 얼마 벌었냐'고 꼭 물어보고 간다니께"하고 장단을 맞췄다.

그사이 한 촌로가 좌판을 기웃대다 호주머니에서 줄이 끊어진 손목시계를 꺼내 내밀었다.

시계를 받아든 할아버지는 "이건 못 고쳐유. 이거 여기다 놓구 저거 새 시계 가져가유. 저게 만오천 원 짜린디, (줄 끊어진 시계) 중고값으로 오천 원 쳐줄 테니 만 원에 가져가"

촌로는 흡족한 표정으로 새 시계를 집어 들었고, 구경을 하던 말동무가 "금세 만원 벌었네" 하자 할아버지는 "에이구 원가는 어디가고. 그거 빼면 이천원 번 거야"하자 둥글게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웃는다.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에 5만 원을 벌고, 안 되면 2만 원을 번단다.


"내가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주모있게 살림했으니께 4남매 가르치고 살었지."

긴 세월 장사를 하는 동안 수지맞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냐는 물음에 그는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다.

"수지 맞을 일이 뭐 있것슈. 내 총재산이 여기 펼쳐 논 것들인디. 이거 다 팔믄 얼마 벌 거 같애유. 츰 장사를 할 때 마누라가 나보고 하는 말이 라이타만 팔지 말고 장사를 좀 크게 해보라고 하대유. 워째 그렇게 주변이 없냐고 타박하더라구유.

그래서 내가 그랬쥬. 내 다섯손가락이 재산이니께, 밥은 굶기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고. 그리구 어디 일나갈 생각허지 말고 집구석에 가만 앉아 나만 기다리라고…. 내가 그 약속 지켰지.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여든다섯인데 지금도 참 고와유."

시계할아버지는 언제쯤이면 외장 도는 일을 멈출까.

"이 나이 먹도록 아퍼서 누워본 적이 읎슈. 그런디 인저 눈도 어둡고 정신도 읎구해서 오래 하긴 힘들 거 같유. 대학까장 가르친 우리 아들이 자꾸 그만 두래네유."

 시장판에서 67년동안 잡화를 팔고 수선한 할아버지의 뭉툭한 손은 지금도 영락없이 시계줄을 갈고 있다.
 시장판에서 67년동안 잡화를 팔고 수선한 할아버지의 뭉툭한 손은 지금도 영락없이 시계줄을 갈고 있다.




그때 장꾼 하나가 시곗줄이 너무 길어서 손목에서 뱅뱅 돌아간다며 줄여달라고 풀러 놓았다.

할아버지는 힐끗 쳐다보더니 "크는 사람은 자꾸 크니 내년 가믄 맞을 텐디 그냥 차지 그려" 했다. 장꾼이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슈"하니 "그럼 아직 애들이네. 내 나이가 92니께 애들로 보이지"하며 또 허허 웃었다.

할아버지의 뭉툭한 손가락이 빈틈없이 움직이며 순식간에 시곗줄에서 가는 핀을 빼내고 한마디를 끊어낸 뒤 다시 결합해 "옛슈"하고 건넸다.

멀거니 쳐다만 보던 장꾼이 "참말로 눈도 밝고 손도 빠르시네"하고 혀를 내두르며 "얼마유"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됐슈. 부속 들어간 것두 읎는디 그냥 가유"라고 했다.

장꾼은 "그냥이 어딨냐"며 기어코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놓고 자리를 떴다. 부득불 1000원을 손에 쥐고 "그냥 가래두 꼭 저렇게 얼마라도 놓고 가는 사람이 있어"하는 할아버지의 깊게 팬 눈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