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합의, 무엇이 문제인가?
한반도기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금강산 공연 등 ‘사실상 평양 동계올림픽’ 수준
지난 17일 통일부는 북한 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북측과 합의한 ‘공동보도문’을 공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 국민들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일까.
합의 내용 1번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선수단의 참가 종목과 선수단 규모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양측 국가올림픽위원회 간 협의를 통해 정한다”는 이미 국제 사회에서도 논의가 된 내용이라 별 문제가 없다.
2번 “남과 북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하며, 여자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부분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양측 국가올림픽위원회 간 협의를 통해 정한다고 밝혀, 오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여는 남북 올림픽 위원회와 IOC 간 회의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반대와 비판 여론은 엄청나다. 언론들은 “4년 동안 피땀 흘린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말하지만, 올림픽 대표로 출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린 선수들이 거의 평생을 노력해 따낸 출전권이다. 이것을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강제로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나라 선수단 입장에서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 대회와 예선전을 통해 출전권을 따낸 각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 스위스 아이스하키 협회는 지난 17일 “수많은 나라의 대표단이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출전권을 따냈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정치적 이유를 앞세워 한국과 북한이 단일팀을 구성, 엔트리 선수를 확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위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과 처음 경기를 갖는 나라다.
한반도 기를 앞세우고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는 것도 문제다. 올림픽 개최국이 자국 국기 대신 다른 깃발을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당국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평화 올림픽을 염원하는 뜻”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한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선수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 IOC에서 제공하는 ‘와일드 카드(특별 출전권)’을 배경으로 참가한다. 그렇다면 인공기를 들고 따로 입장하는 게 정상 아닐까.
그것도 어렵다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러시아 선수들처럼 ‘올림픽 깃발’을 앞세우고 입장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태극기를 ‘포기’하고 ‘한반도기’를 국기처럼 앞세우는 것을 용인한 일은 태극기가 한반도 통일 이후의 국기로는 부적합하다고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3번 “북측은 230여명 규모의 응원단을 파견하여,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행사와 남측과 북측 선수들의 경기를 응원하고, 남측 응원단과의 공동응원을 진행한다. 남과 북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응원단 활동도 보장한다”는 합의도 문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들은 많아봐야 10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임원들까지 포함해도 20명 내외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응원단이 그 11.5배에 달한다. 이들과 별개로 일본 내 종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서 보내는 응원단까지 더하면, 북한이 올림픽 참가 보다는 응원을 통한 체제 선전이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4번 합의 “북측은 30여 명의 태권도 시범단을 파견하며, 남측 평창과 서울에서 시범 공연을 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시범공연 일정은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한다”는 부분도 ‘평창 동계올림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하계 올림픽 때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공연을 한다면 그래도 종목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동계 올림픽에서 뜬금없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이유가 대체 뭘까.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의 저의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현 정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5번 합의 ‘북한 취재단 지원’과 6번 합의 ‘북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 취재진이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왕래하며, 북한 선수단은 2월 1일, 다른 사람들은 2월 7일 한국에 온다’는 내용, 7번 합의 “북한 현지시설 점검단이 1월 25일 방한한다”는 내용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8번 합의 “북한은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장애인 올림픽 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취재진을 150여 명 규모로 보낸다”는 부분도 의문이 든다.
북한은 하계 패럴림픽에는 2번 참가한 적이 있다. 이마저도 선수는 2~3명 수준에 불과했다. 동계 패럴림픽에는 선수를 보낸 적이 아예 없다. 그런 북한이 동계 패럴림픽에 보낼 선수가 있기는 한 걸까. 혹시 평창 동계올림픽처럼 선수는 한 자리수인 반면 응원단과 예술단이 100명이 넘는, 그런 기형적인 대표단을 보내려는 것은 아닐까.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찾는 북한 측 인원은 선수단은 30여 명 안팎인 반면 응원단과 예술단, 태권도 시범단, 삼지연 관현악단 등 ‘부대 인원’은 500여 명에 달한다. 조총련 응원단까지 더하면 선수단의 20배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 많은 사람을 한국에 보내는 걸까?
북한과 그 추종세력들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4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처럼 북한 미녀 응원단이 한국에 오면 한국 국민들로부터 큰 환영과 지지를 받을 거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한국 국민의 대다수는 북한 정권과 그 추종 세력에 대해서는 혐오의 감정이 더 크다. 즉 북한이 선수단의 11.5배에 달하는 응원단을 보내고, 정부와 일부 언론이 이들을 집중 조명할 경우 평창 동계올림픽은 국내에서부터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9번 합의 “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 금강산에서 남북 공동문화행사와 北마식령 스키장에서 남북 스키선수들의 공동훈련을 진행하고, 남측은 현지 시설 점검 등을 위해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선발대를 파견한다”는 내용은 솔직히 웃긴다.
유엔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입장에서 볼 때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도 엄연히 회원국이다. 그런데 올림픽 전 축하행사를 왜 북한 금강산에서 열어야 하는 걸까. 강원 고성에 있는 통일 전망대에서 하면 안 되나?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의 치적 사업물로, 이곳을 지을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면서 관련 장비를 수입 설치해 국제적 논란을 일으킨 곳이다. 제설 장비가 없어 수천여 명의 주민들을 동원해 제설작업과 슬로프 평탄화 작업을 하는 곳이다. 한국 올림픽 대표단이 국내의 좋은 스키장을 놔두고 왜 이런 곳에서 훈련을 해야 할까.
합의 10번에는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며, 남측은 북측 대표단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남북 협의 당시 나온 김강국 北조선중앙통신 기자는 2004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당시 한 시민단체가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자 즉각 달려들어 욕설을 하며 현수막을 빼앗고 한국 국민을 무차별 폭행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남북 협의 대표로 나오는 북한이 과연 “남측의 안내와 질서”를 따를까.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통일부가 17일 발표한, 북한 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합의 내용은 모두 11개 조항이다. 그러나 모두 한국이 일방적으로 북한 측에게 베푸는 내용이다. 동계올림픽 유치와 시설 준비, 개최 등은 한국이 떠맡고, 스포트라이트는 북한이 모두 받는다면, 한국은 왜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이 미비하다는 문제가 계속 나오는데 차라리 동계올림픽 개최를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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